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배구가 아시아선수권을 6위로 마감하며 아시안게임 전망을 어둡게 했다.

세자르 에르난데스 곤잘레스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6일(한국시각) 태국 나콘라차시마의 찻차이홀에서 열린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 5-6위 결정전에서 카자흐스탄에게 세트스코어 0-3(24-26, 23-25, 23-25)으로 패했다. 조별리그에서 베트남에게 덜미를 잡힌 한국은 8강리그에서 개최국 태국에게 패하며 4강 진출이 무산됐고 5-6위전에서도 카자흐스탄에게 무너지며 최종성적 6위를 기록했다.

세자르 감독이 대표팀을 맡은 이후 발리볼 네이션스리그에서 2년 연속 전패와 승점 0점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던 한국은 아시아 선수권대회에서도 베트남과 태국, 카자흐스탄에게 패했다. 이런 전력이라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더욱 큰 문제는 이번 아시아선수권의 부진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2023년 한국 여자배구가 처한 '현실'이라는 점이다.
 
 한국여자배구는 세자르 감독 부임 후 36경기에서 5승31패를 기록했다.

한국여자배구는 세자르 감독 부임 후 36경기에서 5승31패를 기록했다. ⓒ 아시아배구연맹

 
'배구여제' 중심으로 만든 두 번의 올림픽 4강

한국 여자배구가 아시아 선수권에서 4강에도 들지 못한 것은 지난 1975년 대회가 출범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한국 여자배구가 아시아 레벨의 대회에서 4강에 들지 못하고 탈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17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한국은 도하 아시안게임 8강에서 한 수 아래로 여겼던 태국에게 세트스코어 1-3으로 패하며 4강 진출에 실패했다.

태국은 이번 아시아선수권에서도 중국을 세트스코어 3-2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고 세계무대에서도 유럽의 강호들을 심심찮게 꺾는 세계배구의 복병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2006년 당시만 해도 태국 여자배구는 아직 극동아시아의 한·중·일 삼국과 비교하기엔 전력이 떨어지는 팀이었다. 따라서 최소 메달권, 최대 금메달까지 기대했던 한국이 태국에게 덜미를 잡힌 것은 큰 이변이자 한국에게는 '수모'에 가까운 결과였다.

 한국은 도하아시안게임에서 김연경(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을 비롯해 황연주(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정대영(GS칼텍스 KIXX), 김세영, 한유미(국가대표 코치), 한송이(정관장 레드스파크스) 등 최정예 멤버가 출전하고도 8강 탈락이라는 '참사'를 경험했다. 한국 여자배구는 이어진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본선진출에 실패하면서 지금 못지 않게 배구팬들과 언론으로부터 많은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주춤하던 한국 여자배구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살아나기 시작했고 이어진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 이후 36년 만에 4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올렸다. 김연경은 2009년 해외 진출 후 일본과 튀르키예, 중국리그를 거치며 세계 최고의 아웃사이드 히터로 명성을 떨쳤고 2005년에 출범한 V리그도 점점 자리를 잡으며 여자배구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한국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과 2016년 리우올림픽 8강으로 꾸준히 국제무대에서 성과를 올렸다. 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는 이재영과 이다영(볼레로 르 꺄네) 자매가 학교폭력사건에 연루되면서 대표팀에서 제외되는 악재가 있었지만 나머지 선수들이 하나로 뭉치며 런던 올림픽에 이어 또 한 번 4강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했다. 그렇게 여자배구는 한국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단체 구기종목이 됐다.

아시아 4강도 쉽지 않은 세자르호의 현실
 
 한국 여자배구는 이제 아시아 4강도 쉽지 않은 현실을 받아 들여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한국 여자배구는 이제 아시아 4강도 쉽지 않은 현실을 받아 들여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 아시아배구연맹

 
사실 도쿄올림픽이 끝난 후 여자배구 대표팀의 전력약화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대표팀의 주장이자 에이스 김연경을 비롯해 중앙을 든든하게 지키던 양효진(현대건설)과 김수지(흥국생명)가 동시에 대표팀 생활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도쿄올림픽 4강을 이끌었던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폴란드 대표팀 감독)마저 재계약을 고사하면서 대표팀은 완전히 판을 새로 짜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국은 라바리니 감독을 보좌했던 세자르 코치에게 대표팀을 맡겼지만 세자르 감독은 부임 후 2년 동안 VNL 대회 24연패와 세계선수권대회 조별리그 탈락, 아시아선수권대회 8강 탈락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세자르 감독 부임 후 한국 여자배구의 성적은 5승 31패에 불과하다. 5승 중 4승은 대만과 우즈베키스탄, 호주, 인도 등 아시아 레벨에서도 약체들에게 따낸 승리였다(대만을 상대로는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간신히 승리했다).

혹자는 유럽팀 코치와 감독, 그리고 한국의 대표팀 감독까지 겸임하고 있는 세자르 감독의 역량과 자세를 비판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1년 내내 대표팀과 소속팀을 쉼 없이 오가며 체계적인 훈련을 받고 호흡을 맞출 기회조차 부족한 선수들의 바쁜 일정을 지적하기도 했다. 모두 일리가 있는 지적과 비판으로 이는 V리그를 주관하는 한국배구연맹과 대표팀 일정을 짜는 대한배구협회가 머리를 맞대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김연경을 비롯한 주력 선수들이 빠진 한국 선수들의 '실력'이다. 세계의 강호들을 차례로 상대해야 했던 VNL에서의 고전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아시아선수권에서 베트남과 카자흐스탄에게 패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불과 2년 전 세계 4강에 올랐던 한국이 중국과 일본, 태국이 3강을 형성하고 있는 아시아 여자배구의 강호 대열에서 이탈한 것은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VNL과 아시아선수권을 끝낸 여자배구 대표팀은 팀을 재정비할 시간을 가질 새도 없이 곧바로 오는 23일 개막하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은 최근 세 번의 아시안게임에서 각각 은메달, 금메달,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올해 보여준 전력으로는 한국 여자배구가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인정하긴 싫지만 이젠 아시아 4위도 힘든 게 오늘날 한국 여자배구가 처한 슬픈 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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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 아시아선수권 세자르호 아시아 6위 카자흐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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