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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2 터미널 전망대에서 계류장에서 대기중인 비행기를 그렸다. 이 전망대에서는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뜨는 것도 보인다. ⓒ 오창환
 
지난 14일 여러 어반스케치 챕터가 공동 모임을 했다. 세 번째 주가 설날 연휴로 정기 모임을 못하니까 이럴 때 같이 모여 스케치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인천, 서울, 파주, 춘천, 천안, 안동 챕터가 인천국제공항에서 모이기로 했다.

비도 오고 안개가 끼어서 공항으로 가는 버스 창밖이 뿌옇다. 여행 말고 그림만 그리러 공항에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 힌트를 얻기 위해서 알랭 드 보통이 쓴 책을 읽었다. 그는 저명한 소설가이자 철학자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그의 사색적인 에세이를 좋아한다.

히드로 공항은 런던의 관문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공항중 하나다. 알랭 드 보통은 히드로 공항 측의 요청을 받고 일주일간 공항 대합실 한가운데 책상을 놓고 공항을 관찰하고 탐구한다. 그렇게 쓰인 책이 <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다. 공항은 보통 어떤 곳을 가기 위해 지나치는 곳인데, 이번에는 공항이 목적지가 된 것이다.

그의 책은 무게감 있고 어려운 에세이가 많은데 이 책은 얇고 내용도 편안하다. 한국어판도 그리 두껍지는 않지만 이번에 도서관에서 영문판을 빌려보니, 판형도 작고 얇아서 여행가방에 무심코 넣어두었다가 비행기나 공항대합실에서 읽으면 좋게 만들어져 있다. 알랭 드 보통의 글을 보면 영국식 철학, 영국식 글쓰기가 어떤지를 보여줘서 흥미롭다. 그는 언제나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해서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는 귀납법적 방법을 견지한다.
 
공항에서 대기 중인 승객과 그림을 그리러 온 어반스케쳐들. ⓒ 리피디이승익
 
인천 국제 공항이 넓긴 넓다. 많은 스케쳐들이 왔지만 전부 흩어져서 잘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공항 보안 요원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보안) 훈련의 기본적인 목표는 모든 인간을 항공기 폭파범 후보자로 보는 것이었다. 새로 알게 되는 사람과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으려고 하는 우리의 관례적인 충동을 완전히 뒤집는 셈이다. (중략) 적(敵)은 사과주스 통을 들고 어머니의 손을 잡은 여섯 살짜리 소녀일 수도 있고, 장례식에 참석하려고 취리히로 날아가는 노쇠한 할머니일 수도 있다. (93쪽)

보안 요원의 직업윤리는 모든 사람을 의심하는 것이니까, 보안팀의 우려도 이해는 간다. 어반스케쳐스 운영진과 공항 보안팀의 협조로 행사는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하긴 공항에서 어반스케치 행사는 전례가 없었다고 하니 서로 당황할 만도 한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도 그의 공항 사랑을 노골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아마도 히드로 공항 관계자들이 그 책을 읽고 그에게 아예 공항에 상주하면서 공항에 관한 책을 써달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가 일주일간의 공항 상주작가를 수용한 이유는 이렇다.
 
공항 터미널은 현대 문화의 상상력이 넘쳐나는 중심이다. 만약 화성인을 데리고 우리 문명을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들을 깔끔하게 포착한 단 하나의 장소에 데려가야 한다면, 우리가 당연히 가야 할 곳은 공항의 출발과 도착 라운지밖에 없을 것이다. (16쪽)

만약 지금이 20세기 초였다면 보통은 그 화성인을 기차역에 데려갔을 것이고, 배로 해외여행이나 이주를 해야 했을 때는 그들을 항구로 데려갔을 것이다. 우주여행이 되기 전까지 그 역할은 공항이 할 것이다. 공항은 세상의 축소판이니까.

나는 원래 공항 대합실에서 대기 중인 각양각색의 승객을 그리려고 했다. 그런데 공항의 설계와 의자의 배치가 대기중인 승객을 그리기에 적합하지 않게 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의자와 의자 사이가 멀거나 마주 보고 있다.

승객을 그리려면 갖고 다니는 간이 의자에 앉으면 되겠지만 너무 눈에 띄어 곧 제지당할 것 같다. 결국 승객들을 실루엣으로 간단하게 그렸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여러 곳에서 온 스케쳐들과 수다를 떠느라 기사에 쓸 만한 사진을 찍지 못했다.

그래서 15일 다시 공항에 갔다. 그러데 이번에도 마땅히 그릴 곳을 찾지 못해서 공항순환버스를 타고 2 터미널로 갔다. 2 터미널에는 처음 가보는데 버스로 10분 정도 걸리는 먼 거리라서 놀랐다. 2 터미널로 가는 길에 창밖에 보이는 황량한 풍경이 너무 좋다. 특히 2 터미널에는 전시장과 전망대가 따로 있었다. 

전시장은 공항 배치 모형도와 지도가 있어서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잘 알 수 있게 되어 있고 전망대에서는 계류장에 대기 중인 비행기가 잘 보인다. 계류장 풍경을 그리면서 생각했다. 올해는 저 비행기를 타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알랭드 보통은 종종 세상의 축소판인 공항에 여행간다고 한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인천 국제 공항이 좀 멀긴 하다.
 
연합 모임이 끝나고 기념 촬영을 했다. 이번 모임은 인천, 서울, 파주, 춘천, 천안, 안동 챕터가 모이는 대규모 행사였다. ⓒ 어반스케쳐스서울
태그:#인천공항, #알랭드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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