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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리는 까닭, 시를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나마 익숙함을 만들어 드리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기자말]
열외

- 이향지

다리 한쪽을 다치니 신발 한쪽이 남는다

곧추설 때마다 쏟아지듯 아픈
뜬 발을 앉히려고
남는 신을 변기 옆에 갖다 두었다
하루에 몇 차례 뒤꿈치를 살짝 대이는 것만으로도
신발들은 묵묵히 열외를 견딘다

심장보다 발을 높이 들어 올리고
목발 둘과 나란히 드러누워 있으니
창밖의 새는 더 높이 더 가볍게 날고
자동차들은 더 빨리 더 큰 소리로 달린다

내 등 아래서 네 발을 힘껏 구부려
넓적한 등을 빌려주는 침대

부스스한 코끝에 아카시아꽃 향기를 달고
가장 길고 높은 잠을
자고 또 자는 한때
누운 몸 둘레에서 쑥쑥 자라나는 잔디

- <야생>, 파란, 2022, 18~19쪽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쉬울 수 없는' 질문입니다. 질문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뉩니다. 답이 있는 질문과 답이 없는 질문. 답이 있는 질문은 쉬운 질문에 속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답을 알게 되면, 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답이 없는 질문은 문제와 만나는 순간부터 내와 문제가 한 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지병처럼.

'병'이란 무엇입니까. 내 몸 안에서 나를 반대하는 소요(騷擾)입니다. 병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까닭은, 나를 반대하는 무엇인가 내 몸 안에서 웅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병은 어디서부터 출발한 것일까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생겨난 입니까.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병은 씨앗처럼 내 몸에 심겨 있다가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이 되자 발화한 것입니다. '몸이 있기에 병이 있다'라는 명제가 거짓이라고 말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시에서 화자는 발을 다쳤습니다. 이를 병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몸이 불편해짐은 매한가지입니다. 그런데요, 화자가 발을 다치자 발이 화자의 눈에 들어옵니다.
  
발은 내 몸의 일부이지만, 발이 있다고 시시각각 인식하지는 않습니다. 있어도 없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다가 발에 문제가 생겨야만, 비로소 발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신발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번 신발을 신고 생활하지만, 신발을 신고 있음을 느끼지 못합니다.

'다리 한쪽을 다치니 신발 한쪽이 남는다'라는 문장은 지극히 당연한 말입니다. 다리 한쪽을 다쳐서 깁스하게 되니 신발 한쪽은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봐도 대수롭지 않은 상황인데, 왜 시인의 눈에 남겨진 신발이 들어왔던 것일까요.

2연의 '열외'라는 단어가 실마리가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이 시 한 편으로 시인의 시 세계에 대해서 다 얘기할 수 없겠지만, 시인이 삶을 마주하는 방식의 실마리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향지 시인의 시집
 이향지 시인의 시집
ⓒ 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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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갑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프롤로그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쓴다 이것이 나의 병입니다 … 내가 나를 다시 찾아 들고 내가 정말 나인가 묻고 또 묻고 있는 이것이 여전한 나의 병입니다' 한쪽 다리를 다쳐서 신발 한쪽이 '열외'된 경우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면, 신발은 눈에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뒹굴던 신발이 어디론가 사라져도 신경 쓰지 않겠죠. 신발은 새로 사면 그만이니까요.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상황입니다. 깁스를 하는 일이 일상적이지는 않겠지만, 누구나 처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 참 많습니다.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들리지 않는 것도 많습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보려 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질문을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없던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많습니다.

시인의 시선은 시 「시 11」의 '암흑'으로부터 두렵고 캄캄함만이 아니라 부드럽고, 한없는 아량을 발견합니다. 시 「열외」에서 하루에 몇 차례 뒤꿈치를 살짝 대이는 것만으로 묵묵히 열외를 견디는 신발을 발견합니다. 이 아픈 발을 통해서 더 높이 더 가볍게 나는 새들과 더 빨리 더 큰 소리로 달리는 자동차를 발견합니다.

이처럼 발견할 수 없는 것을 창조하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사물·사람·마음 등을 재발견하려는 시인의 시선, 그것이 바로 시인이 가지려하는 '시를 향한 믿음'이 아닐까요. 소외된 것들, 열외 된 것을 진심으로 호명하려고 노력하는….

'직립이면 다 되는 줄 알았다 / 허리 고마운 줄을 몰랐다 / 굽힐 줄을 몰랐다'(「허리 고마운 줄 몰랐다」) 중에서.

시 쓰는 주영헌 드림

이향지 시인은...

1989년 <월간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집 『괄호 속의 귀뚜라미』, 『햇살 통조림』 등이 있으며, 에세이집으로 『산아, 산아』 등이 있습니다. 현대시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시와 산문은 오마이뉴스 연재 후,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blog.naver.com/yhjoo1)에 공개됩니다.


야생

이향지 (지은이), 파란(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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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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