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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펜기자로 현장을 누비는 취재를 했지만 스무살부터 꿈꿔왔던 소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사표를 낸 정진영(41) 작가는 현재 가장 핫한 소설가로 활동 중이다.
 오랫동안 펜기자로 현장을 누비는 취재를 했지만 스무살부터 꿈꿔왔던 소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사표를 낸 정진영(41) 작가는 현재 가장 핫한 소설가로 활동 중이다.
ⓒ 필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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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하다 죽을 수도 있는데, 이건 아니지 않나요?" 

오랫동안 펜기자로 현장을 누비는 취재를 했지만, 스무살부터 꿈꿔왔던 소설가의 꿈을 저버리지 못하고 마침내 사표를 낸 정진영(41) 작가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신문기자 출신으로 성공(?)한 소설가가 몇 있지만 누구는 이렇게 얘기한다. "<동아일보>에 장강명이 있다면 <문화일보>에는 정진영이 있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레지던시에서 글을 쓰는 작가를 만날 기회가 생겼다. 그래서 입주작가 리스트를 보던 중 낯익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업무상 알게됐지만,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눈 적은 없었다. 그러나 문화부에서 출판을 담당했던 그였기에 주변인에 대한 얘기를 쉽게 나눌 수 있었다. 27일 오전 전남 담양에 있는 '글을낳는집' 레지던시에서 정진영 작가를 만났다. 

데뷔를 하고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진영 소설가는 현재 전남 담양에 위치한 '글을낳는집'이라는 레지던시에서 작품을 쓰고 있다.
 정진영 소설가는 현재 전남 담양에 위치한 '글을낳는집'이라는 레지던시에서 작품을 쓰고 있다.
ⓒ 필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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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화제를 모으는 작가로 입말에 오르내린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2011년도에 소설 <도화촌기행>으로 데뷔한 그는 2019년에 장편소설 <침묵주의보>로 제2회 백호임제문학상에서 본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JTBC에서 2020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방영된 <허쉬>(황정민, 임윤아 주연)의 원작이기도 하다.

10년 넘은 기자로 풍부한 경험이 활자 속에 꿈틀됐기 때문에 당시에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로 기억한다. 전문직을 다루는 드라마가 종종 나오지만 기자를 소재로 한 작품은 그렇게 많지 않았던 터라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 드라마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정진영의 2019년 장편소설 <침묵주의보>는 JTBC에서 방영된 드라마 <허쉬>(황정민, 임윤아 주연)의 원작이다.
 정진영의 2019년 장편소설 <침묵주의보>는 JTBC에서 방영된 드라마 <허쉬>(황정민, 임윤아 주연)의 원작이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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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정 작가는 2020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젠가>도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라 소개했다. 연이은 성공가도를 질주하고 있는 작가는 분명 소설계에서 뜨고 있는 작가이거나 여러 작가 지망생들에겐 선망의 대상임이 분명하다. 순수 예술을 업으로 하는 작가들이 그러하듯 책 속의 활자가 대중의 곁으로 찾아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드라마나 영화 같이 더 넓은 방식으로 대중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작가의 작품활동에 큰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 생각해 그에게 소감을 물었다. 

"다들 원하는 일이죠. 하지만, 2011년도에 <도화촌기행>이라는 소설로 데뷔했는데, 그걸 내고 7년 동안 아무 작품을 못썼어요. 누가 저 보고 청탁을 하는 일도 없었어요. 그때는 제가 기자여서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요." 

그는 20대 초반에 썼다가 묵혀뒀던 <다시, 밸런타인데이>라는 장편소설로 대학 졸업 전에 학내 문학상을 받았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그는 소설가로 데뷔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절간에 틀어박혀 <도화촌기행>을 썼다. 하지만 어느 출판사도 원고를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밥벌이를 위해 낙향해 신문사에 취업한 그는 몇 년 후 아무런 기대 없이 그 원고를 조선일보판타지문학상에 응모했다. 당시엔 그 작품이 데뷔작이 될 줄은, 데뷔를 하고도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데뷔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 줄 알았어요. 국내 최대 상금을 건 문학상이었으니까. 그런데 어떤 출판사도 제게 작품을 청탁하지 않더라고요. 심지어 제 작품을 내준 출판사도. 그런 와중에 일이 바쁘니깐 7년이 금방 흘러갔어요. 그러던 중에 윗선과 충돌해 다니던 신문사에서 퇴사했고, 기자로 일하는 데 회의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언론 조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장편소설을 써야겠다고 오랫동안 마음을 먹어왔는데, 퇴사가 뜻하지 않은 기회가 됐죠."
  
그렇게 조직생활의 쓴 맛을 뼈져리게 느낀 그는 그때의 다짐을 보여주려고 마음 먹었다. 그때 마음 속에 있던 내용을 정리한 작품이 바로 <침묵주의보>다. 그런데 그 소설을 쓰고 나서 한동안 곳간이 떨어진 게 보였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당장의 먹거리즘을 걱정하게 됐다(하필 당시에 와이프도 일이 없었던 시간이었다). 

"<침묵주의보>를 집필하고 야인으로 지내던 시절에 몇몇 언론사에서 제게 입질을 하더라고요. 경력 기자로 꽤 쓸만한 연차였거든요. (하하) 다시는 기자로 일할 생각이 없었는데, 밥벌이를 위해 다시 다른 언론사에 입사해 기자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집필한 원고를 여러 출판사에 투고하고, 공모에도 들이밀었는데 모두 실패했거든요. 집필 후 출간하는데 1년 가까이 더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출간을 해도 외부에서 반응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이렇게 했는데도 안 되는 거 보니 난 그냥 소설 쓰지 말아야겠다며 좌절을 경험했다. 그렇게 무심코 지난 1년. 뜬금없이 드라마 제작 소식을 전해왔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젠 안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나중에 이유를 들어보니 키이스트에서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는 후문을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언론을 다룬 소설을 다 찾아 읽었대요. 그 중에서 제 소설이 제일 리얼했다네요. 저도 처음에는 제작사 임원이 보낸 메일을 보고 사기인 줄 알았어요. 와이프한테도 물어보니까 사기인 거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수소문해봤어요. 그랬더니 사기가 아니고 진짜더라고요." 

뜻하지 않은 곳에서 활로가 열려 묻혔던 소설이 부활했다. 다만 그는 제작사 측의 각본 집필 제안은 거절했다. 각본 집필 작업과 기자 일을 병행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는 게 이유다. 각본 작업에 집중하려면 기자 일을 그만둬야 하는데, 당시에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퇴사 후 배고팠던 시절을 생각하면 아찔해졌기 때문이다. 

진짜 기자를 그만두게 된 계기는 
 
기자로 재직할 당시 당직을 서던 정진영 소설가
 기자로 재직할 당시 당직을 서던 정진영 소설가
ⓒ 정진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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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문화부에서 출판 담당을 하면서 이제 기자를 관둬야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기자가 작가를 만나잖아요. 그런데 나는 뭐 하고 있나 싶더라고요. 나도 새 작품 써야하는데 "왜 여기서 작가들을 쫓아다니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문화부 문학 담당기자는 그가 자원해 이뤄진 일이었다. 새로운 한국 소설을 누구보다 빨리 접하고, 작가를 직접 만나는 일이 즐거울 줄 알았는데 막상 일을 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사직서를 쓸 용기는 나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괴로워하는 사이에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2020년에 연초에 제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어요 석간이니까 새벽에 출근을 하잖아요. 새벽에 출근을 하다가 차를 몰고 가는데 뭐를 밟아서 차가 굴렀어요. 차는 폐차될 정도였는데, 저는 하나도 안 다쳤어요. 문득 출근하다가 죽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그만두려고 했는데, 데스크가 만류해서 조금 더 다녔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떠났는데, 일이 제대로 잡히겠어요? 두 달만에 결국 사직서를 내고 말았죠."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와중에 그가 받은 보도자료 메일 중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토지문화재단에서 보낸 것인데 입주작가를 뽑는다는 소식이었다. 그래서 지원하니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그게 정진영 작가가 꿈에 그리던 소설가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그때가 2020년 3월이다.

[다음 기사] "'분식집 주인'이 국회 입성한 이야기 쓰고 있어요" http://omn.kr/21sq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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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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