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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T작은미술관에 들어서면 그에게 영감을 줬던 6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도심 속 현대화가 밀집된 이곳에서 그는 또다른 은행나무 숲길을 조성했다.
 BRT작은미술관에 들어서면 그에게 영감을 줬던 6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도심 속 현대화가 밀집된 이곳에서 그는 또다른 은행나무 숲길을 조성했다.
ⓒ 필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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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이 넘는 고목을 보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웠어요."

도심과 외곽을 잇는 광역버스 환승주차장 상가를 리모델링해 지난 9월 새롭게 문을 연 세종시 BRT작은미술관에서 진행된 전시 '자화상-여행'(11월16일~27일)의 김미라(39) 작가가 말문을 열었다. 2008년에 학업을 마친 이후 15년간 서양화가로 활동해왔지만, 계속 순탄한 길만 걸었던 건 아니라는 고백이다. 이번 전시는 그의 10번째 개인전이다.

전시가 열리는 세종시뿐 아니라 전주, 군산, 당진을 비롯해 일본에서까지 전시를 가졌던 그는 단체전까지 포함하면 200번이 넘는 경력을 자랑한다. 마흔을 앞둔 그의 오랜 경력을 돌아보면 '젊은 베테랑'이라는 수식어가 맞을지 모른다. 10번의 개인전을 여는 동안 그는 한 번도 전시 제목을 바꾸지 않았다. 작품이 달라져도 한결같은 제목을 고집한 이유가 궁금했다.

자신을 되돌아볼 대상을 추상화해서 단순하게 표현
 
김미라 작가가 오랜만에 작가로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신도시에 이주한 젊은'이라는 세종시의 키워드가 자신과 유독 닮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미라 작가가 오랜만에 작가로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신도시에 이주한 젊은'이라는 세종시의 키워드가 자신과 유독 닮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 김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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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 2번째 개인전을 진행할 때 임신 중이었어요. 어느날 길을 걷다 오래된 은행나무 앞에 작은 나무가 곂쳐 있는 모습을 봤어요. 마치 임신한 저를 보는 것 같더라구요.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는데, 그 장면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 작가는 15년에 이르는 화가경력에서 몇 번의 고비를 겪었다. 어렸을 적부터 한순간도 화가라는 꿈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치면서 매번 장래희망에 화가를 적다 바라던 꿈을 이루게 됐지만, 돌이켜보면 중간에 변수도 많았다. 바라던 예술가로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할정도로 열정적인 그는 결혼 후에는 매년 개인전을 개최할 정도로 작업에 몰두했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임신은 그에게 또다른 고민으로 다가왔단다. 그러면서 10번의 개인전을 열면서 한번도 제목을 바꾼 적이 없던 배경을 들려줬다.

"사람들은 거울을 통해 겉모습을 보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상대방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 보잖아요? 자화상은 그런 것을 추상적인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거기에 여행을 붙인 이유는 삶 자체가 여행과 다를 바 없어서에요. 여행 하고 나면 좋은 기억이든 힘든 기억이든 결국 지나고보면 우리에겐 모두 추억이 아닐까요?"

15년에 걸친 경력에서 첫 5년은 해마다 전시를 열만큼 분주하게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계획에 없던) 두 번의 임신이 찾아오자 육아를 위해 작가 생활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평생을 지켜온 꿈을 포기할 수 없없기 때문에 용기를 내서 불혹을 앞두고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마침 세종시문화재단에서 진행한 청년예술 지원사업이 눈에 들어왔다. 만 39세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이 사업은 그에게 청년작가로서 도전할 수 있는 막차이자 작가의 세계로 나갈 하나의 빛줄기였다. 전라북도에서 학업을 마치고 줄곧 전시활동을 이어왔던 그는 세종시라는 신도시가 생기면서 이주를 결심했다.

BRT작은미술관의 전시장에 들어서면 그에게 영감을 줬던 6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도심 속 현대화가 밀집된 이곳에서 그는 또다른 은행나무 숲길을 조성한 셈이다. 그것은 여느 서양화가가 작업하던 평면에 그림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물감을 켜켜이 깊게 덧칠하는 방식이다. 거울을 통해 반사된 자기를 보는 것처럼 살아가면서 마주한 대상(사람, 자연)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을 표현한 것이다.

작품은 마띠에르 기법을 이용하여 물감을 두껍게 쌓아올렸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많은 경험의 층을 쌓는 것처럼 작가는 물감을 덧칠하면서 과거를 비교하고, 현재를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드려는 의도다. 머무를 수 없는 무수한 시간의 아름다움을 세월의 흔적 속에 세상의 빛깔들과 함께 마음을 쌓아 올린 작품이라 소개했다. 자연의 신비롭고 다양한 색을 바라보면서 색감을 극대화하면서 사진과 다른 회화적 풍경을 표현했다.

미술관 부족한 세종시에서 젊은 작가로 사는 법

주로 전북과 충남에서 활동해온 그는 현재 세종시에서 3년째 살고있다. 그에게 2022년은 조금 특별했다. 이번 전시가 열리기 직전인 9월에는 전주에 있는 '뜻밖의미술관'에서 3인전 Comma를 열었다.

한 달을 사이에 두고 전주와 세종에서 전시를 연 곳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보인다. 지역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생활 속에 미술공간으로 조성하려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작은미술관 사업의 일환으로 선정된 곳들이다. 특히 수도권과 다르게 미술기반 시설이 열악한 지역에서는 이런 움직임은 더욱 절실했다. 양쪽에서 전시를 모두 경험했던 그에게 두 곳을 비교하는 질문을 하자 이렇게 대답했다.

"문화예술이 기반된 전주는 그나마 낫죠. 그런데 세종시는 제대로된 미술관이 없어서 (작가로 활동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세종시에 들어온지 3년이 됐는데, 이곳엔 지금까지 완성된 미술관을 찾아보기 힘들었거든요. 그나마 올해 확장 이전한 BRT작은미술관이 5년간 유지하던게 전부였어요."

새롭게 시작하려는 그에게 세종시는 작가로 활동하기에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그에게 살아가야 하는 곳이기에 마냥 아쉬워만 할 수는 없었다. 세종시는 10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성장세를 이루어낸 도시다. 그리고 '신도시, 젊음, 이주민'이라는 키워드를 전면 내세울 정도로 역동적이곳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원주민보다 신도시 덕분에 이주민들이 많이 모인 곳이란 소리다. 결국 김 작가는 이곳을 '경계에 서있는 곳'으로 기억했다.

"이제 막 시작하는 곳입니다. 어떻게 보면 저도 상황이 비슷해요. 결혼 후 한동안 주말부부를 마치고 새로운 거주지로 들어왔는데 저도 이주민이잖아요. 살아가야 하는 곳이지만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생활터전이기도 해요. 아직은 40세가 넘지 않는 지원사업에도 선정됐으니 젊은 편에 속하기도 하잖아요. (하하) '신도시에 이주한 젊은 예술가'라는 콘셉트가 세종시와 절묘하게 비슷하지 않나요?"

지역 문화예술의 허브를 꿈꾸다
 
도심과 외곽을 잇는 광역버스 환승주차장 상가를 리모델링해 지난 9월에 새롭게 문을 연 BRT작은미술관은 세종시에서 유일한 미술관이다.
 도심과 외곽을 잇는 광역버스 환승주차장 상가를 리모델링해 지난 9월에 새롭게 문을 연 BRT작은미술관은 세종시에서 유일한 미술관이다.
ⓒ 필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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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T(huB of aRT) 작은미술관>은 세종시문화재단에서 '일상에서 만나는 미술관'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미술 공간이다. 2013년에 불과 12만명에 불과하던 세종시 인구가 지난해에는 37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를 이루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세종시에 등록된 문화기반 시설을 살펴보면 조금 의외의 결과가 나타난다. 인구의 특성을 반영해 도서관의 수는 11개에 이르지만, 문화예술의 역할을 담당하는 문예회관과 문화원은 각 1개씩 뿐이다. 미술관이 부족한 것은 놀랍다.

최근 10년간 지속적으로 인구가 증가하면서 문화예술인의 유입도 늘었지만,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문화예술의 수혜를 받을 수 있는 기회는 반비례하고 있는 셈이다. 높아지는 욕구에 비해 이를 충족시켜줄 기반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세종시는 한솔동에 위치한 광역버스 환승센터라는 유휴공간을 활용해 미술관으로 탈바꿈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지난 2018년 6월에 문을 연 이곳은 충청권에서는 유일하게 작은미술관으로 조성했다. 이곳은 아르코가 전국에 선정한 총 22개의 작은미술관 중 '도심 속에 존재하는 작은미술관'이라는 좋은 사례를 남겨 의미를 더했다.

신도시가 생기면서 유입되는 인구는 끊임없이 증가하지만 건물과 아파트가 밀집한 도심에서도 유휴공간을 활용한 미술관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사례가 될 수 있다. 외딴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버려진 집이나 건물이 아니라 도심 속에 자리잡고 있는 유휴공간도 적절한 대상자라는 의미다. 

세종시문화재단은 올해를 '시각예술 활성화의 원년'으로 삼고, 지난 6월부터 BRT작은미술관을 확장이전하면서 시설개선 공사를 추진해왔다. 새로 이전하는 미술관은 266.64제곱미터로 기존보다 2.5배에 이르는 규모로 확대했으며, 전문 전시공간과 연계 교육실 등으로 활용된다.

BRT작은미술관을 담당하는 세종시문화재단에 따르면, 재단의 임직원들도 약 70% 정도는 외부에서 유입된 이주민이다. 주로 공주와 청주에서 유입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인데, 정부청사가 있고 산하기관들이 자리잡으면서 최근에 급격하게 이주민이 늘어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막에 생긴 오아시스처럼 이곳을 이용하는 예술가와 이용객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고 전했다.

"미술관 이용객은 하루에 100명 가까이 돼요. 평일에는 주로 점심시간에 찾아오는 직장인들이 많고 아이들을 등하교시킨 후 엄마들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여기에 세종시에서 하나밖에 없는 미술관이기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단체관람을 오기도 해요."

새롭게 생겨난 신도시에 제대로 된 미술관이 자리잡게 된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래서 세종시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도 반겼다. 하지만 아직도 시도립미술관에 비해서 아쉬운 것이 없지는 않다며, 제대로 된 전시관이 더욱 늘어가야 한다고 입모아 말했다.

새롭게 시작하려는 김미라 작가와 새롭게 시작하려는 BRT작은미술관의 바람이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7일 마치고 또다른 작가의 전시가 준비되는 현장에서 그는 이렇게 바람을 드러냈다.

"여기에 멈추지 말고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역에 유휴공간을 활용해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도 너무 좋은거 같아요. 수도권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세종시같이 신도시에도 유입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데, 저희들도 예술을 관람하고 싶은 욕구는 늘어나거든요. 이번 기회가 더 큰 곳을 확장될 수 있는 마중물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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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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