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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으로 한파가 불어닥치며 난방비 부담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25일 오후 서울 시내 한 30평대 아파트 우편함에 관리비 고지서가 꽂혀 있다.
▲ 꺼내보기 무서운 관리비 고지서 전국적으로 한파가 불어닥치며 난방비 부담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25일 오후 서울 시내 한 30평대 아파트 우편함에 관리비 고지서가 꽂혀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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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1월 주택 관리비 고지서(작년 12월 사용분)를 열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관리비 금액란에 48만 원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적잖게 당황스러워 이전 관리비 이력을 살펴보았다. 1년 전인 2022년 1월과 비교해보니 그때보다 난방을 더 많이 사용했다. 아마도 지난달에 몰아친 '북극 한파' 때문인 듯했다.

그런데 그걸 고려한다 해도 이번 난방비는 분명 유달랐다. 실제 며칠 후, 방송과 인터넷 포털에는 '난방비 폭탄', '난방비 공포의 확산'이라는 제목을 단 기사들이 쏟아졌다. 우리 국민 대부분이 나처럼 이번 난방비 고지서에 '화들짝' 놀란 것이다. 

한국가스공사는 작년 4월, 5월, 7월, 10월 이렇게 네 차례에 걸쳐 가스 요금을 인상했다. 가스공사는 공기업이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가 요금을 책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도시가스 요금단가의 경우, 주택용은 취사·개별난방·중앙난방 모두 단가(2023년 1월 12일 기준 21.4452)가 같고 업무 난방용의 경우 동절기(12~3월), 하절기(6~9월), 기타월의 단가가 각각 다르다. 물론 가스만 오른 게 아니라, 전기 요금도 인상되었다.

이렇게 줄줄이 오른 공공요금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을 대상은 사회적 취약 계층과 더불어 이제 막 코로나19 재난을 벗어난 자영업자다. 더욱이 자영업자들은 최근 원부자재 폭등과 고금리라는 새로운 위험에 봉착해 있다(관련기사 : "진짜 심각"... 자영업, 침체가 아니라 몰락의 서막 https://omn.kr/22am6).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언론은 '정부의 공공요금 인상은 이제 겨우 재기를 꿈꾸는 자영업자들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요지의 보도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난방비 폭탄'으로 불리는 가스비 인상 재난(?) 속에서 가스를 필수재로 사용하는 자영업자 상황은 어떠할까? 주변의 자영업자들에게 물어봤다. 

'가스비 폭탄' 실감하지 못한 자영업자, 왜?

"고지서를 보니 지난달보다는 몇 만 원 더 늘어 40여 만 원이 나왔네요. 매출이 좀 늘어서 더 나온 건지 아니면 요금 인상분이 반영돼서 그런 것인지는 좀..."

신림동에서 국숫집을 하는 A씨의 반응은 의외였다. 가스 사용료만 40여 만 원이라는 절대 적지 않은 돈을 내는 자영업자 반응치고는 비교적 담담했기 때문이다.

"가스 요금이요? 아직 자세히 안 봤는데… 고지서 좀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영등포에서 피자와 파스타 배달전문점을 운영하는 B씨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누구보다 가스 요금 인상에 예민할 것 같았던 자영업자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분명 '가스비 폭탄' 뉴스와는 온도 차이를 보였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B씨는 잠시 후 그동안의 가스비 납부 이력을 내게 보냈다. 아마도 이것을 바탕으로 이번에 고지된 가스 요금을 분석한 듯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태도는 처음과는 달라져 있었다.
 
가스비 고지 내역, 비슷한 사용량을 비교하면 올해 가스비 급등이 보인다.
 가스비 고지 내역, 비슷한 사용량을 비교하면 올해 가스비 급등이 보인다.
ⓒ 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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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펴보니 작년 인상을 다 합하면 거의 40% 가까이 올랐더라고요. 정부는 물가 잡는다더니 이런 도둑 인상으로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게 말이 되나요?"

실제 도시가스와 열요금은 최근 1년 새 각각 38.4%, 37.8% 올랐다고 한다. B씨가 '도둑 인상'이라는 과격한 표현까지 한 건 정부가 지난해 4번에 걸쳐 가스 요금을 나누어 인상한 것을 지적한 듯했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는 속담처럼, 나누어 인상함으로써 요금 인상에 대한 저항을 최소화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었다.

사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국숫집 사장 A씨가 보내 준 요금 고지서의 이전 사용량 추이 그래프를 보면 현재 자영업자들의 현실적인 가스비 체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스 사용량추이, 막대는 사용량, 꺽은선은 요금
 가스 사용량추이, 막대는 사용량, 꺽은선은 요금
ⓒ 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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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비 인상이 시작된 4월, 5월 이후 6월에 가스 사용요금 그래프가 가파르게 상승한 것이 보인다. 하지만 마침 가스 사용량도 같이 늘다 보니 요금 인상을 선뜻 체감하지 못한 것이다. 그 뒤 7월과 10월 두 차례 가스비가 더 인상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가스 사용량이 들쭉날쭉했다. 이러면 요금 인상을 정확하게 알아채기가 힘들다. 실제 이와 관련하여 은평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C씨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최근 가스비가 이전보다 좀 많이 나온 것 같기는 했어요. 그런데 그게 눈에 딱 들어오지는 않았죠. 가게에서 사용하는 가스는 매출에 연동되다 보니 요금이 더 나오면 매출이 좀 나왔나? 그게 아니라면 직원들이 가스를 좀 헤프게 관리했나? 뭐 이렇게 생각하게 돼요. 장부를 자세히 보고 이전 요금과 비교하고 나서야 요금 인상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죠."

상황을 정리하면 이런 것이다. 정부는 서민들의 저항을 최소화하려던 것이었는지, 지난해 4번에 나누어 가스 요금 인상을 시행했다(올해도 추가 인상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도 유독 최근에 '가스비 폭탄'이 이슈가 된 건, 가스 요금 인상이라는 불씨에 '북극 한파'가 기름을 끼얹는 효과를 냈기 때문이라고 본다. 난방을 위해 가스를 주로 쓰는 국민들이 이제야 요금 인상을 체감하게 된 것이다. 

반면 난방이 아닌 제품 판매를 위해 가스를 사용하는 자영업자들은 작년 한 해 '가스 요금 인상'에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익숙해진(어쩌면 '포기했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하다) 것이다. 그래서 체감의 정도가 다른 듯했다. 그렇다고 자영업자들이 이번 가스비 인상에 불만이 없는 건 결코 아니었다.

속만 끓이는 자영업자들

"부자는 감세하면서 서민들에게는 공공요금 인상을 당연히 받아들이라는 건가요? 가스공사 주식은 몇 배 올랐다던데요. 서민들 돈으로 소수 자본가에게 이익을 주는 것 같아 불만입니다." - A씨

"저희 가게는 저렴한 국수를 팝니다. 주메뉴인 잔치국수가 4천 원입니다. 서민들이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최후의 보루 같은 음식인 거죠. 그래서 음식값 올리기 힘들죠. 그런데 작년 밀가루 등 원부재룟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더니 올해 상가 보증금과 월 임대료까지 올랐어요, 인건비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데 가스 같은 공공요금까지 이렇게 올랐으니 매출이 늘어봐야 아무 소용 없는 거죠." - B씨

"가스는 사용량 조절이 거의 불가능한 필수재예요. 가스로 손님들이 고기를 굽는데 그걸 줄일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이번 가스요금과 같은 공공요금 인상으로 악화한 경영 수지를 개선하려면 고민하게 되죠. '직원을 한 명 더 내보내야 하나?' 이렇게요. 문제는 직원을 내보내면 사장인 저나 제 가족이 더 많이 일해야 한다는 거죠. 지금도 힘들어 죽겠는데요." - C씨


이번 우리 사회를 화들짝 놀라게 한 이번 '가스비 폭탄' 충격은 자영업자에게도 다를 바 없었다. 당연히 그들도 가스비 인상의 영향을 받은 국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들은 가게에서도 공공요금 인상의 충격을 받고 있었다.

씁쓸한 건, 이들이 공공요금 인상의 고통을 충분히 체감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자영업자들은 아직 코로나19 피해에서 미처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여기에 더해진 고금리, 고물가, 고임금이라는 '압도적 고통'이 공공요금 인상이라는, 상대적으로 '작은 고통'을 가렸다. 

오늘도 포털 사이트에는 '이·편·망 - 20대·편의점 가장 많이 망했다', '나홀로 자영업 역대 최고', '최근 1년간 폐업한 자영업자 34만 명' 등의 제목으로 위기에 몰린 자영업계를 표현한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태그:#난방비 폭탄, #가스요금 인상, #자영업, #위기의 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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