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04 19:50최종 업데이트 23.04.04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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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윤 대통령을 보고 있다. 2023.3.16 ⓒ AFP=연합뉴스

 
한일관계의 늪에 빠진 윤석열 대통령이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그가 중대 선언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대원칙을 선언할 결심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승민 전 의원은 3일 자 페이스북 글에서 "대통령이 새삼스럽게 대국민 선언을 한다는 것은 독도를 분쟁 지역으로 만들려는 일본의 치밀한 노림수에 말리는 어리석은 짓"이라며 "만약 윤 대통령의 선언 직후에 일본의 기시다 총리가 '다케시마는 우리 땅'이라고 선언하면, 국제사회에서 독도는 분쟁 지역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경고했다.


독도에 대한 대한민국 대통령의 선언이 어떤 의미와 결과를 초래할지는 각각의 상황과 맥락에 따라 판단할 일이다. 윤 대통령이 원칙에 입각해 대일정책을 수행했다면, 그런 선언의 의미와 결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일관계의 대원칙을 훼손한 그가 이제 와서 그런 선언을 한다면, 유승민 전 의원의 말처럼 '어리석은 짓'이 될 공산이 크다.

윤 대통령은 폭탄주와 반주와 러브샷을 해가며 일본에 이것저것 다 해줄 것처럼 행동했다. 그런 그가 뒤늦게 '독도만큼은 건들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면, 일본이 볼 때 귀여운 앙탈이 될 수도 있다. 우파 싱크탱크인 일본 국가기본문제연구소의 28일 자 글에도 나타나듯이, 일본인들이 윤 대통령의 행동을 '한국 국내용'으로 간주하고 더욱 거리낌없이 독도에 대한 도발을 높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관련기사: "윤 대통령도 알고 있었다"는 일본 국가기본문제연구소 https://omn.kr/23a7w).

일본에 의지한 전두환

40년 전의 전두환도 일본에 크게 의지했다. 일본이 거짓으로 퍼트린 북한 남침설을 빌미로 1980년 5·17 쿠데타를 일으키고 5·18 광주 학살까지 자행한 뒤 청와대로 들어갔다.

전두환도 일본과의 경제협력 및 군사협력에 집착했다. 그 역시 한·일 군사협력을 추진했다는 점은 1983년 9월 5일 윤성민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서 "한·미·일 3국의 군사적 협력 강화가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고 발언한 데서도 확인된다.

전두환 정권이 그처럼 일본에 밀착하는 상황에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 터졌다. 강제징용의 강제성을 희석하고 '다케시마는 일본 땅' 주장을 더욱 강화한 문부성의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가 지난달 28일 발표돼 한국 국민들을 분노케 한 것처럼, 전두환 정권 3년 차인 1982년에도 일본 교과서 왜곡이 한국 여론을 들끓게 했다.

그해 6월의 교과서 왜곡은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에 의한 외교권 강탈을 '외교권 접수'로, 토지조사사업에 의한 토지 약탈을 '토지소유권 확인'으로, 한국 침략을 '진출'이나 '출병'으로 미화했다. 이에 대한 분노는 한국과 홍콩에서 반일 시위가 격화되고 서울의 일본대사관 경비가 삼엄해진 데서 상징적으로 드러났다.

그런 속에서 그해 하반기에 <독도는 우리 땅> 노래가 퍼져나갔다. 10월 22일 자 <경향신문> 12면 중간 기사는 "개그맨 겸 가수 정광태가 부르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이색적인 노래가 넓게 번지고 있다"고 한 뒤 "일본의 역사왜곡 사건이 일면서 학생 등 젊은 층의 애창곡으로 넓게 불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흐름에 대응해 전두환이 내놓은 대응법이 있다. 그는 그해 8·15 경축사 때 '스스로 힘을 길러 일본보다 더 잘사는 것이 일본과의 문제를 해결하는 요체'라며 반일이나 항일이 아닌 극일을 강조했다. 식민 지배에 대한 한국인들의 피 맺힌 한을 일본보다 못사는 데서 발생한 열등감으로 은근히 폄하하면서, 정신적 측면의 극일로 관심을 돌리고자 했던 것이다.

또 다른 대응법은 독립기념관 건립이다. 독립기념관 건립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었지만, 들끓는 반일 여론 앞에서 성급하게 추진된 일이었다. 전두환 퇴임 이틀 전에 보도된 1988년 2월 23일자 <동아일보> '결산 제5공화국' 제9회는 "지난해 개관한 독립기념관 건립은 82년 일본 역사교과서의 한국부문 왜곡이 직접 계기가 됐으나 들끓는 민족 자존 의식을 성금 대열로 연결시켜 민족 자존의 전당으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개관을 서두른 나머지 졸속 공사로 화마를 부르기는 했지만 5공화국의 치적에 속한다"고 평가했다

독도 천연기념물 지정에 담긴 뜻

이 시기에 전두환 정권은 독도에 관한 조치도 내놓았다. 그해 11월 문공부 문화재위원회가 독도와 독도 서식 조류를 천연기념물로 결정하고 문공부가 이를 고시한 일이 그것이다. 그달 2일 발행된 <동아일보> 11면 우상단 기사는 "독도 등 조류 번식지 5개소가 새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라며 "문공부는 2일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이들 동물과 서식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고 보도했다.

외형상으로는 멸종 위기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일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독도 영유권을 의식해 내놓은 조치였다. 2014년에 동북아시아문화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최장근 대구대 교수의 '한국 정부의 독도정책의 현황과 과제'는 "전두환 대통령은 재임기간에 한일관계를 매우 중시했다"며 독도에 대한 이 정권의 입장을 '한국의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했다. 그런 뒤 구체적 사례의 하나로 독도 천연기념물 지정을 예시했다.

독도 천연기념물 지정이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은 2005년에 나온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의 보도에서도 알 수 있다. 그해 3월 30일 자 <한겨레> '독도 천연기념물 지정은 차관 대가 의혹'은 일본의 경협차관을 빌리는 조건으로 그렇게 지정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김봉우 독도역사찾기운동본부 위원장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뒷날 일반인들의 독도 방문을 막는 빌미가 됐고, 한·일이 독도를 포함한 중간수역을 공동관리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줬다'는 그의 진술을 전했다.

천연기념물 지정이 일본 경제협력의 대가였는지에 관해서는 사실 확인이 필요하지만, 이 지정으로 인해 한국인들의 독도 이용이 까다로워진 것은 사실이다. 말로는 극일을 외치면서도, 실상은 독도 이용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독도를 한국인이 아닌 천연기념물의 땅, 그들의 땅으로 지정한 셈이다.

독도에 대한 전두환 정권의 태도가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점은 <독도는 우리 땅> 노래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방송에서 사라진 데서도 느낄 수 있다. 1984년 2월 18일 자 <매일경제> '독도는 우리 땅 아리송한 잠정 방송금지'는 이 노래가 1월 12일부터 방송에서 사라졌다면서 "가요 프로 담당자 및 제작 간부들도 분명한 사유를 모르는 채 전파를 타지 못하고 있어 최근의 대외정세와 관련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만 난무"하다고 보도했다.

1984년 1월 1일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전두환을 일본에 초청했다. 기사에 언급된 "최근의 대외정세"는 이런 일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1984년 9월 전두환 대통령이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위의 2005년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김봉우 위원장은 민주평통 정치외교분과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그런 발언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독도의용수비대장 홍순칠(1929~1986)이 전두환 정권의 탄압을 받은 일도 폭로했다.

기사에 따르면 김봉우 위원장은 "홍순칠 독도의용수비대장이 정보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 뒤 독도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풀려났다"고 증언했다. 전두환이 일본을 방문한 시기를 전후해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일본에 크게 의존한 전두환 정권은 일본 교과서 왜곡으로 한국 여론이 들끓는 상황을 극일 구호와 독립기념관 건립 등으로 피해가고자 했다. 그러면서 독도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한국인들의 독도 이용에 제약을 가했다. 균형을 잡지 못하고 일본에 과잉 의존하는 정권이었으니, 독도에 관한 이들의 조치도 그런 문제점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윤석열 정권은 전두환 정권보다 훨씬 더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윤 정권이 독도에 관한 중대 선언을 한다 해도, 그것이 한국을 이롭게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한일관계에 대한 윤 정부의 태도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보이지 않는 한, 독도에 대한 윤 정부의 조치는 "어리석은 조치"가 될 수도 있고, '반한국적인 조치'가 될 수도 있다. 지금 윤 대통령에게 급한 것은 독도에 대한 선언을 고민하기에 앞서, 한일관계에 관한 입장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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