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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편집자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달리기라는 행위를 축으로 한 일종의 회고록'으로 하루키 최초의, 최후의 회고록이 될지도 모르는 가치를 지닌 책이다. 30년간 이어진 작가의 작품 활동과 문학적 성취의 바탕이 되는 동력으로써 체력과 집중력, 지구력을 길러온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작가는 문학적 성취를 '험준한 산의 암벽을 기어오르고, 길고 격렬한 격투 끝에 정상에 오르는 작업'이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거나 지는 싸움으로 이야기한다. 그 험난한 싸움을 조금이라도 오래 할 수 있기 위해서 체력은 필수이며, 집중력과 지구력을 기르기 위한 노력으로 작가는 달린다고 말한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지은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지은이)
ⓒ 문학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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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처음의 기대와는 다르게 글쓰기와는 크게 연결 지을 것도 도움을 받을 것도 없다고 느꼈다. 달리기가 문학적 성취를 이루는 든든한 발판이 되었다는 작가의 고백이 있었지만, 또한 작가의 말대로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글쓰기의 범용성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달리기는 내 인생 사전에 없는 단어였다.

나의 달리기 기록은 10년 전쯤 시속 7km의 속도로 15분을 뛴 것이 전부다. 처음에는 2~3분을 넘기기 힘들 정도로 호흡이 가빴다. 숨을 쉴 수 없어 뛰다 멈추다를 반복하기를 두어 달 했던 것 같다. 한 달쯤 그렇게 뛴 이후 어느 날 5분을 뛰었는데 호흡이 편안했다. 이후 7분에서 10분, 15분까지 가능하게 됐고 그것으로 만족했다. 자랑할 만한 기록은 절대 아니지만, 마음먹으면 나도 달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은 잠깐 얻었다.

마지막 달리기는 코로나 직전 해외여행으로 공항을 찾았을 때다. 비행기 탑승 시간을 놓칠까 걱정돼서 출국 심사대를 나오자마자부터 탑승구까지 전속력으로 질주해서 마침내 비행기에 올랐고, 자리에 앉고는 목이 갈라지고 타는 느낌으로 20분 이상을 밭은기침을 해야 했다. 그날 이후 달리기는 나의 목록에서 지웠다. 대신 어디를 가든 시간을 넉넉하게 조절하는 지혜는 얻었다.
 
나는 글자로 써보지 않으면 어떤 사물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하기 어려운 사람이기 때문에, 나 자신이 달리는 의미를 찾기 위해 손을 움직여서 이와 같은 문장을 직접 써보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글을 쓰고 합평회라는 것을 했을 때, 어설픈 짧은 글이었지만 활자화된 글은 생각을 가지런히 하는 것 같았다. '좋다, 아프다, 시원하다'로 표현되는 것들의 사이사이에 미묘하고 다양하고 복잡한 생각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정리가 됐다. 일의 시작과 끝 그리고 찰나의 감정과 소용돌이까지, 미숙한 솜씨에도 글쓰기는 나를 사로잡았다. 

그때부터 쓰기 시작했다. 넘치는 자신감으로 분수에 닿지 않는 기대도 품었고 더 늦기 전에 (나이를 생각한 조급함으로) 글쓰기의 완결편을 꿈꾸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너무 성급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승부를 보려고 일전을 불사하지도 않았으면서 마음은 지쳐갔다. 작가가 꾸준하게 소설을 쓸 수 있었던 동력인 달리기, 나의 글쓰기엔 그런 것은 없었다.
 
계속하는 것-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것 뿐일까. 작가가 말하는 몸의 리듬이 설정되는 것. 그게 쉽지 않았다. '어떻게든'의 단계가 막연하고 아득했다. 의욕과 좌절의 중간에서 그네를 타듯이 나아가고 다시 주저앉고를 반복하며 지금에 이르렀고 가뭄의 물줄기만큼 나의 글쓰기의 힘은 나약하다. 

작가처럼 모든 것을 던지고 '쓰기는 육체노동이라는 확신'을 갖고 도전한다면, 그 육체를 건사하기 위한, 글쓰기를 이어가기 위한 동력으로써의 '마라톤'과 같은 무언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 같기는 하다.

체력과 집중력, 지구력을 위한 것이 아니어도 글을 쓰는 이들이 무언가를 만들거나 도전하거나 끊임없이 시도하는 그 과정은 어쩌면 글쓰기를 대하는 기본 자세가 아니었을까 싶다. 비록 그 이유가 아주 적을지라도.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작가는 (소설가로서)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로 재능보다 내가 가진 역량을 잘 컨트롤하는 것이 중요하며 재능의 부족을 보완할 노력을 강조한다. 눈부신 성취나 '누군가로부터 청탁'이 없더라도 '말없고 근면한 대장장이처럼' 그저 묵묵히 부지런히 써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즐기며 뛰는 달리기에서도 '러너스 블루(주자의 우울)'가 따르는 것처럼, 좋아서 하는 글쓰기도 마음의 괴롭힘은 무시로 찾아온다. 열정이 잠시 주춤할 때마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폐배감,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조롱의 느낌까지 출렁거린다.

작가의 책을 읽다 보니 나라는 사람이 대략 정리되는 것 같다. 글 쓰는 사람이라는 타이틀 앞에서는 대중없고 어수선한 사람이라는 사실. 나의 글쓰기는 육체노동의 결괏값으로는 측정 불가라는 사실.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쓸 용기를 낸다. 
 
"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와중에 작가의 묘비명은 나의 두려움을 덜어주는 듯하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는 자부심 같은 것 하나 지니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다행히도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 하나는 아직 여전하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문학사상사(2009)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태그:#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나가 하고 싶은 이야기, #글쓰기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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