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현지시간), AT 마드리드는 스페인 컵 8강서 숙적 레알 마드리드를 만나 3-1로 패했다. 전반 19분 알바로 모라타가 선제골을 넣었으나 역부족이었다. 5년 만에 터진 마드리드 더비 원정 득점 역시 빛이 바랬다. 후반 34분 호드리구의 환상적인 돌파에 동점을 허용했고, 연장전에서는 스테판 사비치의 경고 누적 퇴장 이후 균형이 크게 무너졌다. 연장 후반 추가시간 비니시우스 득점 때에는 이미 선수들의 의지가 가라앉은 상태였다.

이번 경기는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의 약점이 다시 드러난 졸전이었다. 모라타의 선제골 이후로도 경기를 주도한 AT 마드리드는 후반 18분, 공격수 모라타를 빼고 수비형 미드필더 비첼을 투입했다. 팀을 한 걸음 수비적으로 물러나게 만든 교체였다. 그에 맞춰 레알 마드리드는 발베르데와 크로스를 빼고 호드리구와 아센시오를 투입하며 공격의 칼을 갈았다. AT 마드리드는 파상공세를 끝내 견뎌내지 못하고 4강 티켓을 눈 앞에서 놓쳤다. 이에 시메오네 감독의 '겁'이 경기를 망쳤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충분히 더 끌어갈 수 있는 경기였음에도 너무 일찍 수비로 전환했다는 게 요지였다. 경기 종료 후 심판 판정에도 논란이 존재했으나 결정적인 패인은 소극적 전술 변화였다. 
 
 모라타가 득점 후 기뻐하고 있다

모라타가 득점 후 기뻐하고 있다 ⓒ AT 마드리드 공식 홈페이지


이는 시메오네 감독이 비판 받아온 부분이다. 수비적으로 경기를 시작했다 선제골을 쉽게 허용하거나, 경기를 주도하다가도 너무 일찍 수비로 전환해 동점골을 허용하는 패턴은 수 시즌간 이어졌다. 이에 완벽해 보이던 시메오네의 입지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얀 오블락은 "경기 시작부터 공격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인터뷰한 바 있으며, 펠릭스의 첼시 임대 역시 시메오네 감독과의 불화에 인한 것임이 유력하다.

지난 11-12 시즌 중 AT 마드리드에 부임한 시메오네는 탄탄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팀을 세계 최고 클럽 반열에 올려 놓았다. 스페인 라리가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2강 체제를 깨트렸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원정 다득점 제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녹아웃 토너먼트의 강자로 군림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시메오네 감독에게도 다음 단계가 요구됐다. 클럽 규모가 커지며 영입하는 선수들의 이름값도 높아졌고 당시 가장 큰 관심을 받던 유망주 주앙 펠릭스가 다음 클럽으로 AT 마드리드를 고르기도 했다. 팬들은 시메오네의 '지지 않는 축구'가 아닌, 선수단의 능력을 고루 발휘하는 '이기는 축구'를 보고자 했다.

이에 시메오네는 쓰리백으로의 변화를 통해 20-21시즌 리그 우승컵을 가져왔다. 마르코스 요렌테의 대활약, 루이스 수아레스의 득점왕 수상 등 긍정적인 변수들이 모두 성공했다. 그러나 20-21시즌 말미에도 공격 패턴의 단순함 및 세부 전술 부족은 팀의 발목을 잡았고, 시즌 최종전까지 순위 경쟁이 이어지게 하는 원인이 됐다. 수아레스의 기량이 떨어지며 주요 득점원이 사라졌으며 키어런 트리피어가 뉴캐슬로 이적해 요렌테를 풀백으로 기용해야 했던 21-22 시즌부터는 이런 단점이 더 크게 다가왔다.

특히 올 시즌의 분위기가 가장 나쁘다. AT 마드리드는 이미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에서 B조 4위로 완전히 탈락했다. 유로파리그 진출권마저 놓쳤다. 또한 리그에서는 18경기 중 5경기에서 패하며 승점 31점으로 4위에 그치고 있다. 5위 비야레알과 승점이 같기에 UCL 진출 역시 수월하지는 않다. 거기다 오랜만에 상위 토너먼트 진출이 엿보였던 스페인 컵에서도 탈락했다.
 
 스페인 컵 경기를 앞둔 시메오네 감독

스페인 컵 경기를 앞둔 시메오네 감독 ⓒ AT 마드리드 공식 홈페이지

 
그러자 AT 마드리드와 시메오네 감독의 작별 가능성이 커지는 모양새다. 시메오네 감독은 스페인 컵 탈락 후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최선이 무엇인지 살펴볼 것이다"라 밝혔다. 지금까지 AT 마드리드 잔류를 강하게 이야기했던 것과는 맥락이 뒤집혔다. 또 다음 시즌 UCL 진출 실패 시 감독 교체가 이뤄질 거라는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팀 내 최고 유망주 펠릭스가 시메오네의 유임 여부에 따라 이적을 결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역시 고려 대상이다.

시메오네의 후임으로는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스페인 대표팀을 이끌었던 루이스 엔리케 감독이 꼽힌다. 엔리케는 스페인 대표팀 사임 후 클럽 축구로의 복귀를 시사한 바 있다. 다만 시메오네가 다음 시즌까지 유임할 시에는 엔리케의 선임이 쉽지 않다. 다른 구단들 역시 엔리케에게 감독직을 제안하고 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시메오네는 AT 마드리드 역사상 최고의 감독이다. 성적이 좋지 않아도 많은 현지팬들의 지지를 받는다. 허나 퍼거슨이, 또 벵거가 떠났듯 시대는 바뀐다. 맨유와 아스날은 각각 턴 하흐와 아르테타를 통해 다음 전성기를 준비하고 있다. 시메오네와의 아름다운 작별은 이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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