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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보내고 겨울이 오기 시작하면서 주부들은 마음이 바쁘다. 맨 먼저 준비해야 할 일이 김장이기 때문이다. 이때가 되면 지인들과 너도나도 "김장은 했어?"라고 묻는다. 그만큼 김장 김치는 식생활에서 빠지지 않고 큰 비중을 차지한다. 결혼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김장을 빼놓지 않고 해왔다.

올해는 한동안 날씨가 추워지지 않고 겨울이 오는지, 지금이 가을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날들이 계속되어 마음이 바쁘지 않았다. 언제쯤 해야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3일 전 큰집 시숙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김장 안 했으면 파랑 무좀 가져가"라고 말씀을 하신다. 그 말을 듣고 큰집으로 곧장 가지러 갔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지혜

큰집에는 조카들이 김장을 시작해서 배추를 씻고 있었다. 시숙 어른은 우리에게 우리 몫이라고 대파와 쪽파 무을 주신다. 파를 다듬고 밭에 그대로 있는 무청을 포대에 담아 집으로 가지고 왔다. 나는 무 시래기 음식을 좋아한다. 시래기 시짐도 좋고 시래기 된장국도 좋아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과는 달리 예전에는 모두가 즐겨먹던 음식이다. 

집에 오자 바로 나는 커다란 그릇 두 곳에 불을 켜고 새래기를 삶았다. 양이 제법 많았다. 바로 삶아 커다란 양은그릇에 잘게 썰어 된장과 들깨가루를 넣고 주물럭주물럭 무쳐 지퍼팩에 담아 냉동실에 넣었다. 집에 오는 딸들도 주고 겨울 동안 시래기 된장국을 끓여 먹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부자가 된 듯하다. 누구 마음 시린 사람이 있으면 된장국 끓여 집밥을 해 주고 싶어진다.
 
무청을 삶아 들깨가루와 된장을 넣고 주물럭 주물럭 해서 지퍼팩에 담아 냉동고에 넣어 놓고 국을 먹는다.
▲ 무청 시래기 된장국 재료 무청을 삶아 들깨가루와 된장을 넣고 주물럭 주물럭 해서 지퍼팩에 담아 냉동고에 넣어 놓고 국을 먹는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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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청을 삶아 된장과 들깨가루를 넣어 무치고 지퍼팩에 담는다
▲ 무청 된장국 재료 무청을 삶아 된장과 들깨가루를 넣어 무치고 지퍼팩에 담는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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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배추김치만 담그면 된다. 나이 들어가면서 일을 한꺼번에 많이 하면 힘이 든다. 조금씩 힘에 부치지 않게 하려고 한다. 살면서 쉽게 사는 지혜를 찾는다. 무엇이든 내가 감당할 만큼 일도 하고 사람 관계도 힘들지 않을 정도로 조율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나를 지키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우리 부부는 나이 들어가면서 김치를 많이 먹지는 않지만 딸들에게 엄마가 김치를 담아줘야 하기 때문에 김장을 한다. 또한 습관처럼 김장을 한다. 김치 냉장고가 비어 있는 것은 곳간에 양식이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김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각 가정에서 김치를 담는 것도 하나의 문화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맛도 제각각이다. 김치를 담는 것은 일 년에 해야 하는 집안 행사이며 축제 같은 일이었다. 사람이 모이고 음식을 나누고 따뜻한 가정문화였다. 요즈음은 김치를 사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나는 아직은 김치를 사 먹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김치를 담근다는 것은 가족의 건강을 살피고 내가 살아있다는 확인이 될 수 있는 일이라서 감사하고 즐겁다. 먹고사는 일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으랴. 어쩌면 사랑이란 의무가 따르는 것처럼, 사랑에는 각기 다른 해야 할 몫이 있다. 그 중심에는 엄마란 역할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김장이라는 놀이?
 
맵지 않은 동치미
▲ 동치미 맵지 않은 동치미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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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추워지기 며칠 전 동치미는 따로  담가 놓았다. 아침이면 깨죽을 끓여 아침 식사로 먹을 때 유산균이 많은 백김치를 먹는다. 김장 전에 담아 놓았더니 알맞게 익어 먹기가 딱 좋다. 나이가 들수록 먹는 것도 가려 먹어야 한다. 소화가 잘 되고 위에 부담이 되지 않는 음식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김치를 만들어 먹는다. 건강한 삶을 위해 무얼 먹고 살아야 할까 늘 신경을 쓴다.

마침 동생이 수원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금방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말에 마음이 바쁘다. 언제나 김장은 동생과 함께한다. 파와 무도 준비가 되어 있고 배추만 있으면 되는데 절임배추를 하루에 구하기는 어럽다. 미리 예약을 해서 주문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는 게 문제다. 어떻게 해야 하나 신경이 쓰인다. 배추를 사다가 절여야 하나 생각이 많아진다. 김장 중에 제일 힘든 일이 배추 절이는 일이다.

이제는 배추 절이는 일은 힘이 들어 하기 싫다. 동생이 가기 전에 김장을 하려 동네 마트에 갔는데 그곳에는 절임 배추가 없다. 또 다른 마트에 가보았다. 마침 절임 배추 여분이 60kg 있다고 마트 직원이 말한다. 얼마나 반가운지, 배추는 배달시키고 양념을 사 가지고 와서 부지런히 김장할 준비를 한다. 지금은 아파트 안에서 김치를 담그니 아무리 추워도 불편하지 않다. 예전과 비교하면 지금 김장은 놀이나 마찬가지다.
 
김치 담는 모습
▲ 김장 하기 김치 담는 모습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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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부지런히 김장 버무릴 양념 준비를 해 놓은 다음 동생이 와서 김치를 버무려 김치 냉장고를 다 채워놓고 나니 부자가 된 듯하다. 큰일을 해 놓은 것처럼 마음이 얼마나 홀가분한지 올 한 해 할 일을 다 마무리한 듯한 기분이 든다. 저녁에는 수육을 삶아 저녁을 먹었다. 산다는 것은 매번 반복되는 것 같지만 눈에 보이지 않은 질서를 지키며 우리는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

김장하는 일이 힘든 일이라고 하지만 나는 김장하는 날들이 길어지기를 소망한다. 딸들 가족들과 우리 부부는 김장김치와 함께 또 한해를 잘 살아 낼 것이다. 수많은 희로애락을 같이 하면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김장 하기, #무청 시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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