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04 06:52최종 업데이트 23.07.04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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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노인이나 치매 어르신들의 정서와 건강을 살펴주는 인공지능 로봇 효돌 ⓒ (주)효돌

 
2023년 상반기 화두는 단연코 유명 화가의 화풍을 흉내내어 그림까지 그린다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놀라운 능력이었다. 특정 단어나 주제에 관해 질문을 하면 답을 찾아줄 뿐만 아니라 토론 상대도 되어주는 챗GPT는 인간의 생산성을 끌어 올린다.

최근 이스라엘의 한 대학에서 '감정 인식 평가에서 인간을 능가하는 챗GPT'라는 보고서가 나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챗GPT가 심지어 인간 평균 수준보다 사람들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하고 표현한다고 한다. 섬세한 동작이 가능한 로봇을 개발하더라도 사람의 욕구를 파악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없다면, '돌봄'만큼은 언제까지고 사람의 일자리로 남을 거라 예측했던 생각을 되짚어 보게 되었다.


로봇과 인공지능의 만남으로 돌봄서비스 산업과 돌봄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가 달라질 것은 자명한 듯 보인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어떻게' 일자리와 일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지 불확실하듯이, 돌봄 영역에서 인공지능이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도 불확실하다.

인공지능은 '돌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몇 해 전부터 지자체와 손을 잡은 통신사들은 취약계층 독거노인이나 치매노인에게 인공지능 스피커 기반 '효도 로봇'을 제공하는 사업을 실시해 왔다. 반려 로봇이나 돌봄 로봇이라고도 하는 이 기기는 어린아이 형상을 하고 독거노인이나 치매 어르신들의 정서와 건강을 살핀다. 주기적으로 식사, 수면, 복약 상태 등을 확인할 뿐 아니라 손주처럼 노래도 불러주고 말도 걸어줘 우울증 예방과 정서 안정에 기여한다고 한다.

지자체들은 독거노인과 치매노인 관리 위주로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지역사회 통합돌봄(커뮤니티케어) 사업으로 앞다퉈 확장 추진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가정 내 치매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돌봄 부담 경감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치매환자는 관리가 허술한 틈을 타서 집이나 관리되고 있는 공간을 벗어나서 실종되거나 위험한 상황에 빠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거노인이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되자 인공지능이 주민센터 담당자에게 신호를 보내 생명을 구했다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사례를 보며 인공지능이 가족의 돌봄 부담을 완화하고 돌봄의 사각지대를 메울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된다.

지역사회 통합돌봄으로 추진되고 있는 노인돌봄에 이러한 종류의 인공지능은 앞으로 더 큰 역할을 떠맡게 될 듯하다. 커뮤니티케어는 돌봄이 필요한 주민이 집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주거, 보건·의료, 요양, 돌봄 등 필요한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연계하는 지역 주도형 사회서비스 정책이다. 다시 말해, 어르신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과 같은 시설 입소를 최대한 늦추고 오래 집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다.

노인돌봄 정책이 가급적 살던 동네와 집에서 생활하고자 하는 어르신들의 소망에 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집이라는 공간이 돌봄의 주된 장소가 되면 어쩔 수 없이 시설에 입소하는 경우보다, 가족이 더 돌봄에 참여하는 부담을 지게 되리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과연 인공지능은 커뮤니티케어가 돌봄을 다시 가족의 부담으로 떠넘기지 않도록 도울 것인가. 아니면 하루 3시간 받던 방문요양 서비스 시간을 더 줄이는 방식으로 사용될 것인가.

사람이 싼가? 돌봄 로봇이 싼가?
 

10년째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환자를 돌보는 간병 로봇을 주인공으로 한 SF영화 <간호중>의 한 장면 ⓒ 수필름

 
지난 6월 22일 열린 한 포럼에서 곽재식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는 노인돌봄 수요를 인공지능을 접목한 로봇 기술이 충족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그는 요양보호사 일을 대신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가진 강점은 '감정이 없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돌봄을 받을 때 인격을 가진 요양보호사들의 마음을 살펴야 하는 부담이 있었는데, 감정을 헤아릴 필요가 없는 인공지능의 돌봄서비스를 받을 때는 미안함이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과연 그럴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평균적인 인간보다 내 감정을 더 잘 파악하고 소통한다는 '간호중' 같은 간병로봇에게 감정 없이 대하는 것이 가능할까.

어떤 돌봄 기술이든 상용화하려면 장기요양보험에 수가로 반영해야 한다. 돈 나올 곳이 없으면 기술은 개발, 확산되지 않는다. 돌봄 로봇이 사람을 대신할 수 있다면 결국은 사람이 싼가, 돌봄 로봇이 싼가의 문제이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돌봄 로봇을 제조하고 유지하는 비용이 수가로 감당할 수준이 아니라면, 여전히 노인돌봄의 표준은 인간 요양보호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간 요양보호사의 근로조건은 매우 열악하다. 인공지능 돌봄 로봇이 일반화할 날이 머지않은 지금도 대부분의 요양시설에서는 요양보호사의 돌봄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한 초급 수준의 자동화조차 도입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침대의 각도나 높낮이를 전동으로 조절하는 침대조차 없어 요양보호사들이 손으로 직접 핸들을 돌려 조절해야 하는 형편이다. 전동 침대에 들이는 비용도 지불하기 어려운데 인공지능 돌봄 로봇 상용화가 가능할까.

인공지능 돌봄 로봇을 상용화하더라도 우려스러운 점이 있는데 바로 서비스의 계층적 양극화다. 일부 고소득 계층은 인간 요양보호사 또는 가족과 인공지능 돌봄 로봇을 결합한 최상의 서비스를 이용하게 될 것이고, 어느 정도 구매력 있는 중산층 이상은 고급 사양을 탑재한 돌봄 로봇을 구매하여 감정까지 보살핌을 받겠지만, 저소득층은 기본적인 일상 활동을 지원하는 보급형 로봇만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뿐만 아니다. 우울하지만 <간호중>에서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는 인공지능 돌봄 로봇의 돌봄 세계에는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희롱, 폭력, 의사의 의료행위와 돌봄노동의 위계, 빈부 격차에 따른 돌봄 격차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새로운 기술이 항상 인간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적절한 정책 없이 무방비 상태로 새 기술을 받아들여야 할 때 더욱 그랬다.
 

윤자영 / 충남대 경제학과 부교수(소셜 코리아 운영위원) ⓒ 윤자영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부교수는 노동경제학과 젠더경제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소셜 코리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관심 분야는 시장과 비시장 영역의 돌봄과 젠더·계층·세대 질서 및 불평등의 상호관계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최저임금위원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사회보장위원회 등에서 공익위원과 민간위원으로 참여했고, 학계에서는 한국노동경제학회 이사와 한국사회정책학회 편집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젠더와 기본소득, 노동시장 성차별과 불평등, 돌봄서비스 일자리 근로조건 등 논문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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