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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리는 까닭, 시를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나마 익숙함을 만들어 드리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점점점

- 심언주

계속해서 잘못한 점들이 떠오르면
머리 위로
우박이 쏟아진다.

이 점을 명심하라 했는데

후드득 자두가 쏟아지는 건
저 혼자 일찍 붉어지려 했기 때문.

기린이 그렇고
표범이 그렇고

믿을 수 없는 점들은 박힌 척 뛰어다닌다.

점집에서는 점점 더 그럴 거라 한다.

빗방울이 그렇고
꽃송이가 그렇고

채소밭을 뛰어다니는 우박 또한 마찬가지다.

- <처음인 양>, 문학동네, 2022, 12쪽


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진심으로 궁금한 질문입니다. 나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의기양양하다가도 나만큼 나를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며, 쉽게 침울해지고는 합니다. 이렇듯 내가 나를 잘 아는 사람인지 확신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또한, 내 의도와 다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말을 '내 귀'로 듣고, 휘두르고 있는 손을 '내 눈'으로 보면서, 내 진짜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다고 진심은 다르다고 얘기할 때도 있습니다. 진짜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존재하기는 한 것입니까.

차라리 나는 나를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나을 수 있겠습니다. 보통의 실수나 잘못은 '다 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니까요. 이 명제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각하면 훨씬 쉽습니다.

제 시 '눈물 차(茶)'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사랑해서, / 당신을 다 아는 줄 알았는데'라는. 혹시 당신, 누군가를 오래 만났다고, 오래 사랑했다고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만약 그렇게 믿으신다면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완벽한 착각을 하고있다'고.

누군가를 완전히 아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단적으로 '황혼이혼'이 늘어가는 까닭을 생각해 보시지요. 오래 산 부부이기에 서로에 대해서 잘 알 것이고, 그만큼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요. 황혼이혼이라는 말처럼 늘그막에 헤어지는 일도 생깁니다. 이혼 법정에서 이런 말도 자주 들린다고 합니다. '오래 참고 살았다.'

어떤 만남이든 '바뀌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간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물론, 사람은 언제든 실수할 수밖에 없으며, 실수를 통해서 삶과 사회, 관계를 배워가는 존재이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반복되는 실수에 면죄부를 줄 수 없습니다. 끝끝내 바뀌려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보이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심언주 시인의 시집
 심언주 시인의 시집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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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벌써 12월을 향해 달려갑니다. 한해 한해를 살아갈수록 더해지는 나이처럼, 삶도 더욱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의도하지 않아도 머릿속에는 붉은 신호등처럼 잘못한 일들이 연속해서 떠오릅니다. 때로는 너무나 부끄러워 홍당무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건과 마주했을 때, 내 얼굴이 빨개진다는 것은 '마음의 동요'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양심 때문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가치관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든 우리는 앞으로는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인데요.

아!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부끄럽지 않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라는. 동의합니다. 완벽한 인간은 없으니까요. 그러나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포기하는 만큼 점점 더 굴절의 강도는 높아질 것이고, 부끄러운 일들도 '점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삶 또한 우박 맞은 채소밭처럼 엉망이 되어 버릴 수밖에 없겠죠. 삶이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이렇게 글을 써 놓고 보니, 시집 앞부분에서 봤던 시인의 말이 떠오릅니다.

염치에서 서울까지 / 나였던 나를 / 내가 아니었을 나를 ... 나와 함께 / 때로는 너와 함께 / 밀고 가는 중이다. (시인의 말 중에서)

시 쓰는 주영헌 드림

심언주 시인은...

200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4월아, 미안하다』, 『비는 염소를 몰고 올 수 있을까』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시와 산문은 오마이뉴스 연재 후,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blog.naver.com/yhjoo1)에 공개됩니다.


처음인 양

심언주 (지은이), 문학동네(2022)


태그:#심언주시인, #처음인양, #점점점,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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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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