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교섭>의 한 장면.

영화 <교섭>의 한 장면.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임순례는 특이한 감독이다. 같은 느낌이나 장르의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여성 영화감독이 거의 없던 초창기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즈>에서부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제보자> <리틀 포레스트> 그리고 최근 개봉한 <교섭>까지, 비슷한 느낌의 영화가 없다. 관심사가 넓다.
 
내가 그를 정체하는 방식은 여성 영화감독이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땅에 고군분투로 뿌리를 내린 대찬 여자라는 이미지였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바라는 대로 주조한 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건, 이순진이 여성 영화인들을 인터뷰해 엮은 <영화하는 여자들>을 읽고 나서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남초 영역에서 극소수 여성 감독으로 고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남성들의 차별과 배제 속에서도 영화판을 떠나지 않았던 까닭이 뜻밖에도 타고난 성정에 있었다는 발견이었다. 책 속 그의 말을 전해 본다. "영화에 아무런 애착이 없어요... 기회가 돼서 계속 만들지만 어떤 상황이 생겨서 만들지 못하게 되어도 아쉬움은 없어요."
 
그는 강박적으로 영화에 매달리지 않았고 영화를 사랑하지만 집착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초월감이 그가 지나치게 상처받지 않으면서 영화를 만들게 했던 것이 아닐까. 나는 오히려 과도하게 집념을 불태우지 않으면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그의 삶의 태도가 부러웠다. 그가 더 좋아졌다. 이후로 그에 대한 나의 상을 변경한 건 당연하다. <영화하는 여자들>을 엮은 이순진이 그를 영화인이라기보다 오히려 자연인에 가깝다고 느낀 이유도 공감됐다. 자 그럼, 그런 그가 최근 작업해 내놓은 영화 <교섭>은 어떨까?
 
이런 액션 영화는 처음인데...
 
 영화 <교섭>의 한 장면.

영화 <교섭>의 한 장면.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교섭>은 여러 면에서 흥미로웠지만, 약간은 심심했다. 액션 영화하면 일단, 고막을 터트릴 듯 파열되는 폭발음 등으로 생각할 틈 없이 액션을 밀어내 정신을 빼놓고, 더불어 배우들의 현란한 액션으로 재차 호흡을 멈추게 해야 한다는 공식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런 관람자의 기대를 적잖이 배신한다. 뇌를 잠깐 쥐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봐' 다그치는데, 관람자 입장에선 '근데 지금 저 액션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 거지' 하며 지체되는 사고를 원망하게 되는 그런 장면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납득되는 전후 사정의 맥락을 따라가며 벌어지는 액션은 관람자가 액션 영화에서 늘 지체되는 뇌 신호가 따라 잡지 못하는 인지부조화를 충분히 커버해 준다. 임순례 표 액션 영화의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임순례 감독이 여성이지만, 물론 그가 여성주의를 지향하는 감독은 아니지만, 여성 감독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빼고는 백델 테스트에 붙이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인질로 잡힌 여자들이 등장하지만, 영화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제외한다.
 
이는 아프간 남치범들 그것도 꽤나 잔혹하기로 유명한 탈레반을 상대할 용맹이 남성으로 표상되기도 하거니와 외교부 등의 정부기관 핵심 관계자가 모두 남성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여성의 보조적 등장조차 어색하긴 했을 것이지만, 놀라우리만치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다. 반면 다른 남성 위주의 인질 영화에 비하면, 과도한 남성성을 과시하는 불편한 상남자들이 등장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씨X'을 연발하는 욕설을 전혀 들을 수 없다. 내 귀를 의심했을 정도니 직접 관람으로 확인하시라. 임순례 감독은 욕설을 하지 않고도 남자들의 기싸움과 주먹다툼 액션을 극화한 한국 아니 세계 최초의 감독일 것이다.
 
 영화 <교섭>의 한 장면.

영화 <교섭>의 한 장면.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그리고 하나 더 특이한 점은 사람이 무지막지하게 죽어나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통 액션 영화에서 벌어지는 잠시의 애도조차 생략시키는 무참한 죽음이나, 무차별 총격과 폭탄, 미사일 등이 터지면서 벌어지는 피와 살이 터져나가는 무자비한 대량 살상 말이다. 차나 헬기 등의 추격으로 맥없이 죽어나가는 인명도 없고, 연장 들고 싸우다 피 칠갑되어 쓰러지는 죽음도 없다. 액션 영화를 보다 느끼게 되는 대체 이렇게 많은 무고한 살상이 영화에 정말 꼭 필요한 것일까 하는 피로함이 없다는 것이다. 매우 납득되고 실감 나는 액션은 과도한 파괴와 살상이 부르는 스트레스를 현격히 줄이고 있다. 이 역시 임순례 표 액션 영화의 매력이라 하겠다.
 
그 외 스토리는 무난하다. 납치된 국민을 안전히 귀환시킨 교섭 당사자들, 외무부 공무원들과 국정원 요원의 분투다. 그런데 인질로 잡힌 사람들이 풀려나서 다행이다 안도하며 영화관을 나서면서 어딘지 찜찜한 이 기분은 무엇일까? 문득 내가 지금 납치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인질을 포기하라는 상부의 비합리적인 지시에 "외교부의 사명 중 하나는 자국민 보호라고 알고 있"다며 대들 외교 공무원이 남아 있을까. 또한 교섭관에게 인질로 잡힌 국민을 어떻게든 살려 데려오라고 지시할 최고 권력자가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게시됐습니다.
<교섭> 임순례 액션영화 인질 <영화하는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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