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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연극협회 김수란 회장
 충남연극협회 김수란 회장
ⓒ 최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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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둥지'에서 몸담고 있는 충남연극협회 김수란 회장은 한때 공무원이었으며, 현재는 연극에 전념하고 있는 서산의 인물이다. 연극 속 인물로 긴 시간을 살아온 그녀에게서 진짜 연기란 무엇일지가 몹시 궁금했다.

"처음부터 연극무대란 제가 살아있는 증거라고 할까요. 지금까지 이 일보다 재미있고 짜릿한 건 없었어요. 당당하면서 제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거든요. 상투적일지 모르지만 진짜 공연하다가 무대에서 죽을 수 있다면 그거보다 큰 축복은 없을 것 같단 생각을 해요."

11월 중순치고는 여느 해 보다 포근했던 지난 20일 여전히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는 배우 김수란을 만나 연극인으로서 살아온 그녀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시간이 갈수록 연극이 좋았어요 
 
충남연극협회 김수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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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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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공무원이었다가 연극인이 됐습니다. 당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공무원 되기 훨씬 전부터 연극을 먼저 했어요. 생각해보세요. 스무 살 넘도록 먹고 살기도 급급한데 계속 연극만 한다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부자도 아니면서 부모님께 빌붙어서 사는 것도 그렇고요. 

고민하다가 '그래, 연극이야 하고 싶으면 계속할 수 있으니까 차라리 공무원이 되고 같이 해나가자'라고 결심했죠. 때마침 준비했던 공무원 시험에 덜컥 합격이 된 거예요. 일하면서도 연극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셈이죠. 너무 좋았어요. 먹고사는 문제가 일단 해결됐으니까요.

시간이 갈수록 연극이 너무 좋은 거예요. 연차도 몰아 쓰면서 무대에 머물렀죠. 그러다 어느 시점이 되니까 파이가 커지면서 조금씩 (병행하기가) 힘들어지기 시작했죠. 공무원 할 때부터 '언젠가는 공무원 그만두고 연극무대로 돌아 갈 거다'라는 생각을 쭉 하고 있었어요.

그런 시점이 왔을 때 딱 결정했죠. 거짓말 안 보태고 고민 하나 안 하고요. 그런데 막상 사표를 내고 나니 연극 밖에 돌아갈 길이 없잖아요. 이거 밖에 없으니까 그냥 한 거예요. 미친 듯이."

- 정말 실천에 옮겼군요. 주위 반대는 없었는지, 그리고 본인은 어땠어요?
"남들이 봤을 때는 무모한 용기였나 봐요. "왜 나가냐", "이 철밥통을 왜 그만두냐?", "미쳤냐?", "남들은 공무원 하고 싶어도 못 하는데…." 라는 등 정말 얘기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실상 저에게는 용기 따윈 전혀 필요하지 않았죠. 지금도 전혀 미련 같은 건 없어요. 결정하고 나서는 빨리 그만두고 싶었고 하루하루가 너무 아까웠어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삶은 이제 끊어버리고 정말 연극 하나에만 몰입하고 싶었으니까요."

- 세상사가 생각처럼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잖아요. 직장을 그만두고 연극을 하면서 힘든 일은 없었나요?
"좌절과 실패가 있어야 지금의 꽃이 더 아름다운 거 아니겠어요(웃음). 적응하기까지 한 3년은 힘들었어요. 가장 먼저는 경제적인 거였죠. 남편이 아무리 번다고 해도 저도 남편만큼 벌다가 한쪽에 수입이 확 끊어지니까 타격이 심했죠.

그리고 또 하나는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상태에서 그만둔 게 아니잖아요. 그들이 보기에는 제가 너무 무모하고 대책이 없었던 거죠. 생각해보세요. 얼굴이 예쁘기를 해요, 몸매가 뛰어나기를 해요, 학벌이 좋기를 해요. 일반 사람들이 볼 때 배우라는 직업은 우선 이뻐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도대체 뭔 자신감으로 저러고 나가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가 왜 모르겠어요. 그런데요. 저는 '그러거나 말거나'라고 편하게 생각했어요. 그리고 중요한 건 전 재미없는 걸 잘 못 해요.

'남이 내 인생 살아줄 것도 아닌데'라고 편하게 무시해 버렸어요. 그런 시선 같은 거는 사실 전혀 중요하지 않았고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연극을 너무 좋아했고 미쳐 있었으니까 그럴 만도 했죠 뭐.

한번은 연가를 보름씩 내서 여기저기 공연을 다녔어요. 그러면서 '내 종착역은 연극무대'라고 생각했어요. 직장이 종착역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 무대로 돌아오면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어떤 것일까요?
"막상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배우로 나오니까 저를 인정해주는 거예요. 10년 동안이나 직장 다니면서 배우를 했을 때는 결코 배우라고 인정받지 못했거든요. 저는 열심히 했고 나름대로 잘했지만 늘 취미 그 이상으로 봐주지 않았으니까 은근 그것도 스트레스였어요.

근데 이제 이쪽으로 확 돌아서고 나니까 그때부터는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역으로 요구가 달라졌어요. "조금 더 프로페셔널하고 더 전문적이라야 되지 않냐?" 처음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저는 그 소리가 너무 좋았어요. 왜냐면 그제서야 비로소 제가 이 분야에서 뭔가 오롯이 오래 할 수 있겠구나 싶어 만족감이 있었죠.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가족)지지받지 못한 결정을 하고 왔기 때문에 더 이상 돌아갈 수가 없겠구나. 무조건 나는 잘 돼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들더라고요. 뭔가 보여줘야 하니까요. 뭔가 '희망의 증거'도 되고 싶었고요. 제 성격상 실패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어요. 단단히 마음먹고 다짐했어요. '그래,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냥 직진이다'라고 생각했죠."

주변 사람들의 희생이 저를 만들었어요
 
연극 오거리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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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거리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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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 둥지에 들어간 후로 최선을 다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왔습니다. 혹시 무대에 서면서 잊지 못할 일이 있다면요?
"공연 연습할 때 아버지께서 갑자기 주무시다 돌아가셨어요. 평소 천식이 있었지만 그렇게 금방 돌아가실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당신은 항상 아침 식사 후에 잠깐 한두 시간씩 오전 잠을 주무셔요. 그날도 곤하게 주무시길래 "아빠 나 연습 갔다 오면 저녁에 회 먹으러 가자"라고 해놓곤 집을 나갔었죠. 그리곤 2시인가 3시쯤 "아빠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온 거예요.

우리 큰아이가 갓난아기였고 저희 친정어머니가 아기를 돌봐주고 있던 시절이었어요. 옆방에 계셨음에도 아기 챙기느라 엄마조차 아버지 임종을 보지 못한 거예요. 그때가 3월 말, 벚꽃이 막 필 무렵이었죠. 집안에 딸이라곤 저밖에 없어 늘 저를 세상 누구보다 이뻐해 주신 분이셨는데 그렇게 허망하게 떠날 줄은 몰랐어요. 연락받고 정신없이 달려갔는데 아버지가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더라고요. 결국 깨어나지 못하시고 세상을 떠나셨죠.

아버지를 장지에 모시고 왔는데 하늘은 왜 또 그렇게 푸르고 바람은 왜 또 그렇게 잔잔하게 부는지요. 햇살이 눈 부신 이튿날부터 저는 또 다시 연극연습을 했어요.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서요. 참 못난 딸이죠. 나이가 들수록 그런 것들이 더 기억에 오래 남게 되네요.

어머니 때도 마찬가지예요. 작년 1월에 돌아가셨죠. 늘 바쁜 사람이란 이유로 엄마랑 많이 있어 주지 못하고 겨우 한 달에 한두 번 병원 가는 게 제가 해주는 가장 긴 시간이었죠. 휴게소에 잠시 내려 맛난 거 먹고, 바람 한 번 쐬는 게 다였어요.

정말 제게 연극을 묻는다면 '희생'이라고 생각해요. 친정엄마의 아이 돌봄, 애들 아빠가 또 엄마의 빈자리를 다 메꿔 주었고요. 제게 연극은 이래저래 주변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거로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쉬지 않고 연극할 수 있었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어요. 어느 순간에는 너무 큰 주변의 희생을 치르면서 얻어낸 결과물에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을 정도였죠."

- 큰 아드님도 연기를 전공한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반대가 심하셨다고요?
"맞습니다. 전공한다고 했을 때 제가 엄청 말렸어요. 힘들 뿐만 아니라 성공한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잖아요. 이보다 앞서는 것은 '배우는 배우의 운명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만 성공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물론 아들이 상당히 노력하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또 다른 관계가 있다는 생각에 엄청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그래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더라고요.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허락을 해줬어요. 싸우다 보니까 웬수될 것 같기도 했구요(웃음).

그때부터는 지원을 팍팍 했죠. 현재는 1학년 마치고 군대에 간 상태예요. 그 아이가 갈 험난한 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자꾸 잔소리가 나와요. 연극 때문에 밤이 깊은 줄 모르고 서로 얘기도 하면서 친해진 것도 사실이지만요."
 
우보 민태원 서산예술제
 우보 민태원 서산예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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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꿈이 있다면요.
"무대에서 저의 진솔한 얘기를 해 보고 싶어요. 저의 삶을 투영시키는 부분들이 굉장히 많지만 어쨌든 늘 남의 인생만 조각하는 게 연극이잖아요. '나의 이야기'를 하는 배우도, 그걸 관람하는 관객도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요.

또 하나는 같은 길을 가는 우리 후배들이 "그래 저 선배는 천상 배우였어. 그냥 좋은 선배였어"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남는 건 사람밖에 없다는 생각을 요즘 정말 많이 하거든요.

참, 내년 충남연극제, 청소년연극제, 아마추어연극제가 내실 있게 치러질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를 하겠다는 약속도 할게요. 개인적으로는 서산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관계자분들과 시민 여러분이 함께 도와달라는 부탁도 드리고 싶어요. 서산시의 문화예술 도시를 위해서요. 날이 추워요. 늘 건강 조심하시고 행복하세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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