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4.16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매년 4월은 추모와 애도의 시간이 되어왔다. 한국사회는 압축성장의 후유증으로 잊을 만하면 위기의 징후처럼 어처구니없는 사회적 재앙에 노출되어 왔다. 안타까운 인명 피해와 사회적 불안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다가도 이내 잊힌다. 그렇게 둔감해진 사회 일각에선 4.16이 뭐가 특별하냐며 볼멘소리를 하거나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워낙에 재앙이 빈번해서 생기는 서글픈 현실이다.
 
물론 사회적 참사에 우열이란 없다. 모든 죽음은 애도의 대상이며 명백히 공공의 책임인 사회적 재난은 철저하게 평가되고 원인이 해결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세월호 참사는 소설가 김훈이 여러 차례 매체에 기고한 것처럼, 한국사회의 도덕적 파탄과 공동체의 붕괴를 절절하게 상징하는 사건으로서 독보적인 의미를 갖는다. 
 
세월호 참사로부터 만 9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제 4.16을 과거의 역사로 기억(하거나 하고 싶어)한다. 계속 비극에 잠겨서만 살 순 없지 않느냐면서. 원론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계속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별다른 반성과 개선책 없이 그저 요행을 기대하는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그래서 충분히 막을 수 있었거나 어떻게든 막아내야만 했던 사회적 참사를 주기적으로 거듭 반복하는 중이다. 어느새 반년여가 되어가는 이태원 참사 역시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면피할 궁리만 가득할 따름이다.
 
한술 더 떠 누군가는 온갖 입에 담지 못할 혐오로 진실 규명과 근본 대책을 요구하는 이들을 매도하기에 이른다. 소모적인 사회적 갈등 가운데 아직도 4.16은 역사적 평가로 온전히 정리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한편의 새로운 4.16 영화가 막 도착했다. 제목 하여 <장기자랑>이다. 통칭 '세월호 엄마'들로 불리곤 하는 단원고등학교 학생의 엄마들이 결성한 극단 '노란리본'의 세 번째 공연 제목이자, 공연 실황과 그 준비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어떻게든 슬픔과 비통함을 견디기 위해 참 많은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눈에는 농성과 시위의 풍경만 보였을지 몰라도 그들은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 가족합창단을 결성했고, 사진을 배워 기록 작업에 나섰다. 원예와 바느질, 목공, 바리스타 기술을 집단적으로 배웠다. 배운 솜씨는 가족대책위원회 활동에 스며들듯 반영되었다. 그중에서 이 영화는 연극단 활동에 주목했다. 과연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세월호 엄마'들로 구성된 극단의 탄생과정
 
"장기자랑"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장기자랑"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장기자랑"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장기자랑"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영화의 첫 순간은 꽤나 기이하다. 중년의 여성들이 고등학생 교복을 입고 수학여행 장기자랑 준비할 궁리에 한창이다. 그들이 누구인지 관객은 익히 짐작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생경한 풍경임은 사실이다. 열심히 공연 연습 중이지만 아무래도 전문배우 급의 연기 재현과는 거리가 있다. 이미 상황을 대충 알고 있지만 불균형한 감각이 진해지는 이유다. 그래도 어찌 되었건 의무감으로 봐줘야지 하며 화면을 계속 응시한다. 공연 중 합창 노래와 함께 무대에서 화면이 전환되어 도시 교외의 풍경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마치 등하굣길 느낌으로 펼쳐지던 화면에 이윽고 자전거를 탄 어린 딸아이와 걸음의 보조를 맞춰주는 엄마, 그렇게 모녀의 뒷모습이 잡힌다. 다시 장면은 노란리본이 그려진 컨테이너로 전환된다. 그 연습실에서 극단이 한창 이것저것 준비 중이다.
 
연습실 장면부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차례로 'OO엄마'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자신을 소개하면서 각자가 겪은 그날의 사연을 들려준다. 할 말이 많을 텐데 억제하는 기운이 역력하다. 제작진은 알 사람은 다 아는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활동 내역을 세세히 풀어내기보다는 그들 각자의 개별성에 주목한다. 그 대신 최소한의 정보를 검은 화면에 자막으로 표기한다. 아주 간단한 내용이라 더 들여다보게 만든다. 너무나 간결하기에 오히려 무게감이 느껴질 정도다.
 
"200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침몰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단원고등학교 학생 250명을 포함하여 총 304명이 사망했다."

극단의 탄생과정을 풀어내려면 어쩔 수 없이 통과의례로 그들이 직면했던 그날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엄마들은 각자의 기억을 되짚어 들려준다. 해당부분은 지극히 감정을 절제하는 방식으로 편집되어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담담하게 들려주는 2014년 4월 16일 당일의 증언은 더 마른 눈물과 소리 없는 통곡으로 전이된다. 이는 작품 내내 감독의 일관된 선택처럼 진행된다. 각자 자식을 떠나보낸 뒤, 그들을 기억하고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엄마들이 모이기까지 과정을 소개하는 필수적인 전개 이후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왜 하필 극단을 결성하게 되었는지 '노란리본'의 탄생설화로 전환된다.
 
처음부터 딱히 연극을 지향한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과거 공연 경력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직 혼자 고립되지 않기 위해 뭐라도 해야만 했던 시절이다. 2014년 사고가 난 직후에는 모든 게 비현실적이었던 지라 오히려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2015년이 되자 유가족들은 각자 텅 빈 집에서 동굴에 움츠린 곰처럼 위축되어 있었다. 그런 그들을 염려한 주변 연대단위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안해 어떻게든 세상과의 끈을 유지시키려 고심했다.

처음엔 커피 바리스타 수업을 들었지만 해당 과정이 끝나자 다음 코스를 궁리하던 누군가가 지역의 연극 연출가를 수소문해 연극 치료 일환으로 극단 활동을 제안한다. 처음에는 다들 내켜하지 않았기에 이탈자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커피 모임에서 절반이 빠져나가고 절반만 남았지만, 무언가 몰입할 대상을 찾(아내야만 하)던 엄마들은 자식 키우고 살림하느라 그동안 놓아뒀던 숨겨진 재능 찾기에 곧 맛을 들이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 화면해설.
 
"엄마들은 2015년 첫 공연을 시작으로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을 만들었다. 3년 간 두 작품을 만들어 전국에서 약 200여회의 공연을 마쳤다."

뒤를 이어 짤막하게 초기 공연 장면들이 소개된다. 영화에서 세부적인 소개는 빠졌지만 노란리본 극단의 첫 공연은 비정규직 중년 가장의 삶을 그린 '그와 그녀의 옷장'이었다. 엄마들은 남성 캐릭터도 전부 소화하며 자신들이 겪지 못했던 세상의 다양한 이면과 접속하며 활력을 얻게 된다.
 
'유가족', '희생자'의 고정관념을 넘어선 도전
 
"장기자랑"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장기자랑"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연극 활동에 흠뻑 빠진 엄마들은 예전엔 생각조차 못했던 갈등 또한 겪게 된다. 바로 공연 배역 주도권 다툼이다. 엄마들은 자신의 비중을 따지며 불만을 품고 서로 간에 골이 깊어져만 간다. 연출 감독도 쉽게 해결되지 않다 보니 골머리가 아프다. 별것 아닌 듯 보였던 반목이 점점 심해져 극단에는 이탈자도 등장하고 만다. 알고 보니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극단 단원들은 자녀들을 추억하고자 서로 'OO엄마'로 호칭하는데, 아이들을 닮았는지 끼가 있고 적성에 맞는 이와 덜한 이가 구분되고 중요 배역 편중이 일어난다. 누군가는 좀 더 평등하게 역할이 분배되어야 한다 생각하지만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기준은 쉽게 형성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화면 가득히 세 번째 자막이 오른다.
 
"하지만 모든 엄마가 돌아오지는 않았다. 김태현 감독은 결국 전문 배우를 섭외해 '장기자랑' 연습을 이어간다."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던 이전 공연들과는 달리 세 번째 창작공연은 바로 그들의 자녀들이 수학여행에서 장기자랑에 나간다는 내용이었기에 한 치의 양보도 힘들었으리라. 그런 갈등이 해소되지 않자 4년 넘게 함께 해왔던 동료들 중 일부가 극단을 떠나버린다. 단원들은 서운함과 속상함을 토로하는데 뒤끝도 장난 아니다. 비온 뒤에 땅이 굳듯 그렇게 다툼은 일정부분 해소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장기자랑' 준비과정이 진행된다. 
 
연습과정에서 비록 툭탁거림은 있었지만 차근차근 준비가 갖춰지던 때, 사건이 발생한다. 단원고등학교 4.16 당일 추모공연으로 '장기자랑' 공연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극단 내외에서 토론이 진행된다. 누군가는 엄마들이 학교에서 사고 당일 날짜에 공연하면 오히려 상처를 헤집는 게 아닐까 걱정한다. 엄마들도 의견이 분분해진다. 아이들을 추념하기 위해 기꺼이 공연에 응할 의사는 있지만 현장에서 과연 견뎌낼지는 자신이 없기도 하다. 그런 안팎의 다면적 염려와 극단 단원들 각자 고민이 교차한다. 하지만 정작 그런 고뇌 과정에 비해 공연은 어이없는 해프닝처럼 끝내 불발되고 만다.
 
그리고 이야기는 방향을 튼다. 단원고등학교 공연이 좌절된 것처럼 2016-2017 촛불로 집권한 정부에서도 진상규명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유가족들은 공연 대신 투쟁에 몰입한다. 노란리본 활동은 잠정 중단되고 다시 엄마들은 대책위의 일원으로 거리에 나선다. 피켓을 들고 행진을 펼치며 삭발농성에 나선다. 고생스러운 풍경이 안쓰럽지만 투쟁현장에서 엄마들의 표정은 결연하다. '악착같이' 밥을 먹는다는 한 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 주인공들이 처한 엄혹한 상황을 전시하는 일련의 순간들은 영화 전체의 기조에서 다소 유리된 것 같지만 구구절절 설명 없이 이들이 속한 물리적 조건을 관객들에게 환기시켜주는 기능을 담당한다. 꼭 해야 할 이야기는 하고 마는 스타일이다.
 
다시 기회가 찾아오고 엄마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학교에 들어선다. 결국 엄마들은 단원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자녀가 끝내 못 다 한 장기자랑 공연을 마친다. 영화가 은근슬쩍 편집에 공을 많이 들였는데 특히 이 순간 장면전환은 치밀함이 돋보인다. 아이들이 끝내 도착하지 못한 제주 바다와 수학여행의 꿈이 엄마들에 의해 완수되는 '장기자랑' 연극의 내용 전환이 실로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그리고 각자가 품었던 묵은 한의 아주 일부가 초현실적인 묘사와 함께 해소된다.
 
그리고 이들은 이제 자신들의 네 번째 공연을 준비하는 중이다. 다시 치열하게 배역 다툼을 벌이는 대목에선 피식 웃음이 난다. 하지만 이전의 소모전과는 다르게 일정부분 경험치가 축적된 단원들은 슬기롭게 건설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고 차가운 세상에 남겨진 엄마들의 생존투쟁은 계속된다.
 
지금 등장해야 할 '세월호 영화'의 모범적 일례
 
"장기자랑"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장기자랑"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장기자랑>을 만든 이소현 감독은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성'을 얼음과 불처럼 겸비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거대한 상처로 남은 사회적 참사에 대해 다룬다는 건 위태로운 도전이다. 그런 엄중한 상황과 복잡한 정세를 감독은 깊숙이 인지하고 2023년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담론은 무엇인가 고민하고 또 고민한 결과물로서 <장기자랑>을 세상에 내놓았다.
 
겉보기엔 세월호 유가족들의 현재 삶을 눈물과 분노보다는 휴먼 드라마로 적당히 가공한 변주처럼 보이겠지만 이 영화는 만만치 않은 인식의 전환을 우리들에게 요청한다. 무엇보다 주인공들을 우리와는 멀찍이 다른 존재가 아닌 이웃으로 복권시킨다. 진실에 다가서는 걸 두려워하거나 망설이다 보면 종종 우리는 희생자와 유가족, 그들을 도와 함께하는 연대자들을 '특별한' 이들로 격리시켜버리곤 한다. 대단한 활동가이거나 가련한 희생자로 말이다.

하지만 <장기자랑>에서 유머 포인트로 소개되는 배역 다툼조차 실제로는 그런 색안경을 우리에게서 벗겨내기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여기에 여태까지 잘 드러나지 않았던 쟁점과 과제, 예를 들어 희생자와 생존자 간의 결 차이 같은 문제가 구체화된다. 세월호를 다룬 타 영상작품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하기도 했던 '생존자' 애진 가족이 유가족과 함께 활동하는 상황에서 겪는 고민지점은 특기할 만하다.
 
영화는 극도로 절제된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와 유가족들의 이후 삶을 다룬다. 사고의 진실을 밝히는 게 지상과제라 생각하는 이들에겐 이 영화의 방향성은 너무나 미지근할지도 모른다. 진상규명을 훼방하는 자들에 대한 규탄과 응징에 꽂힌 이들에겐 본 작품의 내용은 당장 최우선과제와 동떨어진 그저 변죽만 울리는 것처럼 인식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적당한 중용과 접근성이 이 영화의 절대적 강점으로 의도되었다는 걸 곧 깨닫게 된다. <장기자랑>의 그런 적절한 수위조절과 균형감각 덕분에 영화는 벌써 내년이면 10주년을 맞이하지만 여전히 실체적 규명은 미흡하기만 한 실정에서 바로 지금 꼭 필요한 작업으로 자리매김한다.
 
이 영화가 소개하는 내용은 '인두겁'을 쓰고 있다면 함부로 부정하거나 폄하하기란 불가능할 정도로 정제되어 있다. 과거를 망각하고픈 우리 사회 내면의 그릇된 욕망을 점잖게 타일러 돌려놓으려는 태도를 시종일관 고수하며 핑계를 부리려는 이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그렇게 아직 잊으면 안 된다고, 조곤조곤 설득하며 간절히 호소하는 본 작품의 위력은 '외유내강' 그 자체라 하겠다.

그렇게 <장기자랑>은 유가족들이 거리에서 서명과 선전전을 할 때 지나가길 망설이는 우리들의 속내를 빤히 응시하며 정중한 태도로 세월호의 기억을 소환하고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음을 말한다. 그런 탁월한 효용과 명확한 목표 설정 때문에 <장기자랑>은 가능한 많은 이들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작품정보>
 
장기자랑 The Talent Show
2022|한국|휴먼 다큐멘터리
2023. 4. 5. 개봉|92분|12세 관람가
감독 이소현
출연 수인 엄마(김명임), 동수 엄마(김도현), 애진 엄마(김순덕),
예진 엄마(박유신), 영만 엄마(이미경), 순범 엄마(최지영),
윤민 엄마(박혜영), 연극 연출(김태현)
PD 이보람
촬영 민준원, 이큰솔
편집 김형남, 구윤주, 이소현, 황다경
사운드 소나기 사운드
음악 권현정
협력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제공/제작 영화사 연필
공동제공/배급 ㈜영화사 진진
 
2021 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옥랑문화상
2022 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쇼케이스
2022 48회 서울독립영화제 장편쇼케이스
장기자랑 이소현 감독 노란리본 세월호 참사 4.16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