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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특별전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를 다녀왔다. 외규장각 의궤 귀환 10년 연구성과를 전시하는 자리다. 의궤(儀軌)는 왕실의 중요행사의 모습과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문서로 당시 시대상을 알 수 있다.

아래의 극본과 콘티는 조선 순조시대 궁중잔치의 표정을 기록한 '기사진표리진찬의궤'의 일부를 쉬운 우리말로 푼 것이다. 박물관은 이 의궤를 영상을 통해 재현해 기록문화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기사진표리진찬의궤 내용
 기사진표리진찬의궤 내용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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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행사에 앞서 '헌가(軒架)와 등가(登歌) 두 무리의 악공(樂工)이 각자 자리에서 악기를 조율한다', '잔치의 흥을 돋울 여령(女伶:무용수)들이 입장하고 혜경궁의 위상을 상징하는 의장물(儀仗物)이 늘어선다'라고 한다. 

이어 '원유관(遠遊冠)을 쓰고 강사포(絳紗袍)를 입은 순조가 화려한 의장을 거느리고 등장한다', '혜경궁이 상궁의 인도를 받아 경춘전 밖으로 나온다', '순조와 왕비가 혜경궁에게 2번 절을 올린다', '여관(女官)들이 순조가 올린 전문(箋文:축하글)을 읽는다', '순조가 혜경궁의 자리 앞으로 나와 2번 절을 올린다'라고 한다. 

절이 끝나자 '모든 사람들이 다함께 절을 하면서 "천세"를 3번 외친다', "천세, 천세, 천천세"라고 한다. 

이어서 '혜경궁이 왕대비 이하 모든 참석자에게 꽃을 하사한다', '여령(女伶)이 악장(樂章:노랫말)을 창한다', "자궁(慈宮: 혜경궁)의 덕이 널리 퍼지니 후손이 모두 장수하리라", "자손들이 많은 복을 받으리니 기뻐하며 길이 노래하리라"라고 한다.

노래가 끝나자 '순조가 무릎을 꿇고 술잔을 받아 혜경궁에게 올린다', '모든 사람들이 다함께 절을 하면서 천세를 세 번 외친다', "천세, 천세, 천천세", '음식과 술이 나오고 헌가와 등가가 음악을 연주한다'라고 한다. 

여기서 '진표리'는 경사스러운 날을 기념해 옷의 겉감과 안감을 진상하는 행사이며, '진찬'은 큰 경사를 맞아 거행하는 궁중잔치를 일컫는다. 등가는 가야금, 거문고, 아쟁 같은 현악기가 중심이다. 헌가는 피리, 대금, 퉁소 등 죽관악기가 주류다. 헌가에 건고, 삭고, 응고 같은 대형 북이 포함된 것이 특이하다.
 
숙종시절 단종복위절차와 종묘봉안 과정기록인 '단종정순왕후복위부묘도감의궤'
 숙종시절 단종복위절차와 종묘봉안 과정기록인 '단종정순왕후복위부묘도감의궤'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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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맏손자 3살짜리 의소세손의 장례과정기록인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는 어람용 유일본이다
 영조의 맏손자 3살짜리 의소세손의 장례과정기록인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는 어람용 유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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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문화의 보물 

기사년(1809)는 혜경궁이 사도세자의 세자빈으로 관례(성인식)를 치르고 궁궐로 들어온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순조는 음력 1월 22일 창경궁 경춘전에서 할머니 혜경궁 홍씨(1735~1816)의 자애로움을 축하하고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진표리(進表裏) 의례를 개최했다. 한달 뒤 음력 2월 27일에는 왕대비와 왕, 왕비, 초청받은 왕실 친인척들이 모여 축하잔치인 진찬(進饌)도 열었다.

궁중생활을 기록한 한중록을 지은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의 부인이며 정조의 생모로 순조에게는 할머니가 된다. 순조는 잔치에 앞서 무진년(1808년)에 전교를 내린다.

의궤에는 행사 후 순조가 남긴 소감도 있다.

"경사스러운 예식을 거행하였으니 기쁜 심정을 이길 수 가 없도다. 날씨마저 맑고 화창하였으니 더더욱 천만다행이었다." (기사년(1809년) 2월 28일 순조의 전교(傳敎))

잔치에 참석한 중신도 축하하는 말을 남겼다.

"성상의 효심이 하늘에 닿아 날씨는 맑고 햇살도 빛나니 기뻐하는 소신들의 심정 또한 그지 없습니다." (기사년(1809년), 2월 28일 우부승지 박종훈)

의궤에는 잔치의 배경은 물론 행사준비와 진행과정, 사용한 물품과 비품까지 꼼꼼히 적고, 섬세한 묘사와 선명한 색상이 돋보이는 도설(圖說)도 함께 실었다.

의궤는 상세한 기록만큼 예술적 품격을 더해 기록문화의 보물로 평가된다. '의식의 궤범'이라 칭할 정도로 장인(匠人), 사자관(寫字官), 화원(畵員) 등 당대 최고 전문가들이 비단과 놋쇠 등 최고의 재료와 장황기법(전통미술보존기술)을 사용해 만들었다. 의궤를 완성하면 왕과 중신들이 함께 감상하는 절차를 별도로 가질 만큼 정성을 다했다.

무엇보다 의궤의 핵심적 가치는 국가의례와 행사의 기준과 예법을 제시한 것이다. 의궤는 예로써 국가를 다스리고 특히 바른 예법은 왕실의 정통성과 위상을 상징하며 여기에는 유교사회의 통치철학을 간직하고 있다.

조선시대 의궤는 오늘의 관점에서 일종의 '국가통치 매뉴얼'이다. 요즘처럼 세상이 혼미한 것은 매뉴얼대로 지키지 않거나 매뉴얼의 기본가치를 경시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의궤의 의미와 중요성을 되새겨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편, 의궤는 잔치가 끝난 후 3부가 제작돼 강화도 외규장각에 봉안됐지만 병인양요(1866년)때 프랑스군에 약탈됐다. 1891년 영국 국립도서관이 구입해 현재 한 부를 소장하고 있다. 아쉽지만 우리들이 관람하는 의궤는 영국 국립도서관의 협조로 국립중앙박물관이 복제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은 기록문화의 가치와 수준을 보여주는 세계기록유산이다. 의궤는 더 한층 업그레이드한 걸작으로 곳곳에 우수한 기록문화 DNA를 보여주고 있다.
 
의궤는 어람용(왼쪽)과 분상용으로 구분된다
 의궤는 어람용(왼쪽)과 분상용으로 구분된다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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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는 왕에게 올린 어람용과 여러 관청에 배포하는 분상용(分上用)을 나뉜다. 종류에 따라 종이재질은 물론 글씨체, 표지가 달랐다. 특히 외규장각 의궤는 대부분 어람용이다. 이 때문에 의궤를 '왕의 책'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앙박물관은 3부로 구성된 의궤 특별전을 내년 3월 19일까지 전시한다. 파리국립도서관에서 귀환한 의궤 460여점을 세심히 관람하면서 방대한 규모에 새삼 놀랐다. 영조의 맏손자 3살짜리 의소세손의 장례과정기록인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는 어람용 유일본으로 눈길을 끈다.

끝으로 외규장각 의궤하면 새겨야 할 인물이 있다. 역사학자 故 박병선(1923~2011) 박사다. 그는 프랑스에서 있던 외규장각 의궤를 최초로 발견하고 2011년 우리나라로 환수하는데 평생 공헌했다. 23일은 고인이 작고한 날이다. 이날을 기리기 위해 박물관은 27일까지 무료관람을 실시하고 있다.
 
외규장각 의궤 중앙박물관 특별전 현장
 외규장각 의궤 중앙박물관 특별전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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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의궤 중앙박물관 특별전 현장
 외규장각 의궤 중앙박물관 특별전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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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는 습관이 몸에 밴 것 같습니다. 어쩌다 글이 언론에 발표되고 이를 계기로 습작과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 기사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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