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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조세희 작가가 1970년대 인천을 배경으로 쓴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
 고 조세희 작가가 1970년대 인천을 배경으로 쓴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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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의 큰 별이 졌다. 아기 예수가 태어난 지난해 12월 25일인 성탄절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조세희 작가가 우리 곁을 떠났다.

등단 이후 10년간 침묵하던 조세희 작가는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 사는 재개발 지역 동네에서 철거반과 싸우고 돌아오다 작은 노트 한 권을 샀다. 그는 고통받는 소외계층 일가를 주인공으로 한 '난장이 연작'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73년 단편소설 <뫼비우스의 띠>를 시작으로 서로 연결된 12편의 단편소설이 문학과지성, 문학사상, 창작과비평 등에 발표됐고, 1978년 12월,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묶여 출간했다.

<난쏘공>으로 불리는 이 소설은 1970년대 산업화 시대의 그늘에서 고통받는 도시 빈민의 삶을 우화 형식으로 담아낸 한국 문학사의 고전이다. 출간 당시에는 사회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판매금지 되는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죽지 않고 살아' 독자들에게 전해졌다. 지금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고 누적 발행 부수가 148만 부에 이르는 스테디셀러 작품으로, 독자들에 의해 완성되고 있다.

"인천 동구는 노동자의 도시로 노동 문학의 배경이 됩니다. 조세희 선생님의 소설 '난쏘공'의 공간적 배경인 '은강'으로 묘사된 70년대 동구 해안 공장들을 살펴보고, '난장이 가족'이 다녔던 길을 따라 걸어보려 합니다."
 

오랫동안 인천의 구석구석을 몸으로 두루 살펴온 인천도시자원연구소 장회숙 소장은 '조세희 작가 추모 문학 답사'를 기획했다. 지난 1월 7일 토요일 오후, 인천역 광장에서 난쏘공의 무대 속으로 떠나는 여정이 시작됐다.

집이 헐리고 찾아온 동네
 
<난쏘공>의 배경이 된 인천 동구 북성·만석동 일대
 <난쏘공>의 배경이 된 인천 동구 북성·만석동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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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 46번지. 무허가 집에 살던 난장이 가족은 '주택 개량 재개발 사업'으로 살던 집이 헐리자 살아남기 위해 '은강'으로 이사한다.
 
은강은 서울에서 멀지 않은 서해 반도부에 위치해 있어 삼면이 바다다. 밀물 때 그곳 사람들이 제일 먼저 발견하게 되는 것은 해면의 파랑이다. 그 해면이 하루에 두 번씩 높아졌다 낮아졌다 해 은강 전체가 지구 밖 천체의 인력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인천역 뒤쪽으로 철거 중인 만석고가도로를 지나 뱀골과 새우젓골목을 돌아봤다. 북성포구 좁은 골목을 따라 걸으며 바다를 메워 뭍으로 만들기 전 옛 해안선의 모습을 상상했다. 인천 구도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매립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장회숙 소장은 남겨진 흔적과 지형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들려줬고, 답사단은 시간을 거슬러 나름대로 땅의 역사 퍼즐을 맞춰봤다.

북성포구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와 난장이의 아내와 아이들이 가까운 공장을 오가며 살던 만석동 43번지 일대로 들어섰다.
 
수없이 솟은 굴뚝에서 시커먼 연기가 오르고 공장 안에서는 기계들이 돌아간다. 노동자들이 그곳에서 일한다. 죽은 난장이의 아들딸도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영호가 먼저 은강전기 제일공장에 들어갔다. 영희는 은강방직 공장에 들어갔다. 두 동생이 일자리를 잡은 것을 확인한 나는 은강자동차에 들어갔다. 삼남매가 똑같이 은강 그룹 계열 회사의 공장에 훈련공으로 들어갔다.
 
"은강전기는 시바우라전기를 전신으로 하는 일진전기, 은강방직은 동일방직, 은강자동차는 인천공작창을 모델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소설 속의 공장은 이름만 바뀌었을 뿐 1970년대 인천 동구에 있던 공장을 그대로 묘사한 것처럼 사실적이고 구체적이다. 어머니가 땔감으로 쓰기 위해 인도네시아산 원목의 껍질을 벗기던 곳도 대성목재 저목장이다.
 
영희는 생산부 직포과에서 일했다. 영희는 일분에 백이십 걸음을 뛰듯 걸었다. 영희가 뛰듯 걷는 동안 직기들은 무서운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작업장의 실내 온도는 섭씨 삼십구 도였다. 무더운 여름의 은강 최고 기온은 섭씨 삼십오 도이다. 직기의 소음도 무섭기 짝이 없다.
 
노동 운동의 산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동일방직은 부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담벼락을 따라 걸었다. 지금은 만석비치타운 아파트 단지로 바뀐 옛 대성목재 공장과 저목장을 둘러보고 건너편 괭이부리마을 언덕을 넘어 화수동으로 넘어갔다.

답사의 마지막 장소는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고 토론하며 인간답게 살 권리를 배웠던 노동자교회인 '인천도시산업선교회'다.
 
나는 산업 사회의 구조와 인간 사회 조직, 노동 운동의 역사, 노사간의 당면 문제, 노동 관계법 등을 배웠다. 정치·경제·역사·신학·기술에 대해서도 배웠다.
 
지금은 '미문의 일꾼교회'로 이름이 바뀐 인천도시산업선교회로 들어가 담임목사님이 준비한 따뜻한 차와 빵을 먹으며, 길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마저 나눴다.

"조세희 작가는 우리 사회의 약자들과 현장에서 늘 함께한 행동하는 지성이었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난쏘공이 계속 읽히는 것은 죽을 때까지 행동하고자 했던 작가정신 때문이 아닐까요?"

장회숙 대표는 조세희 작가 49재인 오는 2월 11일에 더 많은 사람이 함께 걷는 추모 문학 답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인천은 개항 이래로 노동자의 도시입니다. 특히 동구에는 집과 공장을 오가던 노동자들이 걸어 다니던 길과 퇴근길에 들러 장을 보던 시장이 잘 남아 있습니다. 이 길들을 함께 걷고 이야기 나누는 답사를 통해서 다양한 지역문화 콘텐츠로 확장되기를 바랍니다."

장 대표는 빛바랜 흔적들을 찾아내고 사라질지 모르는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꾸준히 사람들과 함께 걸을 길을 기획하고 있다. 걸어야만 알게 되는 것이 있고, 알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조세희 작가는 '난쏘공을 쓸 때 우리 후세들은 좋은 곳에서 태어나서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민의 한 사람으로' 글을 썼다. 죽어라 일을 해도 생존비밖에 벌 수 없었던 노동자들의 삶은 50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나아졌을까?

조세희 작가는 "한 아이가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배고파 운다면, 그것을 놓아두고 잠자는 우리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고 그것이 곧 폭력"이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우리가 깜깜한 밀림을 벗어나려면 우리 머릿속에 나침반을 넣고 지도를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었다. 
 
아버지가 꿈꾼 세상은 모두에게 할 일을 주고, 일한 대가로 먹고 입고, 누구나 다 자식을 공부시키며 이웃을 사랑하는 세계였다.
 
[난쏘공 문학 답사 코스 - 2시간 소요]

①인천역(중구 북성동 1가 3-61) ②뱀골(중구 북성동 1가 4-29) ③새우젓골목(중구 북성동 1가 4-212) ④북성포구(중구 북성동 1가 3) ⑤만석아파트(동구 만석동 43-79) ⑥북부해안선(동구 만석동 43- 458) ⑦동일방직(동구 만석동 37-2) ⑧대성목재 저목장(동구 만석동 122) ⑨괭이부리마을(동구 만석동 9-40) ⑩인천도시산업선교회(동구 화수동 183-1)

 
북성포구 주변 공장지대를 답사자들이 걷고 있다.
 북성포구 주변 공장지대를 답사자들이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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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만석동 43번지는 난장이의 아내와 아이들이 가까운 공장을 오가며 살던 소설속 공간이다. 이곳에는 일진전기, 동일방진, 인천공작창이 있었다.
 동구 만석동 43번지는 난장이의 아내와 아이들이 가까운 공장을 오가며 살던 소설속 공간이다. 이곳에는 일진전기, 동일방진, 인천공작창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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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조세희 작가 추모 문학 답사는 오랫동안 인천의 구석구석을 몸으로 두루 살펴온 인천도시자원연구소 장회숙 소장이 기획했다.
 이번 조세희 작가 추모 문학 답사는 오랫동안 인천의 구석구석을 몸으로 두루 살펴온 인천도시자원연구소 장회숙 소장이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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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노동운동의 산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동일방직, 답사자들이 동일방직 담벼락을 따라 걷고 있댜.
 인천 노동운동의 산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동일방직, 답사자들이 동일방직 담벼락을 따라 걷고 있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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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박수희 I-View 객원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에도 실립니다.


태그:#조세희, #난쏘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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