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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세상에서 잠시 기분전환 할 수 있는 재미난 곤충기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보통 사람의 눈높이에 맞춘 흥미로운 이야기이므로 얘깃거리로 좋습니다. [기자말]
1988년 남극의 한 켠 킹조지 섬에 들어선 세종과학기지는 기후변화와 생태 탐사, 부존자원 연구를 위해 세워졌다. 이듬해 대한민국은 남극조약에 가입하여 세계 23번째로 협의당사국의 지위를 얻었다. 2014년에는 장보고 기지가 남극 대륙에 건립되어 극지 생물탐구와 함께 미래 에너지 자원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남극하면 떠오르는 생물은 펭귄인데 이들의 겨울나기는 냉한지옥을 방불케한다. BBC 다큐멘터리 <Planet Earth>에는 영하 50도의 혹한에서 새끼를 키우는 펭귄의 육아법이 오롯이 담겨져있다. 수컷은 넉달 동안 배를 곪으며 알을 품는데 이 기간 동안 암놈은 수 킬로미터 떨어진 바다로 나가 먹이활동을 한다. 암컷이 배불리 먹고 살을 찌운 뒤 다시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와 육아 교대를 한다.

이때까지 수컷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혹독한 겨울을 난다. 수천 마리의 수컷이 둥그렇게 밀착하여(huddling)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겨울을 버텨낸다. 원 바깥쪽에서 매서운 블리자드를 막던 녀석들이 한계에 다다르면 모임의 안쪽으로 들어와 자리바꿈을 한다. 무리의 내부는 바깥에 비해서 덜 춥기 때문이다. 때로 남극의 밤은 영하 70도를 넘기에 허들링은 생존을 위한 펭귄의 몸비빔이다.

따스한 몸비빔으로 겨울을 난다
 
하나의 벌통에 2만여 마리가 모여 겨울을 난다.
▲ 양봉꿀벌. 하나의 벌통에 2만여 마리가 모여 겨울을 난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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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도 이러한 생존전략으로 세대를 이어간다. 여왕벌은 하루에 약 2천개에 달하는 알을 낳으며 1년 동안 20만 개까지도 산란할 수 있다. 벌집에 모여서 가을까지 저장해 놓은 화분과 꿀을 먹으며 겨울을 난다. 기온이 내려가면 벌떼가 한 덩어리로 모여 날갯짓을 가열차게 한다. 벌통 안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몸비빔을 나누며 자리를 바꾸고 서로에게 꿀을 건네주며 온기를 북돋운다. 외부 온도는 영하 15도로 내려가더라도 이 모임의 내부는 20도 정도를 유지한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면 꿀벌은 대청소를 시작한다. 겨울을 넘지 못하고 죽은 개체를 벌집 밖으로 내다버린다. 남은 벌 무리가 건강하게 살기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말벌을 벌통 안으로 유인하여 동그랗게 감싼 뒤에 쪄 죽인다.
▲ 낭충봉아부패병으로 멸종 위기에 놓인 토종꿀벌. 말벌을 벌통 안으로 유인하여 동그랗게 감싼 뒤에 쪄 죽인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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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들링은 토종(재래)꿀벌이 말벌과 같은 천적을 퇴치할 때 사용하는 전술이기도 하다. 재래꿀벌은 정찰병 말벌을 벌통 안으로 유인한 뒤에, 수백 마리가 경단(봉구)처럼 감싼 뒤에 날개를 진동시켜 온도를 높인다. 결국 뜨거운 찜질방에 갇힌 말벌은 열사병으로 타 죽는다.

한편, 양봉(서양)꿀벌은 말벌을 당해낼 수 없기에 집단이 전멸에 이르기도 한다. 토종꿀벌은 오랜 진화과정을 거쳐 말벌에 대한 저항력이 생겼으나 서양꿀벌이 우리나라 정착한 것은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이다.

포옹없는 말벌은 겨울을 나지 못하고

성충 말벌은 나무 수액이나 꽃꿀을 마시지만 애벌레는 고기를 먹고 자란다. 꿀벌 뿐 아니라 다른 말벌집을 약탈하여 유충을 잡아다가 새끼에게 먹인다. 양봉농가의 미움을 받지만 생태계의 균형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나비류 애벌레와 구더기 같은 여러 해충의 조절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며 장수말벌은 소나무재선충을 옮기는 솔수염하늘소를 사냥한다.
 
생태계의 조절자로서 소나무재선충을 옮기는 솔수염하늘소의 천적.
▲ 장수말벌. 생태계의 조절자로서 소나무재선충을 옮기는 솔수염하늘소의 천적.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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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 무리는 겨울을 나지 못한다. 늦가을이면 일벌들은 잘 키우던 유충을 둥지 밖으로 내다 버리고 같이 일하던 자매도 물어 죽여서 내동댕이 치며 여왕벌도 쫓김을 당해 굶어죽게 만든다. 살아남는 것은 다음해의 신여왕이 될 후보 뿐이다. 새여왕은 썩은 나무 속에서 월동하고 이듬해 봄이 찾아오면 활동을 시작하여 한살이가 돌아간다.

야외에서 말벌집을 보면 손에 든 물건을 던지거나하여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 말벌에게 한 방 쏘이면 사나흘 정도는 통증이 지속되며 건장한 사람도 많이 찔리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 곤충 세상의 무서운 포식자이지만 사람을 당해낼 수는 없다. 말벌집을 털어서 노봉방(露蜂房) 술을 담그기 위해서인데 동의보감에 이르기를 해소와 천식에 효과가 있다고 적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글은 한국우취연합의 월간 우표에도 같이 등록됩니다.


태그:#꿀벌, #말벌, #봉구, #남극 세종기지, #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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