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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일자리는 겨울 두 달에 '방학'을 한다. 날씨가 추워 노인들이 활동하는 게 불편하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며칠 전 시니어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어르신 올해부터 초등학교 도서관에 가서 사서 일을 하시는 일에 배정됐습니다. 괜찮으시죠?"

대답을 하고서 참 다행이다 생각했다. 혹여 연락이 없으면 좀 서운했을 것이다. 시니어 일은 1년을 마감하고 새해가 되면 새로 신청을 해야 한다. 다시 일자리를 얻는 경우가 있고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만큼 일자리를 찾은 어르신들이 많다. 한 달에 열흘 하는 일이라서 힘들지 않고 나들이 삼아 일을 즐긴다.

시니어 일자리에서 2년 가까이 꽃 그림과 풀 그림을 그렸던 일이 마감됐다. 수요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엽서를 그렸고 나와 함께 했던 어르신은 붓글씨로 가훈을 써서 관광객에게 나누는 일을 했는데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다. 철길 마을에 관광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 분들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본인의 관심사 외엔 눈길을 잘 주지 않는 듯했다.

새해가 되면서 내 나이 팔십이 됐다. 생각하면 너무 많은 나이라서 나도 놀랍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팔십이란 나이가 주는 무게감에 짓눌리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활기 있게 살아가려고 한다. 누가 대신 살아주지 않는 삶, 내 삶은 내 의지대로 살아갈 것이다. 

시니어 일자리 중에 도서관 사서 자리가 있어 신청을 했더랬다. 더 늦으면 어려울 것 같아서였다. 사서 일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지만 배우면 차차 적응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책과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 약간은 설레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평소에도 책과 함께 하는 시간은 행복했었다.

지난 2년 가까이 시니어에서 붓글씨 쓰고 그림 그리며 같이 지낸 어르신과 헤어지는 게 조금 섭섭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만나면 헤어져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인 것이다. 같이 지내는 동안 서로 불편함 없이 잘 지내 왔었다. 그 어른과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시큰해 온다.
 
학교를 찾아가는데 하얀 송이 눈이 포근포근 내린다
▲ 눈오는 날 풍경.  학교를 찾아가는데 하얀 송이 눈이 포근포근 내린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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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날이 춥다. 사람들은 집안에 꼭꼭 숨어들어 있는지 찬 바람이 날카로운 거리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조차 멈춰 한산하다. 잿빛 하늘에는 송이눈이 한 송이 두 송이 포근하게 내린다. 계절은 한 겨울로 다시 돌아가는 느낌이다. 시간이 뒷걸음치는 건지, 사람도 때론 뒷걸음치듯 세월도 뒤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을까? 아마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괜히 혼자서 상상을 해 보는 일이다.

어제(27일)는 학교 도서관에 가는 날이었다. 아침을 먹고 남편과 함께 월명초등학교를 찾아갔다. 군산에 살면서도 월명초등학교가 어디 있는지 알지를 못해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딸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돼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자꾸 주변이 변해 가고 있다. 새로 개발한 동네를 가면 여기가 내가 사는 지역인가 할 정도로 낯설다. 몇 년이 지나면 도시는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처음으로 찾아가는 학교, 만나는 사람은 어떤 분들일까? 살짝 설레면서 약간은 긴장이 된다. 사람은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는 긴장이 되고 친숙할 동안은 낯설다. 나이가 들 수록 오래되고 익숙한 환경이 편안하다. 그렇다고 늘 편안함에 안주하다 보면 성장할 기회를 놓칠 수 있어 도전하는 걸 멈추지 않고 있다. 

학교 도서관 사서일은 두 사람이 한 조가 돼 함께한다. 그분은 벌써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보다 훨씬 젊은 분이다. 학교 사서 일을 하게 되면서 또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된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알아가는 동안은 약간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 많다. 조금 양보하고 잘 대해 주면 편한 사이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분과 만나 행정실로 향했다.

학교 행정실에는 젊은 선생님 세 분이 업무를 보고 계셨다. 행정실에서는 우리가 오는 걸 벌써 알고 있어서 반갑게 맞아줬다. 1년 동안 일해야 하는 도서관을 둘러 본다. 책도 많고 정리해야 할 일들이 눈에 보인다. 오늘은 담당선생님이 계시지 않아 전화로 인사만 하고 월요일부터 작업을 하기로 하고 교장실로 인사 차 들렀다.

교장선생님이 남자인 줄 알았는데 50대가 조금 넘은 젊은 여성 분이었다. 얼마나 친절하게 대해주시는지 마음 문이 활짝 열리도록 따뜻하게 환대해 주신다. 날이 춥다고 따뜻한 차를 대접해 주고, 학교 학생수와 학교의 내력을 설명하시면서 마치 오래전에 만나온 지인처럼 친근하게 대하신다. 

학교는 아파트들이 둘러 쌓인 곳에 자리하고 있어 아늑하다. 지은 지 4년이라서 도서관도 깨끗하고 학교도 깨끗했다. 선생님들도 친절하고 올 한 해 이곳을 드나들면서 따뜻한 기운으로 한해를 잘 보낼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첫인상, 첫 느낌이 좋은 것처럼 즐거운 일들이 있을 거라 기대를 가져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도서관 ,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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