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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성공회 서울 주교좌성당 전경. 8년만에 똑같은 자리에서 그렸다. ⓒ 오창환
 
11월 28일부터 12월 10일까지 서울 시민청 갤러리에서 어반스케쳐스 서울 챕터 전시회가 열린다. 60여 명 정도가 참여하는 큰 전시다. 그래서 이번 정기 모임은 시청과 가까운 정동 일대에서 하기로 했다.

정동 일대는 그림 그릴 만한 예쁜 거리와 역사적 건물들이 많아 모든 스케쳐들이 좋아하는 장소다. 생각해보니 내가 어반스케쳐스 모임에 처음 참가한 장소가 정동이고 그때 성공회 성당을 그렸다. 그림을 찾아보니 그때가 2015년 9월이다.

이번 전시회는 참가자 별로 10점 정도의 작품을 낼 수 있는데 나는 작품이 좀 모라라서 2점 정도는 그려야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나갔다.

시청역에서 내려서 성공회 성당, 공식 이름으로는 대한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으로 갔다. 참 아름다운 건물이지만 이렇게 예쁜 건물은 그리기가 더 어렵다. 웬만큼 그려서는 태가 나질 않는다.

건물을 두루두루 돌아보고 세실 마루 옥상에도 가봤다. 서울 도시건축 전시관 지붕 위 카페에서 보이는 뷰가 가장 마음에 들었으나 이날 시위로 그 공간을 개방하지 않아 아쉬웠다. 결국 8년 전에 그렸던 그 자리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왼쪽 사진은 성공회 성당에서 성탄절을 준비하는 모습. 오른 쪽 사진은 서울 도시건축 전시관 지붕 위에서본 성당 전경이다. 이 구도가 가장 마음에 들었으나 사정상 그리지 못했다. 다음에 꼭 그려보고 싶다. ⓒ 오창환


이 성당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다. 4세기에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이후 가장 먼저 탄생한 교회 건축 양식이 바실리카 양식이다. 바실리카란 원래 고대 로마의 법원이나 상업거래소등 대규모 공공건물을 의미한다.

교회를 처음 건축하는 크리스천들로서는 기존의 건축물을 차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바실리카 양식은 직사각형 평면을 기본으로 하며 한쪽에는 출입구를 위치시키고, 반대편 끝에 반원형 앱스(apse)를 만들어 제대를 만들었다. 

그 이후에 나타난 로마네스크 양식은 11세기부터 12세기까지 유행하던 양식이다. 이 양식의 특징으로는 창문과 문에 반원형 아치(arch)를 많이 사용한 점, 건물 내부를 교차 볼트(vault)를 쓴 점, 하중을 견디기 위하여 창문이 거의 없는 두꺼운 벽과 굵은 기둥을 만든 점 등이다. 그리고 이 양식에서는 평면이 라틴크로스(Latin cross) 십자가 형태로 만들어져서 십자가의 머리 부분에 제대가 놓이고 발 부분에 출입구가 만들어진다.

대한 성공회는 1890년에 현 부지를 매입하여 선교를 시작했는데, 지금 우리가 보는 성당은 영국의 건축 설계사 아더 딕슨의 작품이다. 1922년에 건축을 시작하였으나 자금 부족으로 1926년에 1차 준공을 해서 성전으로 사용하게 된다. 당시에는 중앙 종탑과 앱스 부분만 완성되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이 앞을 많이 지나다녔는데, 그때 생각으로는 '성공회는 성당을 참 특이하게 짓는군. 이렇게 종탑만 삐쭉하게 짓는 것이 영국식이구나'라고만 생각했다. 물론 그때는 그 건물이 일부만 완성된 상태였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1993년 최초 설계도가 극적으로 발견되어 그 설계에 충실하게 증축, 1996년에서야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온전한 라틴크로스 형태의 아름다운 건물이 완성된 것이다. 옛날에 지어진 건물과 새로 지어진 건물이 세월을 넘어 연결되어 있지만 어떤 이질감도 느낄 수 없다.

로마네스크 양식 이후에 나타난 고딕 양식은 뾰족한 아치 창문과 문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로마네스크 양식보다 발전된 양식으로 더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었고 더 많은 채광과 더 넓은 면적을 확보할 수 있었다. 명동성당 등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근대 성당 건축이 고딕 양식인 이유다.

로마네스크 양식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성당을 바라보니 과연 이 건물은 고딕 양식에 비해 인간적이다. 상대적으로 덜 높고 둥글둥글하다. 창문처럼 보이는 아치가 벽면에 많은데 실제 창은 매우 적고 대부분 실제 창이 아니고 막혀 있는 페이크 창문이다.

너무 넓고 높은 벽은 조형적으로 지루하기 때문에 장식적 요소로 둥근 아치를 많이 사용했다. 붉은 지붕과 붉은 벽돌, 그리고 그에 대비되는 무채색의 화강석으로 건물에 장엄함과 생기를 부여한다.

내 그림은 너무 얌전해서 늘 불만인데 이번에 경주 어반스케치 페스타에서 폴 왕 작가의 워크숍을 보고 배운 것이 많았다. 좀 더 즐기는 마음으로 좀 더 과감하게 그려야겠다. 과감한 선을 위해 밑그림을 나무 포크로 그리고 본 그림은 카키모리 펜촉으로 그렸다. 그리고 물감을 튀겨서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8년 만에 새로 그린 그림이다. 그림 실력이 얼마나 좋아졌을까?

점심을 먹고 어반스케쳐들이 많이 모여 있는 정동길로 갔다. 시립 미술관 앞에서 부터 정동 제일교회, 이화여고 그리고 덕수궁 후문까지 많은 스케쳐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날씨도 좋고 전시도 목전에 있다. 그림 그리는 것도 좋지만 남들 그리는 것 구경하고 참견하는 것도 재미있다. 

주말이라 차 없는 정동 길에 많은 사람들이 나들이를 나왔고, 우리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고 다들 좋아하신다. 어반스케치에 대해 물어보시는 분들도 많다. 울긋불긋한 단풍이 아름다운 정동길은 가을이 무르익어 간다. 그래도 그런 아름다운 거리를 그리는 스케쳐들이 그중 가장 아름답다. 그래서 스케쳐들의 모습을 스케치북에 담았다. 다행히 이번 전시에 10장 모두 채워서 낼 수 있을 것 같다.
 
서울시립미술관 앞에 있는 스케쳐들을 그렸다. 왼쪽에 보이는 장미 다발 조각은 시립미술관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최정화 작가 작품이다. ⓒ 오창환
태그:#성공회성당, #정동길, #로마네스크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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