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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거의 한 달 만에 돌아온 것 같네요. 수요일에 무언가 써야 한다는 찜찜한 기분이 있으면서도 또 쓰려고 하면 피곤함이 몰려와서 건너뛴 게 거의 한 달이 다되고 두 달이 다 되어갑니다.

그래서 억지로 글을 함께 쓰는 모임에 들어갔습니다. 정말 하루에 하나의 글을 쓰고 올리는 건데 생각보다 재밌습니다. 혼자 쓸 때는 힘겹기만 하던 게 함께 응원하고 으쌰으쌰 하니깐 써지더라고요. 써야 한다는 당위성도 있고요. 

저는 차를 샀지만 요즘 같이 추운 날에는 안 가지고 다니거든요. 눈 소식이 있는 날은 무서워서 고이 모셔놓고 지하철로 향합니다. 한국 지하철 출근길의 풍경을 아시나요? 누구 하나 떠드는 사람 없이 눈을 감거나 핸드폰과의 독대로 조용한 그 곳.

저도 따스함에 못 이겨 눈을 살짝 감으려 했는데(물론 서서 말이죠!) 눈 앞 광고판에 영상이 흘러나오더라고요. 그런데 광고가 아닌 EBS 지식채널e여서 유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보다 보니 참 좋은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첫 축구 국가대표팀 이야기였거든요.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눠 보려 합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전쟁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세계 최빈국 대한민국에서 60시간을 넘게 날아온 낯선 동양인들이 있다. 평균 연령 36세의 대한민국 대표팀은 유니폼에 태극기와 등번호조차 없어서 경기 전에 급히 달아야만 하는 절실한 상황이었다. 
 
세계 최빈국 대한민국에서 날아온 낯선 동양인들
 세계 최빈국 대한민국에서 날아온 낯선 동양인들
ⓒ EBS 지식채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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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한 지 9년, 전쟁이 끝난지는 8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월드컵 진출 티켓을 놓고 맞붙게 된 우리나라와 일본. 하지만 일본인을 국내에 다시 들일 수 없다며 예선전을 반대했던 대통령. 선수들은 죽을 각오를 하고 각서까지 남기게 된다. 이렇게 어렵게 성사된 최초의 한일전이 바로 1954년 봄에 펼쳐졌다.
 
일본에 지면 선수단 모두가 대한해협에 몸을 던지겠습니다.
- 이유형 당시국가대표팀 감독
 
1954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1954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 EBS 지식채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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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그라운드의 이점을 모두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세 번의 경기가 이뤄진 그때 스트라이커 최정민은 세 골을 기록하게 된다. 합계 스코어 7대 3으로 일본을 격파하며 월드컵 참가 진출권을 따낸 대표팀은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그들을 환대하는 카퍼레이드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이어졌다. 거리 곳곳에는 그동안 울려 퍼지지 못한 함성이 메아리쳤다. 

"대한민국 만세!"

월드컵 첫 진출권을 따낸 대한민국은 일본 공항에 도착하지만 비행기 예약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대한축구협회의 실수로 떠나지 못하고 발이 묶이게 된다. 주변에 한 장씩 표를 양도받아 우선 출발하게 된 12명의 국가대표 선수들. 태국 방콕과 인도, 파키스탄과 이탈리아 로마를 지나 장장 64시간의 비행 끝에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하게 된다. 

장시간 비행을 하는 사이 이미 대회는 시작됐고, 오랜 비행과 시차로 녹초가 된 선수들은 기력을 회복할 기운도 없었다. 10시간 이내에 첫 경기를 뛰어야 하는 최악의 상황. 거기다 첫 경기 상대는 당대 최고의 골잡이 푸스카스가 속한 헝가리팀이었다. 
 
조롱과 동정의 시선을 동시에 받으며 시작된 경기
 조롱과 동정의 시선을 동시에 받으며 시작된 경기
ⓒ EBS 지식채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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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의 조롱을 받으며 뛰어든 경기에서 경기 시작 몇 분만에 선수들의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고, 후반전에는 교체 선수조차 없는 상황이라 7명이서 선전하게 된다. 그들이 할 수 있었던 방법은 오직 하나, 버티기. 버티고 또 버텼다.

홍덕영 골키퍼는 "슈팅 수 30개 이후에는 아예 세보지도 못했고, 특히 푸스카스의 슛은 정말 강해서 위잉 소리가 날 정도였으며, 맞으면 갈비뼈가 부러질 것 같았다"라고 회고했다. 경기 전 해외 언론이 예측한 건 20:0 이상의 헝가리 대승이었다. 대진표를 보니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한 골만 넣어 국민들을 기쁘게 하자는 김용식 감독의 말이 무색하게 대표팀은 경기를 제대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1차전 헝가리와의 경기, 2차전 터키와의 경기에서 전쟁 직후 처음 참여한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대표 선수들의 마지막 대회는 월드컵 사상 최다 득점차로 패배한 기록을 남겼으나 경기를 본 그 누구도 대표팀을 조롱하거나 비웃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지 1년도 안 된 나라입니다. 그들은 엄청난 투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모든 분들께서 이들에게 응원을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당시 경기 중계 해설진

그들이 세운 기록은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 16개국 본선 진출국이자 월드컵 사상 최다 득점 차 패배라는 기록을 남기며 끝났다. 하지만 그들이 뿜어낸 열정에 감동한 다른 국가 축구 대표선수들은 한국 대표팀 선수들의 숙소에 점퍼, 청바지, 소시지, 통조림, 현금, 손목시계 등 자신의 물건들을 쌓아놓으며 그들의 투지에 경외감을 표했다. 
 
우리들의 마지막 월드컵이 울려퍼지길
 우리들의 마지막 월드컵이 울려퍼지길
ⓒ EBS 지식채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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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대회 홍보 포스터 중 태극기가 완전히 가려지기도 할 만큼 출전에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최빈국 대한민국. 당시 헝가리 기자는 9대 0이라는 점수 차이에도 경기를 포기하지 않은 투혼 넘치는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을 기억해냈다. 1948년 축구 국가대표팀이 창설된 이후, 1990 월드컵 아시아 예선 우승 진출, 아시아 게임 참가 국가 중 최다 우승, FIFA 월드컵 아시아 통산 랭킹 1위, 아시아 최초 4강 진출 등의 기록을 세웠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역대 최고 성적 4위를 기록했고, FIFA는 한국을 2002 월드컵 자이언트 킬러(2002 World Cup Giant Killers)라 칭하고 있다. 2022년 12월 한국은 세계 최강 브라질을 16강에서 마주했다. 전반에만 4골을 내어주는 경기였지만, 백승호 선수의 만회골로 국민의 성원에 이바지한 건 바로 68년 전 우리들의 마지막 월드컵에서 못다 한 한골이 아닐까?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온 힘을 다한 태극전사들은 어떤 결과를 내었던 칭찬받아 마땅하다. 2022년 국가대표팀에도, 1954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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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재다능한 외유내강인 여행작가. 낯선 도시를 탐닉하는 것이 취미이자 일인 사람.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30여 개국을 여행 다니며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는 대학 교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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