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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완성할 때까지 자기가 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말로 알고 있는 작가는 거의 없다... 우리는 모두 종종 이를 뽑듯이 무엇인가를 억지로 뽑아내는 것처럼 느끼는데, 심지어 최고로 자연스럽고 유려한 산문을 쓰는 작가들도 마찬가지이다."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 66쪽-

한 자리에 앉아서 일필휘지로 글을 써낸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들의 재능이 부러운 동시에 그나마 얕은 자신감이 곤두박질치고야 만다. 짧은 글 하나를 두고도 도대체 뭘 쓰고 있는지 안갯속이라 쓰다 덮고를 무수히 반복하며 전전긍긍하는 나는 뭔가 싶어서. 애를 써도 변변찮은 글 때문에 괴로워 그만두고 싶은 마음과 못나도 계속 써야지 않겠나 싶은 마음이 늘 엎치락 뒤치락이다.

그래도 쌓여가는 글들이 뿌듯해 계속 쓸 마음에 스스로 타협 같은 걸 했다. 글발도 안 되고 통찰력도 없어 남에게 그다지 큰 도움이 안 되는 글이라는 건 인정. 그래도 살면서 차오르는 궁금함이나 마음에 남는 이슈들을 말이 되게 글로 지어 '내 생각은 이런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세상에 질문 하나씩 던져보는 건 괜찮지 않나 싶은.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
ⓒ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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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은커녕 고작 말이 되게 쓰려는 것뿐인데도 고통스러워 머리털을 잃어가는 심각한 부작용마저 감수하며 말이다. 그렇게 서툴게나마 우격다짐으로 글을 써오던 터인데, 마침 지인에게 추천받은 책,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에서 저 구절을 딱 발견하고 어찌나 위안이 되든지. 흡사 힘겨운 사정을 헤아리는 선배가 못난 후배의 어깨를 토닥이며 괴로움을 달래준 듯했달까.

군데군데 장황한 일화와 반복되는 메시지들 때문에 잠시 지루해지기도 하지만 내 마음 알아준 저 구절 덕분에 고마운 마음으로 끝까지 읽었다. 강의하듯 저자만의 글쓰기 비법을 전하는데, 소설 쓰기를 전제로 하지만 다른 유형의 글쓰기에도 적용가능해 귀담아 들을 만하다. 또한 작가로 성공하기까지 저자의 인생이야기를 함께 풀어낸 부분이 흥미로왔다. 

작가인 아버지를 보며 꿈을 키운 1954년 생 저자 앤 라모트는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는 큰 포부를 실현하고자 19세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곧 자신감을 잃어 자학과 불신 속에 세상을 원망하며 보냈는데, 다행히 아버지의 굳은 믿음으로 글쓰기를 놓지 않았다. 뇌암으로 죽어가는 아버지를 위해 쓴 자전적 소설 <힘겨운 웃음>으로 26세에 첫 출간에 성공하고, 이후 가족, 종교, 사회, 글쓰기 등 다양한 분야의 소설과 에세이를 써오고 있다.

무모할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젊은 시절의 패기며, 절망과 좌절, 고난 속에서도 글에 매진해 결국 유명 작가의 꿈을 이뤄낸 저자의 인생 자체가 이미 소설 같아서 술술 읽힌다. 그래서 그런지 1994년 출간된 이 책은 미국의 작가지망생들에게 필독서로 읽힐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16개 국에 번역 출간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글쓰기 방법론을 다룬 책답게 작가가 되고 싶은 이들을 위한 세세하고 다양한 조언과 지침들로 꽉 차 있다. 글감 찾는 법, 어떻게든 쓰기 시작하는 법, 글이 막혔을 때 도움 되는 법, 출간의 과정과 실체, 자기 비하나 혐오에 시달릴 때 또는 다른 이에게 질투가 활활 타오를 때 대처법 등을 생생한 일화와 함께 잘 다루고 있다.

특히, 감수성 높은 글을 동경하는 내게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좋은 글에 대해 논한 부분이다. 저자는 '좋은 글쓰기란 진실을 말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본질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자기만의 진실한 목소리는 당연히 자신의 상처에 묻혀 있기 쉬우니 상처를 회피하지 말고 몰입해 보라고 권한다.
"당신의 분노와 피해와 슬픔을 회피한 채로는, 이러한 진실을 하나도 얻을 수 없다. 당신의 분노와 피해와 슬픔이 바로 진실에 이르는 길이다. … 그 속으로 들어가 한참 동안 그곳을 살펴볼 때, 단지 심호흡만 하다가 마침내 그것을 받아들일 때, 바로 그때 자기의 고유한 목소리로 말할 수 있게 되고, 현재의 순간에 머무를 수 있다."(304쪽)

아마도 상처에 대한 주관적이고 통속적인 해석에서 벗어나 드러나지 않은 면까지 깊게 들여다보는 데서 자신만의 고유한 목소리가 나오고 바로 그곳에 진실이 깃든다는 의미이리라. 진실이라든가 고유한 목소리를 내는 일은 내 재능으론 언감생심이지만 가뭄에 콩 나듯 비슷한 경험을 한 것도 같다. 직접 겪은 일화를 쓸 때, 쓰는 과정에서 정말 내 생각이 옳은지 의심해 보고 여러 관점으로 조망하다가 새로운 방향으로 견해가 정리되는 경우가 간혹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감수성이 다소나마 깊어진 듯도 하고, 내가 속한 세계가 조금은 확장된 듯한 뿌듯한 기분이 든다. 글을 쓴 덕분에 얻는 이점이다. 저자 또한 글쓰기의 이점과 기쁨들에 관해 주목하는데, 채찍보다 당근에 더 관심 많은 나는 글쓰기 지침보다는 글 쓰는 이점들이 더 잘 읽힌다.

예를 들면, 글을 씀으로써 늘 도전하며 살 수 있다는 점이다. 글쓰기는 고통스럽지만 완성하고 나면 또 한 고비를 넘겼다는 성취감에 이끌려 계속 쓰게 되니 말이다. 저자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가 바로 스스로가 쏟아부을 만한 중요한 대상을 가지고 있어 헌신하는 과정 자체가 즐겁기 때문이라고 한다. 글쓰기가 일인 동시에 놀이라는 의미이고, 그래서 글을 쓴다 하면 내내 고독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저자는 글을 쓰면 한층 심오한 독자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글 쓰는 이들은 훨씬 더 깊이 있는 심미안과 집중력을 갖고 책을 읽어내는데, 작가의 눈으로 쉽게 읽히는 글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염두에 두며 새로운 방식으로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리가 있다. 나 또한 글을 쓰고 난 후에 책의 내용과 문체는 물론 글의 전개와 구성을 살피는 입체적 독서에 더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자신만의 진실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늘 도전하며 살 수 있으며, 심오한 독자가 될 수 있는 글쓰기라는데 재능 따지며 주저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저자는 글쓰기가 더 성숙한 인간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도 한다. 이 정도면 더 욕심을 내서 악착같이 써야 할 것 같다. 내 수준의 글솜씨로는 굶어 죽기 딱 알맞지만 어쩌겠나, 이리 좋은 점들이 많다는데. 기왕 시작한 글쓰기, 스스로 만족하며 계속 써 봐야겠다. 이리 좋다는 글쓰기, 이 책을 여기저기 권하며 읽고 함께 써 보자고 권해봐야겠다.

쓰기의 감각 - 삶의 감각을 깨우는 글쓰기 수업

앤 라모트 지음, 최재경 옮김, 웅진지식하우스(2018)


태그:#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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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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