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하면 정(情), 아니던가. 한때 인터넷에서 화제였던 이른바 '스웨덴 게이트', 스웨덴에서는 식사 때 손님에게 밥을 주지 않고 따로 방에서 기다리게 한다는 이야기에 한국인이 유독 분노한 데 이유가 있다. 식당에서 "휴지 한 장만" 달라고 하여도 정 없다며 여러 장 뽑아 건네는 곳이 한국인데 손님에게 밥 한 끼 안 주고 내치는 건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정(情)의 민족에겐 현관조차 열어주지 않는 손님이 있다. 손님의 존재는 '불법'이라며 가짜 핑계로 찾아온 거 아니냐고 문전 박대한다. 30년 동안 약 7만 5000명이 찾아왔지만, 손님 대우 받은 건 오직 1200명뿐. 6월 20일은 세계 난민의 날, 이날만큼은 한국의 정(情)이 부끄럽다.
 
부끄러운 마음에 찾아간 '난민영화제'
 
 제 8회 난민영화제 공식 포스터

제 8회 난민영화제 공식 포스터 ⓒ KOREFF

 
6월 17일, 세계 난민의 날을 기념하여 난민인권네트워크와 유엔 난민기구 한국 대표부가 주최한 '제8회 난민영화제(KOREFF)'가 열렸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에서 난민이 발생하였고 2021년 여름에 입국한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지역 사회에 정착하고 있는 지금, 영화제는 'Faces of Us : 우리의 얼굴들'이란 부제로 찾아왔다.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불법 체류자'라는 표현을 쓰다가 '미등록 체류자'로 정정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던 적이 있다. 나를 향한 따가운 시선과 함께 찾아온 부끄러움, 이렇게 살다간 앞으로 만날 글로벌한 손님에게 실수하는 '어글리 코리안'이 될까 두려웠다. 게다가 영화제라면 두꺼운 책이나 지루한 다큐멘터리보다 난민에 대해 재밌게 알려주지 않을까?
 
 난민영화제 이벤트 부스

난민영화제 이벤트 부스 ⓒ 이진민

 
내 예상에 '난민영화제'는 적중하였다. 난민에 대한 궁금증과 차별을 해소하는 가이드북 '난민 이야기, 이렇게 해요!'는 영화제 곳곳에 배치하여 난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 상영관 옆에는 이벤트 부스가 기다렸는데 그들의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부터 함께 연대와 지지를 표현할 수 있는 행사까지 다양하였다.

난민 아동이 겪을 수 있는 차별적인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듣고 그들을 마주하였을 때 적절하게 행동할 수 있는 지침이 담긴 엽서를 받았다. 미얀마로 전달되는 구호 쿠키를 먹으며 그들에 대한 지지 메시지가 담긴 글을 SNS에 올렸다. 아프리카 드레드 헤어를 체험할 수 있는 부스에 참가자가 넘쳤고 그 덕에 영화관에 앉은 사람들의 뒷모습은 다채로웠다.
  
영화로 난민의 이야기, 현실은?
 
 다큐멘터리 '도도무' GV 현장

다큐멘터리 '도도무' GV 현장 ⓒ 이진민

 
상영 영화는 시리아 내전을 피해 한국에 온 '하림'이 겪은 문화적 갈등을 담은 영화 <아포리아>, 타국으로 입국하던 찰나에 쿠데타가 일어나 조국을 잃어버린 영화 <터미널>,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도도무>, 고등학생 난민의 적응 과정이 담긴 드라마 <도움의 색깔>까지. 시청 후에는 난민 당사자와 이들과 함께한 유엔난민기구 담당관, 변호사가 이야기 나누는 GV가 이어졌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곳곳에서 사람들의 탄식이 이어졌다. '불법 체류'는 말 그대로 누군가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 내전을 피해 한국으로 왔지만, '별일 아닌데 왜 도망 온 거냐'는 냉소가 기다리고 불법 노동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며 가족을 만날 기약 없는 미래만을 그리는 주인공의 모습에 덩달아 괴로웠다. 그럼에도 영화는 영화일 뿐, 난민 당사자가 직접 이야기한 현실은 더욱 냉혹하였다.

287일간 공항에 체류하였던 루렌도 난민 당사자는 "영화 <터미널>을 보니 많이 슬프지만, 현실은 영화보다 더 나쁘고 힘들었다"며 "공항에서 머물며 아팠던 아이들은 아직까지 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 난민 당사자이자 영화 <아포리아>의 배우 칼리드 난민 당사자는 "현재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들의 힘듦을 알기에 더욱 힘들다"고 답하였다.

다큐멘터리 <도도무>의 조감독인 난민 당사자 무삽은 "난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난민이 어떠한 이익을 줄지 고민한다. 이제는 힘든 사람에게 보호가 필요하다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의 말처럼 더 이상 난민을 향한 선 긋기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연대가 필요한 순간이다.
 
이제는 한국의 정을 발휘할 시간

한국이 언제쯤 난민을 환대할 수 있을까, 이런 막막한 생각이 들다가도 영화제에서 만난 사람들을 생각하면 기운이 난다. GV 때 영화 질문이 혹여 난민 당사자에게 트라우마가 될까 염려하던 패널, 난민 당사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더욱 크게 박수를 보낸 시민들. 그리고 벌써 8회씩이나 영화제가 계속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 이름 모를 사람들까지.

난민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에 한 아이가 또박또박한 글씨로 "난민아, 너를 공감할게"라고 적었다. 아이의 말처럼 우리는 난민에게 공감해야 한다. 같은 민족에게만 향하던 정(情)을 먼 길에서 온 손님에게도 나눠야 한다. 한국이 버선발로 난민을 마주하는 그날을 위해 함께하겠다.
난민영화제 난민 영화제 KORE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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