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사방 500미터 이내에는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다. 이곳을 진입하는 외길 외에는 사방을 둘러봐도 산과 들판뿐이다. 정작 도롯가로 나왔다고 한들 나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루에 버스가 5번 밖에 지나지 않는 곳. 그나마 차로 5킬로미터는 나가야 큰 길가에 다다른다.

적송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이곳은 계곡과 산림욕, 산책로가 인근을 장식한다. 지하 148미터에서 약수가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다. 싱싱한 먹거리를 가꾸는 텃밭이 300평이나 된다니 놀랍다. 2010년 이후 여기를 거쳐갔던 수많은 작가들의 책이 서가를 뒤덮었다. 무려 5천여 권이나 된다. 약재관리사와 전통 요리가 전문인 안주인의 건강 영양식단은 이곳의 매력 포인트를 말할 때 늘 첫 번째를 차지한다. 
 
2010년 이후 이곳을 거쳐갔던 수많은 작가들의 책이 서가에 꽂혀있다. 무려 5천권이 넘는다.
 2010년 이후 이곳을 거쳐갔던 수많은 작가들의 책이 서가에 꽂혀있다. 무려 5천권이 넘는다.
ⓒ 필립리

관련사진보기

'글을낳는집' 이곳은 문학분야 창작 레지던시(입주공간)이다. 다시 말해, 시, 소설, 수필, 희곡, 아동문학 등 문인들이 창작활동에 몰입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제반 여건을 지원하는 곳이다. 대략 주거공간과 식사가 책임진다. 매번 공모를 통해 입주할 작가를 선정하는데, 경쟁이 치열하다. 입주기간은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대략 1~3개월 정도 머무를 수 있다.

이런 곳은 전국으 곳곳에 여럿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토지문화재단의 창작실을 비롯해 서울 명동의 전철역에서 불과 5분 이내에 위치한 프린스호텔 레지던시도 있다. 하지만 '글을낳는집'은 수도권도 아니고 전라남도 담양군 대덕면 용산로 543로, 시골 중에 시골, 아주 외딴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의 주인장은 김규성 시인(72)이다. 여기에 입주한 이들은 그를 두고 '촌장'이라 부른다. 아마도 근처에 사는 이가 없는 유일한 마을이라 그랬을 수도 있다. 아니면, 아프리카에 가면 상상하는 부족의 촌장으로 생각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정확한 연유는 모르지만, 촌장이라는 이름이 정겨울 뿐이다. 그리고 입주한 작가들은 그가 오랫동안 이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한다. 아마도 그와 겪었던 시간들, 그와 함께 했던 매순간이 단순히 업무상으로 엮인 관계가 아닐 것이란 짐작을 할 뿐이다.

"힘이 될 때까지 하고 싶어요. 너무 행복합니다. 지금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이곳을 운영하기 위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래 아르코)에서 지원금을 받고 있는데, 처음에는 2천만 원을 지원받았어요(이곳은 2010년부터 운영이 시작됐다). 우리 돈은 3천만 원 들어갔습니다." 

아르코에서 받는 지원금은 주로 숙식에 사용된다. 이 밖에 건물 유지비, 난방 등에도 들어간다. 지원금이 공간을 운영하는데 완벽하게 충족되진 않지만, 그래도 그는 만족해 보인다. 원래는 50:50에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정부에서 관심을 줘서 지원규모를 늘렸단다. 그래서 지금의 자부담 규모는 3분의 1정도가 된다. 요즘 대부분의 레지던시가 30:70정도라고 부연 설명했다. 

"처음에는 집사람이 반대했어요. 평생 살아오면서 사회적으로 관심을 갖고 돌아볼 여유가 없었거든요. 2010년에 이곳을 조성하기 전에는 사업을 하면서 글 쓰는 것을 병행했습니다. 사업은 그렇게 크지 않았어요. 만약 크게 하려면 서울로 갔겠죠?(하하) 광주에서 대가족을 끌고 갈 수 있는 최소한만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소소하게 했습니다."
 
글을낳는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규성(사진 좌측) 시인은 입주한 작가들이 촌장이라 부른다. 이곳에 입주한 홍종의 동화작가는 "여기의 매력은 사모님의 음식솜씨"라고 힘주어 말했다.
 글을낳는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규성(사진 좌측) 시인은 입주한 작가들이 촌장이라 부른다. 이곳에 입주한 홍종의 동화작가는 "여기의 매력은 사모님의 음식솜씨"라고 힘주어 말했다.
ⓒ 필립리

관련사진보기

 
그는 자식뿐 아니라 조카 둘을 함께 키웠다. 이제는 다 커서 시집 보내고 분가시키니까 남은 시간을 되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그들을 뒷바라지를 하고 나니 남은 것으론 조금 빠듯했다. 이제 한적한 곳에 들어와서 쉬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거 하다가 가야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사회에 환원하고 싶어요. 사회에 채무개념이라면 맞을까요. 여기는 새로 지은 것은 아니고 기존에 있던 집을 활용해 만들었습니다. 때마침 레지던시 사업이 2010년부터 시작했어요. 자부담 조건도 맍고 저의 환경, 배경도 맞았거든요. 그 뒤로 여기 작가들도 보니까 어떤 분들은 매몰차다고 볼 수 있겠지만 여기 오면 밥값은 해야하지 않나요?"

이곳에 입주한 작가들에게 물었다. 촌장이 직접 밥값을 하는지 확인하냐고. 다소 뚱딴지 같은 질문이지만 늘 그렇게 한단다. 기숙사의 무서운 사감 선생님 같은 느낌일지 몰라도 작가들은 그 앞에서 조금의 가식도 없어 보인다. 그런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은 서로에게 쌓인 '정' 때문이라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여기를 나간 지 10년이 넘은 사람들과도 꾸준히 통화합니다 그럼 "지금 뭐 써?", "잘 되는가?"라는 말을 계속 나누거든요."

인터뷰 하는 김 촌장의 뒤로 서가에는 수많은 책들이 꽂혀 있다. 여기에 있는 책의 수를 묻자 대략 5천 권이 넘을 거란다. 아마도 이것이 전부는 아니고 일부만 꺼낸 것인데, 지금까지 거쳐간 문학인의 발자취를 여실히 엿볼 수 있다. 이곳에 입주한 작가는 총 7명이다. 남자 5명이 한 건물에 입주했고, 반대쪽에 여자 작가 2명이 거주한다. 이런 규모로 아기자기하게 운영하고 있는 레지던시를 운영할 만한지 그에게 물었다. 

"확실히 재밌고 할 만해요. 게다가 집사람도 긍지를 느껴요. 아내는 전문적으로 식사를 담당하는데, 다른 곳보다 여기가 밥맛이 좋다고 소문이 났어요.(하하) 직접 식단을 짜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거든요. 체질식 같은 것도 좋아요. 건강식에 관심이 많습니다."

여기에 입주한 대부분 작가들은 가족적인 분위기가 제일 좋다고 말했다. 김 촌장은 한 마디로 그것을 '정'이라 부른다. 심지어 입주기간이 끝나고 나갈 때는 울고 가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와 관련된 몇 가지 일화를 덧붙였다. 

"엊그제는 논산에서 한 작가가 결혼한다 그래서 다녀왔어요. 아동문학하는 친구였는데, 몸이 조금 안 좋아 거동이 불편한 친구입니다. 간김에 어떻게 사는지 들여다 보려고 했죠. 저는 차 한 잔만 마시고 어떻게 사는지만 보려고 했는데, 보령 바닷가에 가서 차 한 잔 하자는 거예요. 저녁 약속도 제안했지만, 다른 곳에 선약이 있다고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그랬더니 나중에 집사람하고 같이 와서 하루밤 자고 가래요. 늘 그런 식이에요." 

그래도 수많은 작가들이 2~3개월씩 같이 살다가 떠나면 섭섭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당연히 그렇다며, 그래도 지금은 많이 겪어 이골이 나서 견딜만 하단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어 했다. 집사람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매일 마주치면서 살아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제는 서로간에 애로사항이 뭐냐고 묻기도 하고, 문학에 대한 얘기도 서슴없이 나누고 지낸다(그도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문인이다).

그에겐 장성한 아들이 있다. 일흔을 넘긴 그가 외딴 곳에서 아직도 현역처럼 일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지 않냐는 질문에 아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레지던시를 시작할 당시에는 약간의 의견 차이가 있었다. 아들 입장에선 평생 고생하다가 이제 조금 쉬면서 살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그러다가 안주인과 얘기하다 보니까, 오히려 외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글쓰기에도 자극을 받는다는 것에 안심했다. 처음에는 고생을 많이 했으니까 이제는 돈을 쓰면서 살길 바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글 쓰는데 그도 자극을 받는다는 것이다.

"호텔에 갇혀서 글을 쓰는 것보다 사람들하고 같이 얘기도 나누는 것이 맘에 든대요. 원칙적으로 남의 창작 활동에 방해하는 행동은 하면 안돼죠. 그런 반면에 여기서 가끔 막걸리 한 병 정도 마시면서 합평회를 하는 것을 봤습니다. 저는 막걸리 없이 합평회를 하지만, 여기 작가들이 자기들끼리 치열하게 합니다. 그럴 때 막걸리는 술이 아니라 차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정도까지는 봐줍니다.(하하) 그렇지 않으면 호되게 혼내기도 합니다."

13년간 레지던시 사업을 운영하면서 문인에 대한 애착을 절실하게 느꼈다. 다만 여기에 응모하는 이들 중 올곧이 바라보지 않는 이들이 있다며, 그의 입장에선 옥석을 가려낼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작가의 걱정대로 앞으로 언제까지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들려줬다. 

"이런 레지던시가 필요하냐 필요하지 않냐는 진단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저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가령, 여기 와서 단순히 숙식만 하고, '창작'이라는 분야는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서로 뚫어주고 자극을 받는 게 중요해요.

자기보다 수준이 낮은 사람일지라도 열심히 쓰는 분들도 계십니다. 모두가 자기만의 세계가 있어요. 그런 것을 통해서 서로 자극을 받고, 끌어주는 것이 중요해요. 여기 작가들도 서로 많이 끌어주고 그 제자들이 와서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것을 봤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을낳는집’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집필공간운영지원사업>에 선정된 공간이다. 이 사업은 안정적 문학 창작환경 제공을 통한 우수 문학작품 생산 기여하는 것이 목적이다. 문인 대상 문학집필공간을 보유·운영 중인 단체들에게 문학집필공간 운영에 필요한 인건비, 운영비, 공공요금 및 제세 등을 지원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