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설 대기획 송골매 콘서트 - 40년 만의 비행'

KBS2 '설 대기획 송골매 콘서트 - 40년 만의 비행' ⓒ KBS

 
"젊은 친구들이 우리 부모님 세대는 트로트만 좋아한다고 오해하는데, 사실 저희 세대가 가장 록 음악을 많이 들었던 세대거든요."

KBS2 '설 대기획 송골매 콘서트 - 40년 만의 비행' 기자간담회에서 배철수가 한 말이다. KBS 대기획 콘서트는 2020년부터 시작된 프로젝트다. 2020년 추석, 나훈아 콘서트를 통해 '테스형 열풍'을 일으켰고, 2021년에는 심수봉과 임영웅의 콘서트를 송출했다. 앞선 세 아티스트의 공연은 트로트와 발라드 등에 치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는 트로트 세대가 아닌데"라며 소외감을 느낀 장년층도 있지 않았을까? 이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배철수는 간담회에서 그는 "이번 방송이 여러 세대가 함께 모이는 명절을 맞이해 부모 세대가 자신들의 다양한 음악 취향을 알릴 수 있는 기회"라는 말을 덧붙였다.

송골매는 70년대 대학교 그룹사운드 문화에서 출발한 밴드다. 1979년, 항공대학교의 그룹 사운드 '활주로'의 멤버로 활약하던 배철수를 중심으로 송골매가 결성되었다. 이후 '블랙 테트라'의 보컬 구창모와 김정선이 합류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송골매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송골매는 뉴웨이브와 디스코, 이키델릭, 하드록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고,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두 다 사랑하리', '빗물', '모여라' 등 수많은 명곡을 배출했다.

기억 속의 송골매, 다시 날아 오르다

송골매의 목소리였던 구창모는 1984년 4집 이후 송골매를 떠났다. 이후 배철수를 중심으로 밴드는 지속되었지만 1990년 송골매는 해체되었다. 이후 수십년 동안 송골매를 만날 수 없었다. 구창모는 솔로 가수의 커리어를 지속했고, 배철수는 음악을 멈추고 국내 최장수 라디오 DJ로 활약했다. 그리고 2022년, 송골매는 깜짝 재결합을 선언하고 전국 투어 '열망'을 진행했다. 아이돌 그룹이나 해외 팝스타 등이 주로 공연하는 KSPO DOME(구 체조경기장)을 꽉 채우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지난 21일, 송골매가 설 특집 방송 '설 대기획 송골매 콘서트 - 40년 만의 비행'으로 시청자를 찾아왔다. 지난 12월 10일 경기도 고양에서 녹화한 공연 실황을 담은 것이다. 약 5천 명의 팬이 일산 킨텍스홀을 가득 채운 가운데, 송골매의 날개를 형상화한 구조물이 날아 올랐다. 그 위에는 배철수와 구창모가 나란히 서 있었다. 이 들이 무대에 발을 내디디면서 첫곡 '어쩌다 마주친 그대'가 연주되었고, 두 명의 '송골매'는 하이파이브를 하며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끝없는 명곡 릴레이의 시작이었다.

'처음 본 순간', '한 줄기 빛',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세상만사' 등 송골매의 명곡은 물론, 구창모의 명곡 '희나리', 배철수의 솔로곡 '이 빠진 동그라미', 1978 TBC 해변 가요제 수상곡인 블랙테트라의 '구름과 나' 등 두 사람의 커리어 전체를 총망라한 선곡이 이어졌다.
 
 KBS2 '설 대기획 송골매 콘서트 - 40년 만의 비행'

KBS2 '설 대기획 송골매 콘서트 - 40년 만의 비행' ⓒ KBS

 
배철수(1953년생)와 구창모(1954년생)는 한국 기준으로 올해 모두 칠순을 넘겼다. 그러나 공연을 보는 내내 나이를 체감하기 어려웠다. 그들은 송골매가 한창 활약하던 40년 전으로 관객을 인도했다. 배철수는 검은 블레이저, 또는 가죽 재킷을 입고 기타를 연주했다. 라디오 디제이의 모습은 없었고, 중후한 록스타가 서 있었다. 배철수 특유의 툭툭 내뱉는 독특한 창법도 빛을 발했다.

구창모는 건재함을 넘어, 현재진행형의 명 보컬리스트였다. 그의 목소리는 나이를 의심하게 할 만큼 맑고 날카로웠다. 팝과 록, 가요의 역사에서 과거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보컬의 예시는 많이 있다. 그러나 구창모는 수십년 전의 히트곡을 부르면서도 위화감을 만들지 않았다. 솔로 1집 수록곡 '문을 열어'를 부르는 그의 미성에는 여전히 청년이 있었다.

한편 배철수는 송골매 멤버들과 함께 한 연주자들을 아울러 '송골매 4기'로 정의했다. 기타리스트 함춘호, 전달현, 드러머 장혁 등 관록을 자랑하는 베테랑 연주자들이 송골매를 위해 모였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서 베이시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이태윤, 키보디스트 최태완 역시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들의 탄탄한 연주가 소리의 밀도를 높였다.

송골매를 사랑하는 후배들도 무대에 올랐다. 보이 그룹 엑소의 리더 수호가 무대에 올라 '모두 다 사랑하리'를 커버했고,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송골매의 '아득히 먼 곳'을 불렀던 배우 이선균이 깜짝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게스트 중 가장 뜨거운 반응을 끌어낸 게스트는 가수 장기하였다. 장기하는 오래전부터 송골매를 자신의 음악적인 뿌리라 고백한 뮤지션 중 하나다. 이날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송골매의 노래 '산꼭대기 올라가'를 커버했고, 직접 송골매와 함께 '탈춤'을 부르기도 했다. 이렇게 과거와 오늘이 조우하고 있었다.

두 록 레전드가 선사한 40년의 시간 여행

공연 초반, 배철수는 "록밴드  콘서트 사상 평균 연령이 가장 높은 공연이 아닐까 한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말대로 이번 공연의 관객층은 대부분 중장년층으로 채워져 있었다. 송골매의 이번 공연은 1980년대에 20대를 보냈던 이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설 연휴, 어머니와 함께 이 방송을 보았다. 어머니는 세 번 감탄했다. 처음에는 54년생 구창모의 건재한 목소리에, 두 번째는 배철수의 세련된 스타일에 감탄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모르는 노래가 없다는 사실'에 대한 감탄이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송골매와 함께 20대 시절의 추억을 어루만졌다. 킨텍스홀을 가득 채운 관객들도,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두 시간 동안의 추억 여행은 '모두 다 사랑하리'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이 곡의 도입부가 연주되자마자, 한 관객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삶의 한 시절을 함께 한 음악의 힘은 셌다.

"타오르는 태양도 날아가는 저 새도 다 모두 다 사랑하리
타오르는 태양도 날아가는 저 새도 다 모두 다 사랑하리"

- '모두 다 사랑하리' 중


아쉽게도 배철수는 여러 차례 이번 전국 투어 이후 다시 음악 활동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공언했다. 특집 방송 관련 기자 간담회에서도 "현재까지는 다시 음악을 할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이번 KBS 공연이 마지막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구창모는 '세상 일은 모른다'며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송골매의 특집 공연을 보면서, 마지막 무대에 대한 약속이 조금 더 늦춰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0년 만에 돌아온 송골매는 젊은 날의 야성미를 간직한 노장이었다. 서양에 브루스 스프링스틴이나 폴 매카트니 같은 록스타가 있다면, 우리에게 이런 록 전설이 있다.
송골매 배철수 구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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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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