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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마무리되던 시점, 인사팀에서 남아있는 연차가 있다며 연락이 왔다. 빠른 소진을 부탁한다는 말에 마침 미뤄뒀던 동사무소 업무도 처리할 겸 은행 업무도 볼 겸 연차를 사용하기로 했다. 느긋하게 일어나서인지 아니면 날도 따스하고 햇볕도 좋아서인지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몸도 개운했다.

따뜻한 날씨에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다가도 빨래를 돌리고 청소를 한 후  간단하게 커피를 내려서 토스트와 먹고는 은행과 동사무소 업무를 보기 위해 밖으로 향했다. 주중 낮임에도 동사무소와 은행에 사람이 많다는 걸 새삼 느끼면서 조금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은행 소파에 앉아 고민을 시작했다.

시간이 늦어져 브레이크타임이 있는 음식점은 어렵고, 그렇다고 맛없는 곳에서 배를 채우고 싶지는 않았다.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을 고르다가 그냥 낮술을 한잔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낮술 한 잔
 낮술 한 잔
ⓒ 김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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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면 그늘 아래의 테이블에 앉아 얼음이 듬뿍 들어간 진피즈 칵테일을 한잔하거나 아니면 아이스 버킷에 담긴 화이트 와인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탄산이 올라오는 스파클링 와인도 여름의 무더위를 잊게 만드는 아주 좋은 술이다.

술도 술이지만 날씨만 허락한다면 테라스 자리를 찾게 되는데 한국에는 테라스가 있는 술집 찾기가 어렵다. 그나마 좋은 날씨를 만끽할 수 있는 2층이나 3층의 창가가 있는 공간을 찾게 된다. 이러한 기준에 부합하는 곳은 여름철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는데 지금은 가만히 앉아 날씨를 만끽하기에는 서늘했다. 

날씨가 추워지면 찾는 술이 조금 달라진다. 한파에는 마치 러시아인이 시베리아의 추위를 버티기 위해 보드카를 마셔서 체온을 높이듯 나 또한 높은 도수의 위스키를 찾게 된다. 스코틀랜드의 싱글몰트 위스키 중 유독 겨울에 많이 생각나는 아일라 지역의 스모키한 위스키 한 잔을 음미하다 보면 밖의 추위를 싹 잊고 뱃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온기를 만끽할 수 있다. 다만 낮부터 위스키를 마시는 건 아무리 술을 좋아하는 나라도 부담스럽다.

여름도 겨울도 아닌 날씨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낮에도 부담스럽지 않게 마실 수 있는 술, 거기에 더해서 적당히 배를 채울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를 고민하던 찰나 뇌리에 '펍'이 떠올랐다. 

펍에는 다양한 종류의 맥주가 있어서 여름에는 시원하게 라거나 세종을 마시고, 겨울에는 도수도 높고 묵직한 느낌의 스타우트나 포터 스타일의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적당히 먹을 수 있는 안주도 늘 준비되어 있어 낮술을 하기 더할 나위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무 펍에나 갈 수 없다. 음식이 맛없는 것만큼이나 술이 맛없는 것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직접 운영하는 양조장에서 만드는 특색 있는 맥주와 강한 향신료가 인상적인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단골 펍으로 향했다.
 
양고기 커리와 난
▲ 양고기 커리와 난 양고기 커리와 난
ⓒ 김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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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남의 양조장을 빌려서 양조하는 집시 브루어리였지만 최근에 자체 양조장을 설립하며 점점 다양한 맥주를 상시 선보이고 있다. 망고의 향과 맛이 뿜어져 나오는 사워 맥주를 한 잔 마신 뒤 내추럴 와인과 맥주의 경계에 있는 맥주 한 모금과 사워 크림 위에 소복히 쌓여서 나오는 양고기 커리에 난을 함께 맛보는 호사를 즐기며 주중의 여유를 만끽했다.

주말 낮에 음식과 함께 곁들이는 한 잔의 술도 매력적이지만, 남들이 다 일하고 있을 때 마시는 주중의 낮술에 비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또 남은 한 달을 보낼 에너지를 얻었다.

태그:#우리들의점심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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