tvN 사극 <슈룹>은 최근 방영분에서 세자 선발 과정을 보여줬다. 세자가 세상을 떠나면 그 아들인 원손을 세자로 책봉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세자의 바로 아래 동생을 책봉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서자·적자 가리지 않고 유능한 왕자를 세자로 뽑는다는 원칙 하에 서바이벌 경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경쟁을 이끄는 것은 '정실부인의 아들, 첫째 아들'을 우선시하는 적장자 논리가 아니라 공과 덕을 갖춘 현자를 선택한다는 택현 논리다. 드라마 속의 왕실은 세자가 될 가장 우수한 현자를 뽑기 위해 철인 3종 경기 비슷한 체력 테스트도 벌이고 왕자들을 지방으로 보내 미션을 시키기도 했다.
 
지방 파견 미션은, 왕조에 비협조적이지만 실력이 출중한 특정 인물들을 궁궐로 데려오는 것이었다. 임금 이호(최원영 분)는 어사 마패와 함께 임명장으로 쓰일 교지를 주면서 왕자들에게 이런 미션을 부여했다. 지방에 은거해 있는 특정 인재들을 찾아 교지를 전해주고 데려오라는 것이었다.

능력이 출중하면서 조정에 비협조적인 인물은 역모를 꿈꿀 가능성이 없지 않다. 13일 방영된 제10회에서는 의성군(강찬희 분)이 데려온 인재가 임금 앞에서 체포되는 장면이 있었다. 임금의 지명을 받은 인물 중 하나가 그때 마침 역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인물은 임금이 주는 관직을 역모에 활용할 목적으로 의성군을 따라 궁에 들어갔다가 '수갑'을 차게 됐다.
 
왕권의 향방을 결정하는 논리
 
 드라마 <슈룹>의 한 장면.

드라마 <슈룹>의 한 장면. ⓒ tvN

 
<슈룹>에서 자주 언급되는 택현은 왕권의 향방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 논리였다. 공과 덕이 높은 현자를 선택한다는 이 논리는 일반적인 왕위계승원칙인 적장자 우선 논리와 충돌하면서 왕조시대 정치의 결정적 장면들에서 나타나곤 했다.
 
세종대왕(충녕대군)도 택현 논리의 덕을 입었다. 태종 이방원은 셋째아들인 충녕대군을 염두에 두고 세자 이제(양녕대군)를 폐위시켰지만, 곧바로 충녕대군을 추천하지는 않았다. 양녕대군의 동생보다 양녕대군의 아들들에게 우선순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음력으로 태종 18년 6월 3일자(양력 1418년 7월 6일자) <태종실록>에 따르면, 양녕대군 폐세자 조치 뒤에 이방원이 처음 내린 왕명은 "나는 제의 아들로 대체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방원은 세자 이제의 두 아들 중 누구를 세울 것인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공식 왕명을 일부러 모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양녕대군의 두 아들을 거론한 것이 진심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했던 것이다.
 
이때 다수의 신하들이 내세운 논리가 택현이었다. 영의정 유정현을 비롯한 대신들은 '어진 이를 고르소서'라는 말로 분위기를 띄워 갔다. 이는 세자의 아들들이 어질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적장자 논리가 아닌 택현 논리에 따라 임금이 될 수 있는 인물을 세우라는 의미였다. 대신들도 이방원이 충녕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경국대전> 편찬 등을 통해 조선왕조의 법제적 기초를 마련한 성종 역시 택현 논리에 따라 군주가 됐다. 성종은 덕종으로 추존된 의경세자의 아들이고 의경세자는 세조(수양대군)의 장남이었다. 의경세자는 19세 때인 1457년에 세상을 떠났고, 세자 자리는 동생인 예종에게 넘어갔다. 의경세자의 장남인 월산대군이 그때 3세였기 때문에 예종이 이어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종은 형이 죽은 지 11년 뒤인 1468년에 왕이 됐다가 1469년에 세상을 떠났다. 원자인 제안대군이 3세였을 때였다. 이로 인해 왕권은 의경세자의 아들들 쪽으로 넘어가게 됐다. 이때, 원칙대로라면 의경세자의 장남인 월산대군이 왕이 돼야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3세였던 월산대군은 삼촌이 돌아가실 때는 15세였다. 왕위를 이어받기에 부족하지 않은 나이였다.
 
그러나 왕권은 월산대군의 동생인 12세의 자을산군(성종)에게 넘어갔다. 세조의 부인인 정희왕후가 자을산군의 장인인 실력자 한명회와 제휴한 결과였다. 이때 자을산군의 즉위를 합리화했던 명분이 바로 택현이었다.
 
성종 즉위년 11월 28일자(1469년 12월 31일자) <성종실록>에 따르면, 대비인 정희왕후는 대신들과의 회의에서 "원자는 지금 강보 속에 있고, 월산군은 평소에 질병이 있다"라며 "자을산군은 어리기는 하지만, 세조께서 이 아이의 그릇과 도량을 태조에까지 비견하셨으니 주상(主喪)을 시키는 게 어떻겠소?"라고 말했다. 태조 이성계에 비견될 만한 그릇이니 상(喪)을 주관케 하고 임금이 되도록 하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제안대군은 너무 어려서 왕이 되기 힘들었다. 자을산군이 제안대군을 제칠 때는 굳이 택현 논리가 나올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자을산군이 자신보다 세 살 많은 월산대군을 제칠 때는 이 명분이 필요했다. 그래서 태조 이성계에 비견되는 그릇이라는 논리로 월산대군과 자을산군 사이의 장유유서를 무시했던 것이다.
 
자을산군이 왕이 된 진짜 이유는 그가 한명회의 사위였기 때문이다. 강력한 세력가의 힘을 빌려 왕실을 안정시키려는 의중이 자을산군의 즉위에 반영돼 있었다. 택현 논리는 이런 노골적인 정치적 현실을 감추는 데 유용했다. 세력가의 사위라서 왕이 된 게 아니라 인격과 능력 때문에 왕이 됐다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됐다.
 
택현 논리는 제3대 주상인 태종 이방원의 집권에도 활용됐다. 1398년에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직후에 이방원은 적장자 우선 논리를 내세웠다. 이복동생인 세자 이방석을 배척하는 도구였던 이 논리를 쿠데타 이후에도 계속 존중했던 것이다.
 
적장자와 택현 사이의 갈등

이방원은 적장자가 왕이 돼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실권자 정도전을 죽이고 아버지 이성계를 끌어내리고 세자 이방석을 살해했다. 아버지가 서자를 후계자로 세우는 실책을 범했다며 쿠데타를 정당화했다. 이랬기 때문에 이방원은 쿠데타 성공 뒤에도 적장자 우선 원칙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그가 자기 수중에 권력을 장악해놓고도 친형 이방과(정종)를 세자로 만들고 임금으로 세운 것은 그 원칙을 스스로 훼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방석을 몰아내는 데 활용됐던 논리가 쿠데타 성공 직후에는 이방원 자신에게 족쇄가 됐던 것이다.
 
이방원은 1400년에 정종의 퇴위를 유도해 왕위를 차지했다. 이때 이를 합리화하는 데 활용된 것이 택현이었다. 적장자 우선 원칙을 계속 내세우게 되면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은 왕이 되기 힘들었다. 그래서 적장자 우선 원칙을 끌어내리고 택현 논리를 띄우는 정치적 변화를 기하게 됐던 것이다.
 
정종 2년 2월 4일자(1400년 2월 28일자) <정종실록>에 따르면, 정종은 왕위를 넘기기 위한 전 단계로 이방원 세자 책봉을 단행했다. 이때 정종이 내세운 논리가 '이방원은 문무를 겸비하고 덕이 크며 공이 많다'는 등등이었다.
 
적장자 우선 원칙을 내세워 이방석을 없앴지만 이 원칙을 계속 고수했다가는 왕이 되기 힘든 이방원을 위해 택현 논리가 동원됐다. 이방원 측이 아닌 정종의 왕명에 의해 택현 논리가 천명된 것은 이방원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런 여러 사례들에서 나타나듯이 택현은 비상시의 정치 논리였다. 정상적인 왕위계승 절차를 따르게 되면 정치불안을 해소하기 힘든 경우에 이 논리가 천명되곤 했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조선시대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적장자가 부모를 잇는 게 지당했다. 장남이 아닌 아들, 혹은 첩의 아들이 부모 지위를 승계하면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따르기 쉬웠다. 택현 논리는 이런 상황을 합리화하고 반발을 무마하는 데 활용됐다. 그렇기 때문에 택현 논리가 등장하는 상황은 정치적으로 불안한 시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슈룹>은 택현 논리에 따라 왕자들이 세자 경쟁을 벌이는 모습을 어느 정도는 낭만적으로 묘사했다. 고생 없이 자란 왕자들이 궁 밖에 나가 생전 처음 고생을 겪게 되기는 했지만, 어느 왕자라도 능력만 있으면 세자가 될 수 있음을 보장해주는 건전하고 활력적인 왕실 풍경을 보여주는 장치가 되고 있다. 택현이 비상시의 정치 논리로 활용된 조선시대의 실제 맥락이 이 드라마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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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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