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08 17:47최종 업데이트 23.10.08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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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결혼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천주교 신자인 나는 남편과 '혼배(혼인)성사'를 보고 싶었고, 그리하여 종교가 없었던 남편은 급히 세례를 받아야 했다. 약혼녀의 소망 때문이긴 했지만 짧은 기간에 교리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역시 천주교 신자였던 시어머니는 얼마나 흡족해하셨던가.

어머니는 아들의 대부(세례받을 때, 신앙의 증인으로 세우는 종교상의 남자 후견인)가 되어주실 분을 직접 찾겠다며 나섰고, 결국 성당에서 많은 존경을 받고 계신 분이 남편의 대부님이 되어주셨다.

웃지 못할 대부님 섭외의 속사정

행운이었다. 그분을 대부로 모시고 싶어하는 신자들이 너무 많아서, 사실 더 이상 대부의 역할을 맡지 않으신다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님의 간절한 간청에 본인의 결심을 깨신 듯했다.


그런데 결심을 깨게 된 자세한 이유를 우리는 남편의 세례 축하연에서 바로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대부님께 "우리 아들이 참 많이 부족하지만, 세례를 이번에 받게 되었습니다. 꼭 대부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라고 거듭 부탁하셨다고 한다. 바로 그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 어머니는 겸손을 담아 아들을 '부족하다'라고 말씀을 하셨지만, 마음이 약했던 대부님은 다르게 알아듣고 허락하신 것이다.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 씁쓸하지만, 우리는 흔히 지적 장애인을 두고 그렇게 연상하곤 한다. 그런데 대부님이 결정적으로 간과하신 것이 있다. 아마 그랬기에 착각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바로 지적 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잘 만나기 어렵다는 점. 그들이 사회 속에서 자연스레 연애하고, 세례를 받기 위해 교리 공부를 하고, 결혼식까지 올리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굉장히 드문 일이라는 사실 말이다. 지적 장애인들은 보통, 가정 안이나 사회 밖 '시설'에서 격리된 채 일생을 보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바보들의 배> 패널에 유채, 1490~1500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 ⓒ 헤이로니무스 보스

 
슬프게도, 격리의 역사는 길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책 <광기의 역사>에서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도 바보들은 배에 태워져 도시에서 추방당했다고 적었다. 정상과 비정상을 구별하여 비정상이라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독일에서는 바보(Narr, Narrheit)라고 불렀는데, 당시의 바보는 지적 장애인뿐만 아니라 광인, 술주정뱅이나 범죄자들까지도 포함되는 개념이었다.

격리와 분리의 대상이 된 이들은 폭력적으로 유랑의 삶으로 내몰렸다. 유럽에서 강이나 바다를 낀 곳이라면, 바보 배가 정박한 적이 없는 도시는 거의 없었을 정도였다. 목적지도 없이 정처 없이 떠돌다가 배 안에서 죽어도 어쩔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 역시 신의 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바보'에게 왜 이토록 가혹했을까.

네덜란드의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1516)가 15세기 말에 그린 <바보 배>를 통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바보 배>는 중세 독일의 인문주의자 제바스티안 브란트(Sebastian Brant)의 1494년 풍자시 제목이기도 하다. 112명의 바보를 등장시켜 중세 후기의 도덕적 해이를 풍자한 브란트의 시는 당시 여러 나라 글로 옮겨지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보스 역시 브란트의 시를 읽었을 것이다. 그는 브란트의 <바보 배>를 실마리로 삼아, 바보 배를 탄 사람들의 면면을 그림으로 묘사했다.

작품을 보자. 돛대에 그리스도교의 십자가 대신 이슬람교를 상징하는 초승달이 그려진 깃발을 매단 배가 출항한다. 이교도의 배를 탄 사람들은 다름 아닌 수녀와 수사. 그들은 기도하는 대신 악기를 연주하며 목청껏 노래만 부를 뿐이다.

배 앞쪽 농민은 얼마나 술을 많이 마셨는지 토악질을 하는데, 물속 사내는 술을 더 따라 달라고 잔을 들고 있다. 한마디로 난장판이다. 즉 보스가 말하는 '바보'란 이성이 결여된 사람이다. 중세 시대에 이성은 기독교의 신이 준 지혜를 뜻했기에, <바보 배>에서 말하는 바보는 바로 이 지혜가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셈이다.

그렇기에 바보는 위험한 존재였다. 사람들은 아무리 벌을 줘도 고쳐지지 않는 인지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이들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주어 종교적으로 금지된 행동을 저지르게 할까 봐 겁냈다. 바보들은 인간의 기본 욕구이긴 하지만 종교적으로나 윤리적으로는 금지되고 제한된 것들, 즉 배고픔, 탐욕, 배뇨와 음주에 대한 욕구, 성적 충동을 억누르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사회 일원으로서의 지적 장애인

그러나 지적 장애인들이 항상 사회로부터 배제되어왔던 것은 아니다. 그들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적 장애인들을 향한 적대감은 언제나 이들을 우호적으로 생각하고 보호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해소됐다. 그들은 지적 장애인들의 어리숙함을 '장애'로 생각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특성'으로 받아들였고, 장애인들이 사회의 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왔다.

덕분에 지적 장애인들은 지역 공동체에서 농사를 거들거나 하인으로 고용되거나 청소, 밥하기, 심부름 등의 가사노동을 하며 자립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영국의 풍자화가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1697~1764)의 그림에서도 '노동자'였던 지적 장애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윌리엄 호가스, <백작 부인의 죽음> ‘유행하는 결혼’ 연작 중 6번째 그림, 1745년, 캔버스에 유채, 영국 내셔널갤러리 ⓒ 윌리엄 호가스

 
호가스의 <백작 부인의 죽음>은 몰락한 백작 가문의 아들과 돈 많은 상인 집안 딸의 정략결혼을 풍자한 연작 '유행하는 결혼' 중 6번째 그림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랑 없는 결혼을 한 백작 부인은 변호사와 불륜에 빠져들게 되고, 결국 백작이 알아채게 된다. 백작은 변호사와 결투를 벌이다 목숨을 잃고, 변호사는 살인죄로 교수형에 처해진다. 절망에 빠진 백작 부인은 아편을 과용하고 자살을 기도한다.

어린 딸이 엄마를 껴안으려 하고 있으나, 창백한 얼굴로 입만 힘없이 벌리고 있는 모습은 그녀가 곧 사망할 것을 암시한다. 그녀에게 다량의 아편을 가져다준 장본인은 오른쪽에 엉거주춤 서 있는 하인. 검은 옷의 의사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아편 통을 가리키며 하인을 격하게 나무라는 중이다.

그렇다면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 지적 장애인은 누구일까? 바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리에 얼어 붙어있는 하인이다. 당시 사람들은 그림만 보고서도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백작 부인의 죽음>을 본 독일 비평가 게오르크 크리스토프 리히텐베르크(Georg Christoph Lichtenberg)가 "그는 다른 하인들처럼 멋진 제복을 입고 있지만, 옷이 너무 크고 단추가 삐뚤게 채워져 있다"라고 설명했듯 말이다. 이 같은 외적 묘사는 지적 장애인들을 조롱하는 장치에 가깝다.

하지만 <백치라 불린 사람들>의 저자 사이먼 재럿은 "이 그림은 적어도 지적 장애인이 한 개인으로서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눈에 띄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적었다.

재럿의 이 지적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많은 지적 장애인들이 이제 곧 놀림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 채, 말 그대로 점점 사회에서 보이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설'이라는 형태로, 다시 '바보 배'가 대규모 출현한 것이다. 이번에는 지적 장애인이 '쓸모'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성과 과학의 시대'라는 19세기가 시작되자, 평범하지는 않지만 무해한 사람이었던 지적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달라졌다. 선거권이 확대되고 보통교육이 실시되면서, 사람들은 지적 장애인들의 투표 자격을 두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사회가 원한 인간형은 과학적 전문성으로 무장하고 질서정연하게 행동하는 '적극적 시민'이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우생학(優生學)이 '과학'의 이름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우생학은 인류가 열등한 유전자와 혈통 때문에 진화 상태에서 퇴보할 위험이 있다며 인종 개량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이들의 눈에 지적 장애인은 진화의 실패 사례와 다름없었다. 영국의 우생학자 줄리언 헉슬리(Julian Huxley)가 1930년 다음과 같이 핏대를 세울 정도였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아동이든 장애인은 모두 짐이다. 장애인을 먹이고 입히려면 국가의 부담이 늘어나지만, 그들에게서 얻을 것은 거의 아니면 전혀 없다. 모든 장애는 보살핌을 받아야 하며, 다른 곳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에너지와 선의를 움직이지 못하게 막는다."

결국 우생학은 역사적인 비극을 낳게 하는 단초가 되었다. 독일의 경우, 우생학 운동이 나치와 공모하면서 1933년 '유전병을 지닌 자녀 출산을 막기 위한' 단종법을 통과시켰다. 지적 장애인이 강제단종 수술 대상자 명단 꼭대기에 올랐음은 물론이다.

1939년 10월엔 '쓸모없는 아이들'의 안락사를 법으로 허용했고,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독극물을 주사 받거나 특수시설인 '헝거 하우스'에서 아사했다. '피와 눈물'이라는 잉크가 있다면, 지적 장애인의 역사는 바로 그것으로 씌어졌을 것이다.

'탈시설' 운동이 의미하는 것

이제 우리는 '생명에 계급이 있다'는 우생학이 잘못됐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지적 장애인들을 조롱하는 문화는 여전하다.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이라는 인상적인 제목의 책이 있다. 발달장애인의 엄마인 이 책의 저자 류승연은 '동네 바보 형'이라는 단어는 발달장애인을 대놓고 비웃는 말이라고 비판한다.

지적 장애인들이 상황 파악을 잘못해 엉뚱한 말을 하는 측면만 부각해 그들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방송에서 개그맨들이 지적장애인 흉내를 낼 때 꼭 흰색 콧물 분장을 과장되게 하는 등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하다가, 그 옛날 우리를 숱하게 웃겼던 '영구', '맹구' 역시 지적장애인을 희화화한 캐릭터였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이 왔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보면, 영구와 맹구는 적어도 시설에 갇혀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들은 강아지 '땡칠이'를 보살피며 골목길에서 아이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학당에서 제일 앞줄에 앉아 적극적으로 수업 발표를 하기도 했던 '동네 형'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형은 더 이상 동네에 없다.

요즘 장애인권운동계에서는 '탈시설'이 화두이다. '바보 배'에 강제로 태워진 채 망망대해 속으로 더 이상은 떠날 수 없다며, 다시 지역사회로 돌아와 우리의 이웃이 되겠다는 선언이다.

바보 배를 부술 수 있다면, 지적 장애인들이 사회 속에서 연애하고, 세례를 받기 위해 교리 공부를 하고, 결혼식까지 올리는 일이 '하늘의 별 따기'가 아닌 '당연한 일상'이 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덧붙이는 글 참고서적
<광기의 역사>, 미셸 푸코 지음, 이규현 옮김, 나남, 2020
<백치라 불린 사람들>, 사이먼 재럿 지음, 최이현 옮김, 생각이음, 2022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류승연 지음, 푸른숲, 2018
<정신의학의 탄생>, 하지현 지음, 해냄, 2016
<윌리엄 호가스>, 데이비드 빈드먼 지음, 장승원 옮김, 시공사, 1998
<플랑드르 화가들>, 금경숙 지음, 뮤진트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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