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엄과 자유는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귀한 보배들을 지키자. 만약 그렇지 못하면 존엄과 함께 죽어버리자.' 로마 시대의 정치가이자 철학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주장한 격언이다.

모든 인간은 태어난 그 자체로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타고난 유전자로 인간의 우열을 가릴 수 있고, 인간이 인간을 개조할 수도 있다는 발상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일상 속에서 알게 모르게 인간의 우열을 나누고 있지는 않은가.
 
2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 97회에서는 '다윈의 진화론이 낳은 돌연변이, 우생학' 편을 통해, 세계사에 큰 파장을 일으킨 진화론에서 변질된 우생학의 실체와 그 비윤리적인 사고가 어떻게 현대까지도 이어지고 있는지를 조명했다. 혐오와 차별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연구해온 염운옥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가 오늘의 강연자로 나섰다.
 
'우월한 인간'의 조건은 무엇일까. 사회와 종교 등의 여러 분야에서 끊임없이 가장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주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인위적인 인종교배 실험, 2018년 중국에서 유전자 편집으로 에이즈 면역을 가진 아기를 탄생시킨 사건 등, 인간이 인간을 개조하여 보다 우월한 인간을 창조해내려는 금단의 시도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한 평가는 과학의 발전과 생명 존중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여전히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을 조작하고 개조할 수 있는 발상의 시작점이 '우생학'이다. 19세기 말 전 세계를 휩쓸었던 금단의 과학인 우생학이란 '종의 형질을 인위적으로 육종하여 우수한 종을 만드는 것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우생학의 뿌리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서 시작된다.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의 핵심은, 생명은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환경에 따라 서서히 변한다는 것이다. 자연선택은 특정환경에 더 적합한 형질을 가진 개체가 더 잘 생존하고 생식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생학은 이런 다윈의 자연선택 개념을 왜곡하여 '인류가 생존하려면 열등한 인간은 도태시켜야한다'는 위험한 발상을 내놓았다.
 
다윈은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믿음이 지배적이던 시대에, 용기있게 사회적 파장을 감수하며 자신의 이론을 제시하여 세상의 상식을 바꾼 인물이다. 다윈은 22세에 영국 해군 탐험선인 비글호를 타고 4년 10개월간 세계를 탐험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비글호 항해기간 중 다윈은 총 1529종의 생물과 3907점에 이르는 표본을 수집했다. 

그런데 다윈은 갈라파고스 제도를 방문했다가 당시 수천년간 세상을 지배해온 기독교적 세계관을 흔들 위험한 진실을 알게 된다. 다윈은 서식하던 새들이 같은 종임에도 먹이의 종류에 따라 부리가 변화한 모습에 주목했다. 새 뿐만이 아니라 기린이나 말도 마찬가지였다.
 
다윈은 환경에 따라 생물의 모습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 통하여 주어진 환경에 유리한 유전 인자를 가친 개체는 그렇지 않은 개체보다 생존율이 높아진다는 '자연선택'의 개념이 성립한다. 모든 현존하는 동식물들이 여러 세대를 거친 변화의 축적과 새로운 종 등장의 결과라는 '진화론'의 뿌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다윈이 진화론을 곧바로 세상에 발표하지는 못했다. 그가 자연선택을 통한 종의 진화이론을 최초로 제시했던 <종의 기원>을 발간한 것은 1859년으로, 처음 핀치새의 종을 발견했던 시기보다 무려 무려 20여 년이나 걸렸다.
 
다윈의 주장은 자칫 성경과 기독교 세계관 전체를 부정하는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다윈 본인의 기독교인이었던데다가, 여전히 신앙적 믿음이 강하게 지배하던 시대에 자신의 이론이 세상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다윈은 한 편지에서 '마치 살인을 자백하는 기분'이라고 표현하면서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종의 기원>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지만 비난과 옹호가 첨예하게 엇갈렸다. 그럼에도 다윈은 "모든 생명체는 공동의 조상이 있다. 긴 역사 속에서 다른 종으로 갈라졌을 뿐"이라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지식인들도 진화론파와 창조론파로 나뉘어 치열한 논쟁을 펼쳤다.
 
시간이 흐르면서 진화론이 옳았음이 과학적으로 점차 증명되었지만, 여전히 대중들 사이에서는 부정적인 시선이 적지 않았다. 당시 19세기 산업혁명의 발전과 함께 영국에서는 강아지들의 인위적인 품종 개량이 빈번하게 벌어지면서 사회적 논란을 불러왔다. 이는 문명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이 세상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만심에서 비롯됐다. 당시 한 만평에서는 허리가 악어처림 긴 닥스훈트나 하마의 얼굴을 한 불톡 등, 괴물처럼 개조된 개들이 등장한다. 사람의 입맛에 따라 생명체의 품종을 멋대로 개량하는 것을 풍자한 것이다.

비판론자들은 이런 현상이 인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발간된 <종의 기원>에 따르면 인간 역시 자연환경에 따라 진환해온 하나의 생물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해야했다. 다윈의 주장은 곧 인간이 더 이상 신이 만든 고귀한 존재가 아니라 품종개량도 가능한 동물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충격을 줬다.

실제로 우생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프랜시스 골턴처럼 진화론을 왜곡하여 '인간을 품종개량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등장했다. 영국의 유전학자이자 기상학자였던 골턴은 인종차별주의자이기도 했다.

그가 만들어낸 우생학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가난, 인종, 범죄, 장애 등을 차별하고 제거해야할 대상으로 여겼다. 이는 다윈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다윈은 생전 우생학에 대하여 "허황된 계획"이라고 비판했지만, 1882년 그가 사망한 이후 오히려 우생학은 점차 자리를 잡고 학문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이르렀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우생학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사회 분위기였다. 19세기말 영국은 빈부격차와 인종차별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면서 통제방법으로 우생학이 대두되기도 했다.

우생학은 영국외에도 세계 곳곳으로 확산됐다. 특히 미국은 19세기 남북전쟁과 경기침체 등으로 큰 혼란을 겪으며 우생학적 관점으로 사회 현상을 해석하는 주장들이 잇달아 등장했고, 영국보다도 더 우생학이 유행하기에 이른다.

1874년 미국의 사회학자 리처드 덕데일은 '애더 주크' 사건을 통해 주크가라는 가문에서 약 69%의 구성원이 범죄자였다는 연구를 통해 우생학적 관점에서 범죄자의 유전성을 주장하여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미국은 경제-사회적 문제를 통제할 강력한 사상이 필요했고, 범죄자를 통제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우생학이 대두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사이비 우생학 집단에 이어 인위적으로 유전자를 결합한 아기 58명을 만들어내는 충격적인 사건도 있었다.
 
록펠러, 카네기, JP 모건가 등 미국의 여러 유력 명문가와 자본가들이 우생학 연구의 후원자로 나서기도 했다. 이는 우수한 유전자에 따라 건강한 노동자가 많이 생산할수록 기업가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이나 당대의 저명한 정치인, 학자들도 다수가 우생학을 지지했던 경력이 있었다. 사회운동가로 유명한 헬렌 켈러는 한때 우생학을 지지했으나 철회한 이후로는 인권운동에 더욱 매진했다.
 
그나마 캠페인에 그친 영국에 비하여, 미국은 우생학을 법제화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이루어졌다. 유전자 우열을 바탕으로 한 혼인금지법, 이민제한법 등 현대 기준으로 반인권적인 법안이 잇달아 제정됐다. 또한 우생학계에서는 시민 참여를 유도하는 건강한 가족경진대회, 지능을 파악하는 IQ테스트, 우량아 선발대회 등을 통하여 우생학의 정당성을 알리는 '문화 선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사회적 기준 미달자로 분류된 이들에게 강제로 불임수술을 단행하여 생식능력을 제거하는 악법인 '단종법'이었다. 성범죄자와 성매매 여성에서 강력범죄자, 범죄자, 심지어는 지역에 따라 흑인과 아메리카 원주민까지 대상으로 포함된 지역도 있었다. 1907년 인디애나에서 첫 시행된 단종법은 1935년에는 무려 전국 28개주에 걸쳐 확산되기에 이른다.

특히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임에도 오히려 정신이상자로 몰려 딸을 빼앗기고, 강제 불임수술까지 받게 된 '캐리 벅 사건'은 미국 사법 역사상 최악의 판결이자 단종법이 낳은 대표적인 비극으로 지금까지 회자된다. 당시 캐리 벅을 비롯하여 수십만명에 이르는 여성들은 단종법으로 원치않는 불임수술을 받아야했다. 어쩌면 가장 반인권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법률을 근간으로 한 사건이, 하필 바로 자유민주주의의 상징을 자부하는 미국에서 일어난 실화라는 것은 가장 아이러니하다.
 
이처럼 한때 미국에서 엄청난 대중적 성공을 거둔 우생학은 1930년대부터 서서히 쇠톼하기 시작했다. 경제대공황 시대를 거치며 미국인들은 '사회적 위기는 공동의 운명'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고, 인간에게는 생물학적 차이보다 사회적 환경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깨닫게 됐다.
 
우생학의 마지막 유행과 몰락은 독일에서 이루어졌다. 아돌프 히틀러가 이끈 나치 독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우생학적 인긴관을 바탕으로, 인위적인 인종교배로 우월한 혈통을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히틀러의 측근이었던 '악마의 의사' 요제프 맹겔레는 완벽한 인간을 만들기 위하여 20여 개월 동안 약 1600쌍의 쌍둥이로 인체실험을 자행했다. 이는 나치가 자행한 잔혹한 인종청소인 홀로코스트 대학살로까지 이어졌다. 인류는 우생학을 선전도구를 삼은 나치의 만행을 통하여 우생학의 실체를 뼈저리게 깨달았고, 20세기 중반 이후 우생학은 사실상 폐기수순을 밟았다.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꽃피우고 독일에서 최악의 결론을 맞게된 우생학은 수많은 무고한 희생을 치르고나서야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1950년대에 이르면 DNA 이중 나선구조의 발견으로 '유전형질은 스스로 발현되는 것이 아닌 외부 요인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증명됐다. 유전학 발달의 초기에 유행했던 우생학은, 유전학이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이비 과학으로 드러나며 무너지게 된 것이다. 1974년 미국에서 단종법이 완전 폐지된 것은 우생학의 대중적 성공이 막을 내린 상징적인 사건으로 여겨진다.
 
우생학의 가장 큰 해악은 인간의 우열을 따져서 등급화할 수 있다는 비윤리적인 사고방식에 있다. 그렇다면 우생학은 지금 인류 역사에서 완벽하게 사라졌다고 볼 수 있을까. 우생학이라는 단어 자체는 사라졌어도, 능력에 따라 줄을 세우는 만능주의나, 경제저 격차에 따라 인간을 분류하는 금수저-흙수저론 등은 여전히 우생학적 세계관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는 현상들이다. 인간의 우열을 나누어 줄을 세우려는 위험한 사고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역사의 교훈을 통하여 경계를 잊지말아야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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