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20 04:53최종 업데이트 23.07.20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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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 부둣가 풍경 ⓒ 알티비피얼라이언스

   
부산 영도는 여의도 너비의 세 배에 달하는 제법 큰 섬이다. 1912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조선소인 '다나카조선철공소'가 이곳에 들어선 뒤로 영도에선 늘 배가 만들어졌다. 한때는 부산 시내를 가로지르던 트램이 영도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1989년 한진그룹이 이곳 조선소를 사들인 뒤로 20년 동안 늘 흑자였다. 조선기자재 납품업체와 하청업체까지 2만 명이 영도에서 배 만드는 일에 매달렸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가 거제에 짓기 시작한 조선소들보다 규모는 한참 작았지만 LNG운반선과 석유시추선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건조한 곳도 바로 영도였다.


하지만 이제 영도구는 부산에서 인구가 가장 빨리 줄고 있는 자치구다. 1984년 22만 명을 넘던 인구는 어느덧 절반으로 줄었다. 지난 10년 사이에만 4분의 1 가까이가 이 섬을 떠났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청년들이 떠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도구의 청년 인구는 해마다 평균 6.3%씩 감소해 왔는데, 이는 전체 인구 감소 비율인 2.6%의 3배에 달한다. 

활기 잃은 도시에 다시 사람을 불러 모으는 실험
 

끄티봉래 ⓒ 알티비피얼라이언스

   
이런 영도에 최근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려는 새로운 실험이 닻을 올렸다. '일하면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내세우는 '끄티봉래'가 문을 연 것. 바다 건너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는 영도 부둣가에 자리한 끄티봉래는 지하 1층을 포함 모두 9개 층으로 이뤄져 있고, 연면적이 2807㎡에 달한다. 이 대담한 실험에 나선 이는 김철우 알티비피 얼라이언스(RTBP Alliance) 대표다.
   
"이곳은 바다에 접한 공업지역이라 업무와 주거 그리고 상업이 교차하는 곳이에요. 직주락이 어우러질 수 있는 좋은 베이스캠프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영도를 찾아온 이들이 이곳 끄티봉래의 공유 공간이나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자연스럽게 만나 협업을 하는 거죠. 마음이 맞으면 팀이 만들어지고 무언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해보는 거예요.

그러려면 이런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어울리는 사람들이 많이 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로 돈도 벌고 여가도 선택하는 사람들, 취향을 일로 만드는 사람들이랄까요. 그런 사람들에겐 같은 공간에서 사람 만나는 게 아주 흥미롭거든요. 그래서 끄티봉래 안에서도 가능하면 다양한 콘텐츠가 뒤섞이는 융합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일하고 놀고 머무는 여러 활동들이 이뤄지는 거죠."

     

끄티봉래 내부 ⓒ 알티비피얼라이언스

 
알티비피 얼라이언스가 하는 업의 핵심에는 직, 그러니까 일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끄티봉래도 여러 가지 형태의 일을 하기에 좋은 공간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4층부터는 층마다 워케이션, 인큐베이팅 그리고 리빙랩(사회 문제 해결 실험실) 역할을 할 스튜디오 등이 들어간다.   

1층에서 3층까지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교류할 수 있는 카페와 잡화점, 와인숍과 식물상점, 공연장과 식당 등 여러 상업공간들이 뒤섞이게 된다.
 

끄티봉래 1층 '림림' 풍경 ⓒ 알티비피얼라이언스

 

끄티봉래 식물상점 ⓒ 알티비피얼라이언스

         
"끄티봉래가 모두 채워지면 다양한 성격을 가진 100여 개의 팀들이 이곳을 근거지로 각자의 방식대로 협업을 해나가게 되리라 기대하고 있어요. 1층 카페 림림을 시작으로 조금씩 문을 열어가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목표의 절반 정도를 이뤘다고 생각해요."

10년 준비하고 10년 매달려 이룬 결실

김 대표는 부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이곳에서 다녔다. 영도는 아버지의 오랜 일터였다. 젊은 시절 화물선 기관사로 일했던 그의 아버지도 더는 배를 타지 않게 되면서부터 깡깡이 마을로 알려진 영도 대평동 부둣가에서 선용품(배에서 쓰는 물건)을 팔았다. 부두를 따라 끝없이 늘어선 크고 작은 배들 사이로 날마다 망치질 소리와 용접 불꽃이 끊이지 않던 시절이었다.

김 대표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처럼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해 영화연출을 공부했다. 그러다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2002년 스물아홉 살에 영도로 돌아왔다. 그때만 해도 영도는 조선업 활황으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몇 년 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언제까지고 뜨겁게 타오를 것 같던 조선업의 불꽃도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배를 두드리던 망치 소리와 용접 불꽃이 그 길었던 세월만큼 늙어가는 사이 그 빈 자리를 메울 새로운 무언가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런 영도의 풍경이 김 대표의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여가 문화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일을 벌일 자본이나 네트워크가 없었으니까 일단 돈을 벌자고 마음먹었어요. 10년 동안 돈을 벌어서 여러 대안을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영도 부둣가 풍경 ⓒ 알티비피얼라이언스

 
그는 아버지 가게를 거들다 창업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2004년 선박 안전장비 디자인 회사를 세워 배에 들어갈 기자재와 해양장비를 개발했다. 다행히 조선업 호황으로 회사는 잘 됐고, 낮에는 일을 하면서도 저녁과 주말에는 사람을 찾아다닐 여유도 조금 생겼다. 그는 지금은 사라진 '바이널언더그라운드', '올모스트 페이머스' 같은 펍을 찾아가 예술가들을 사귀었다.

그리고 정말 10년쯤 지나 그동안 부지런히 모은 돈으로 법인을 세우고 오랫동안 품어온 꿈을 세상 밖으로 꺼내 보였다. 여가에 관심이 많았던 그가 가장 먼저 주목한 주제는 '일'이었다.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좋은 일을 만들지 못하면 여가도 주거도 어렵다고 생각해서다. 

"회사 이름에 알티비피(RTBP)를 넣은 건 부산항으로 돌아오란 뜻(Return to Busan Port)이에요. 부산 떠나서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했으면 이제 돌아와서 부산에서 다시 한번 뜻을 펼쳐달라는 제 바람을 담았죠. 혼자 할 수 없으니 연대하자는 뜻으로 얼라이언스를 붙였고요. 다 같이 모여서 우리가 바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 가보자는, 이름이 좀 어렵긴 하지만 미션처럼, 구호처럼 내걸었다고 할 수 있어요."
 

끄티봉래 주변에 모여있는 청년들 ⓒ 알티비피얼라이언스

   
회사를 세운 뒤 김 대표는 먼저 '플랫폼135'라는 이름의 공간을 열었다. 메이커 스페이스와 코워킹 스페이스를 합쳐 놓은 새로운 공간이었다. 부산항대교 오른편으로 길게 이어진 부두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둔 기자재 공단에 문을 닫는 공장들이 늘어가던 무렵, 일감이 떨어진 어느 회사 건물 3층의 비어 있던 널찍한 사무실을 빌렸다. 김 대표는 이곳에 책상 4개를 놓고 엔지니어 한 명과 예술가 한 명을 섭외했다. 

"이 건물엔 기계도 있고 창고도 있으니까 뭔가를 만들어 보고는 싶은데 공간이나 설비가 없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이나 나이 들어 은퇴한 기술자들이 다 같이 모여 여기서 머리 맞대고 뭔가 만들어 보자고... 메이커들을 위한 코워킹 스페이스였던 셈이에요."

첫 프로젝트는 빈집 옥상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고 여기서 얻은 전기로 수경 농장을 만드는 실험인 루팜(ROOFARM)이었다. 크기를 늘리고 줄일 수 있는 전동 레저용 서핑보드도 입주팀과 함께 개발했다. 그 뒤로도 새로운 일을 해보려는 이들이 알음알음 소개를 받아 플랫폼135를 찾아왔다. 조선소에서 퇴직한 기술자를 비롯해 많을 때는 플랫폼135에 사업자를 낸 사람만 10명이었다.

그가 일 다음으로 관심을 둔 주제는 '여가'였다. 그는 여가의 경험이 자극과 영감을 줘서 다음 단계의 일로 연결되길 바랐다. 빈 공장을 찾아다니다 플랫폼135 건너편 부둣가에 비어있던 널찍한 물류창고를 찾았고, 그곳을 '끄티(GGTI)'라는 문화공간으로 되살렸다.
 

끄티에서 공연하는 모습 ⓒ 알티비피얼라이언스

 
바다가 앞마당처럼 펼쳐진 이곳에서 문화 공연과 축제가 밤늦도록 이어지곤 했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볼거리들로 문을 연 지 1년 만에 서른 번이 넘는 공연과 전시로 채워졌고, 많을 땐 100여 명이 모여 불빛 하나 없던 이곳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유휴공간을 어떻게 쓸 수 있을지를 실험해 본 프로토타입이라고 생각해요. 또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보는 이들의 욕구는 무엇이었는지도 확인해 보는 기회였어요." 

46억 원이라는 거액의 투자

김 대표는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투자를 염두에 두면서 틈나는 대로 금융과 재무를 공부해 왔고, 투자심사역 교육도 받았다. 회사에 따로 재무 담당 최고책임자(CFO)를 두지 않고도 자금 흐름을 관리하면서 재무적 의사 결정과 투자 유치를 무리 없이 해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노력 끝에 알티비피 얼라이언스는 2019년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로부터 20억 원을 투자받은 데 이어 다시 2021년 4월 더웰스인베스트먼트, 케이브릿지인베스트먼트, 디쓰리쥬빌리 등으로부터 26억 원 규모의 투자(시리스A)를 받았다.
 

김철우 알티비피 얼라이언스 대표 ⓒ 알티비피얼라이언스

 
그는 처음부터 법인을 세워 일을 시작했다. 엔지니어링, 연구·개발(R&D)을 하면서부터 기술과 제조업 분야에서 규모를 키워가는 팀들을 지켜봤고, 이른바 로컬씬에서도 비슷한 경로로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른바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일에 뛰어드는 출발점은 주로 자기 안의 애착과 의욕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자기를 객관화하기가 힘들어요. 하지만 법인은 완전히 다른 사회적 인격체예요. 만약 투자 유치와 스케일업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이 둘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자신의 업을 객관화할 수 있어야 오히려 설립자의 사업 방향을 견고히 지켜갈 수 있어요.

투자를 받는다는 건 설립자 말고도 이 일에 동의하는 다른 누군가(주주)가 함께하는 거고, 따라서 설립자의 의사결정권한이 희석되는 거에요. 저는 처음부터 지속가능한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방향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법인을 만들었고, 제 업의 본질을 정확히 규정하고 가이드를 만들었어요. 그중 하나가 오프라인 공간의 중요도를 최우선 순위로 두는 거였어요. 성장 속도가 늦더라도 자산을 취득하는 쪽을 선택한 거죠. 공간은 개별 프로그램이나 아이템보다는 무거워서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요." 
 

끄티봉래 ⓒ 알티비피얼라이언스

 
그는 최근 로컬 투자가 늘어나려는 움직임이 반가우면서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로컬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로컬 기업이나 팀들은 지금까지 중소벤처기업부가 가지고 있던 분류체계로 규정할 순 없어요. 규모로 성장 단계를 나누고 지원하는 것도 맞지 않고요. 제가 하는 일만 봐도 아주 복합적이고 다양한 영역의 일들이 서로 연결돼있는 게 특징이에요. 

그러다 보니 투자자들에게 자신의 업을 설명하기가 매우 힘들어요. '그래서 대체 뭘 하려는 건데', '어떻게 돈을 벌려고 하는 건데'라고 물으면 답하기가 곤란하죠."


또 투자하는 쪽이 가진 오해도 꼬집었는데, 정보기술(IT)이나 제조기업들처럼 로컬 팀들도 투자를 받고 엑셀러레이팅을 거치면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릴 수 있다고 기대해선 안 된다는 것. 물론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로컬 팀들은 태생도, 팀의 문화도 그다지 성과지향적이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어떤 시장을 무대로 할지, 어떻게 스케일업 해나갈지를 정해준다고 해서 그에 맞춰서 업의 구조와 내용을 바꿀 수 있는 팀이 많지 않아요. 또 그렇게 한다고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이런 점들을 깊이 이해하는 액셀러레이터, 심사역들이 생겨나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투자하는 쪽도 그런 측면을 이해해야 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어요.

투자는 회수를 목적으로 해요. 결국은 속도와 시간의 문제인데, 성장 속도와 회수 시점을 정할 때 빠른 속도보다는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봐요. 성장 곡선은 완만해도 사회적 가치 측면에서 긍정적 성과를 내고 공감대가 만들어지면 IT기업보다 만들어 내는 부가가치의 총합이 더 커질 수 있는 기회도 있어요. 그러니까 고위험-고수익 영역보다 적정한 수준의 이익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거기에 지역의 구심점이 되는 사회적 역할과 브랜드 가치를 더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해요."


투자사 요구만 좇다 본질 잃어선 안 돼

로컬 팀들에게 당부도 잊지 않았다. 투자사들의 요구만 좇다 보면 업의 본질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 아예 사업 방향을 틀거나 스핀오프(회사 분할)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절충점을 찾아서 투자 규모나 조건 등을 완화하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투자사들도 결국 펀드 출자자(LP) 돈을 받아 투자를 하는 거라 손실을 혼자 감수할 수 없어요. 그렇다고 LP들이 로컬을 이해하길 바랄 수도 없고. 또 조건이 붙으니 투자사들도 어쩔 수 없죠. 그래서 절충점이 필요해요.

급격한 스케일업을 요구하거나 시장구조를 단순화하면서 특정한 영역에만 집중하라고 하면 더 이상 협력을 이어가기가 어려워요.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업의 본질을 지키는 문제니까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도 없어요. 아직은 제대로 된 성공 사례도 실패 사례도 없죠. 그래서 투자를 하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 다 깊이 생각해 봐야 해요."

 

끄티봉래 건설 과정에서 나온 옛 도기 조각들 ⓒ 알티비피얼라이언스

 
그는 그곳이 어디든 지역이 가진 특징을 잘 살려야 한다고 했다. 지금 알티비피 얼라이언스가 하는 것처럼 일과 여가 그리고 주거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가운데, 동네 어디를 가든 재미나고 유쾌하고 매력적인 사람과 제품, 서비스가 넘쳐났으면 한다는 바람도 함께. 

"지역의 역사와 문화 자원을 모으고 기록해야 해요. 유행을 좇아 이것저것 손대기보다는 처음부터 체계를 세워서 꾸준히 모아가는 게 중요하죠. 그렇게 정체성을 세우고 그걸 흐트러트리지 않을 수 있는 형태와 구조를 짰어요. 비즈니스모델보다는 업의 틀을 짜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부산 영도를 상징하는 벽화 '우리 모두의 어머니' ⓒ 윤찬영

      
그는 영도의 다양한 이야기와 사람, 공간과 역사를 꾸준히 데이터베이스로 축적해 왔다. 그는 그것들을 '필요할 때마다 꺼내쓸 수 있는 든든한 서재'라고 했다. 또 초기 국면에선 영업이익과 같은 수익 측면의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려 하기보다 자산가치와 브랜드가치, 사회적 가치 같은 것들을 먼저 만들어 두면 시간이 흐르고 여러 변수가 생겨도 업의 본질을 견고하게 지키면서 성장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멀리서 본 끄티봉래 ⓒ 알티비피얼라이언스

 
이제 막 출항을 시작한 끄티봉래는 앞으로 영도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 놓을까. 한때 망치질 소리와 용접 불꽃이 끊이지 않던 영도에 다시금 역동적인 창조의 에너지가 넘실거리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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