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11 11:57최종 업데이트 23.09.11 11:57
  • 본문듣기
주산(주판)의 마지막 세대이자 컴맹 제1세대, 부모에게 복종한 마지막 세대이자 아이에게 순종한 첫 세대, 부모를 부양했지만 부모로서 부양 못 받는 첫 세대, 뼈 빠지게 일하고 구조조정 된 세대인 베이비부머의 이야기를 전합니다.[기자말]

재취업에 뛰어든 베이비붐 세대 ⓒ 연합뉴스

 
어렸을 적 부모님과 밥을 먹으면 항상 궁금한 게 있었다. 어머니는 맹물에 아버지는 설탕물에 밥을 말아 드셨다. 이유를 물어봐도 "밥이 술술 들어가서 그렇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당시 별미였던 라면도 그랬다. 라면 3, 국수 7의 비율이었는데 당신들은 국수가 좋다면서 라면은 자식들에게만 줬다. 닭장에서 얻은 달걀도 자식들만 먹였다. 그때의 음식은 흑백 기억으로 체화돼 가끔 가슴 기억 속의 어둠을 끌어올린다. 가난이 낳은 결핍의 맛이었다. 


베이비붐 세대의 고난은 부모 세대의 가난을 빼닮았다. 서글픈 적통 계승이다. '인생 2모작'을 운운하지만 평탄한 1모작을 한 사람도 많지 않다. 결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일자리가 최고의 재테크'라는 말을 몰라서 준비를 안 한 게 아니다. 눈앞에 은퇴를 앞뒀거나 이미 은퇴한 세대들은 다시 인큐베이터 신세다. 공무원이나 교사, 공기업 직원 등 정년보장 직장이 아니라면 대다수는 준비 없이 정글 밖으로 밀려 나온다. 그리고 핀잔을 듣는다.

"현직에 있을 때 노후 준비 안 했어요? 그동안 손 놓고 있었나요?"

빈정대는 것처럼 들려 당황스러웠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미래를 꼼꼼하게 준비한 사람도 있겠지만, 미처 준비를 못한 이가 더 많다. 도저히 준비할 겨를이 없었다거나, 준비하고 싶었는데 엄두가 나지 않은 경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던 경우다.

얼떨결에 낸 사표, 작고 초라한 새가 됐다

지난 2017년 12월 어느 날, 출근할 때까진 나에게 아무 일이 없었다. 평상시대로 신문사 데스크 자리에 앉아 하루 스케줄을 정리했고, 밀려있는 업무를 좀 더 스마트하게 끝내려는 구체적인 실행계획까지 세웠다.

오전은 쏜살같았다. 주요 뉴스를 챙겼고, 지면구성도 마쳤다. 일찌감치 사설까지 써놓았다. 간만에 점심도 맛있었다. 27년째 이어져 온 평범한 일상이었고 특이한 징후는 없었다.

하지만 오후로 접어들며 사무실 공기가 바뀌었다. 시끌시끌했다.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문제의 진앙은 인사발령이었다. 누군가 귀띔했다.

"이쪽 사람을 빼서 저쪽으로 보내고, 저쪽 사람을 다른 쪽으로 보내는 과정에서 사달이 났나 봐요."

주변의 인사로 인해 생긴 잡음이었다. 나는 이쪽 편을 무시해도 욕을 먹고, 다른 편을 거들어도 욕을 먹는 '중간에 낀' 위치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지만 결심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 쪽을 택해도 상황이 악화될 게 분명했다. 실리보다는 명분을 택했다. 그렇게 긴 하루가 짧게 끝났다.

"나는 여기까지다. 나야 안녕 못하지만 모두 안녕해라."

사직서를 써서 책상 위에 놓고, 백팩에 짐을 꾸렸다.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회사를 나서기까지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종이 한 장으로 퇴직수속을 마친 셈이다.

사실 퇴직 이후는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 냉혹한 사회현실을 몰랐던 게 아니라 퇴직이라는 게 막연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그만둬야 할 사유가 생겼고 사표를 던졌을 뿐이다. 어쩌면 경력단절이 되지 않고 재취업에 쉽게 성공할 수 있다는 자만심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바깥세상으로 나오자 현실이 보였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기자로만 살아왔던 헛똑똑이였다. 기술도, 자격증도 없었고, 언론 이외의 이력도 없었다. 홀로 남겨진 늙은 새처럼 초라했고 박약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자격증이라도 하나 따놓을 걸, 뭐라도 하나 준비해놓을걸."

이후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찾는 이도 없었고, 찾아갈 이도 없었다. 살갑게 굴던 지인들의 전화도 끊겼다. 뜸하게 연락이 오는 것도 동정이나 연민처럼 느껴졌다. 자존감과 자괴감이 깊어지자 말수가 적어졌고, 차츰 사람이 싫어졌다. 

지난 2022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55∼64세 연령층(2021년 기준)의 주된 일자리 퇴직 연령은 평균 49.3세였다. 최근 10년간 평균 퇴직 연령 역시 약 49세였다. 최근 7년간의 추세를 보면 정년퇴직 비중은 낮아졌고, 권고사직 등 비자발적 조기퇴직 비중이 높아졌다. 기사에 나오는 사람이 멀리 있지 않았다. 딱, 나였다. 

점쟁이 말 믿었다가 큰코다쳤다
 

중장년일자리 희망센터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

 
100세 시대, 인생의 절반 지점에서 멈춰선 건 불행을 넘어 비극이다. 제 몸 하나 돌볼 겨를도 없이 부모 부양하고, 자식 건사해온 그 세월 속에서 틈새 찾기란 쉽지 않다. 노후 대비는 늙기 전에, 은퇴 전에 해야 한다는 사실은 비상식의 상식이다. 여러 자기계발서와 인생코치 컨설턴트 서적을 읽어본들 공자님 말씀뿐이다.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알고 있어도 못한다. 

우스갯소리지만 한때 어느 점쟁이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었다.

"당신은 나이 60세 되기 전에 경제적 부를 완성하니깐 노후에 여행이나 다니면서 편하게 살 겁니다. 무슨 얘긴 줄 아시죠? 한마디로 팔자 핀다는 말입니다. 너무 애쓰지도 말고, 힘쓰지 말고 사셔도 돼요."

그 말을 10년 넘게 믿었다. 뇌는 듣고 싶어 하는 말들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걸 알면서도 속았다. 뻔한 말을 던지는데, 듣는 사람은 끌리는 것에만 집중하는 까닭에 나머지는 허투루 듣는다. 그래서인지 지인들에게 "퇴직하면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쉴 것"이란 얘기를 종종 했다.

뒤늦게야 내가 틀렸다는 걸 알았다. 땅을 쳤다. 노후 준비는 예감, '재수떼기'가 아니다. 직종은 필요 없다. 직급도 상관없다. 심지어 대우(처우)도 크게 문제 되진 않는다. 어느 경영컨설턴트가 들려준 말이 맞았다.

"일의 연속성, 계속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면 됩니다. 그래야 경력단절이 안 돼요. 경제적 여건이 괜찮다면 봉사 개념의 경력연장도 방법입니다."

현재 또래의 지인들은 여전히 현역으로 열심히 살면서 노후를 대비하고 있다. 문과 출신 친구 네댓 명은 젊은 시절 자격증을 취득해 지금은 그 분야 베테랑이 됐다. 앞으로 10~20년은 거뜬해 보인다.

은퇴기에 가까운 사람들이 흔히 하는 넋두리가 있다.

"세월이 왜 이리 빠르지. 앞만 보고 달려왔더니 어느새 백발이야. 내 머리 위에 앉은 건 지나온 세월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의 무게야. 지금껏 고생했는데도 낙이 없어. 이렇게 사니 허무하단 생각밖엔 안 드네."

베이비붐 세대의 제1염원은 가난의 대물림을 끊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가르치려고 시간과 눈물을 투자했다. 고난을 자처하며 더 일하고 싶어 소리 내 울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준비된 자와 준비되지 않은 자로 양분됐다. "왜 노후준비를 안 했어요? 이럴 줄 몰랐어요?"라고 묻는 말에 항변하고 싶다.

"아름답고 멋진 노후? 먹고 사는 문제만 해도 벅찼는데 언제 준비하냐고? 누가 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한 줄 알아? 현역일 때 퇴직 후를 준비하라는 말, 은퇴 후 준비하면 개고생이라는 말, 나도 안다고 알아. 알아도 내 맘대로 안됐다고."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