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11 11:59최종 업데이트 23.10.1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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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세수 부족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대의를 위해서 작은 희생들은 감수하라는 식이다. ‘작은 희생’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큰 타격인지 괘념치 않는다. ⓒ 셔터스톡

 
지난 9월 18일 기획재정부는 59조 원의 세수 펑크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경제 여건의 악화로 법인세가 대규모 감소하고, 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양도소득세와 상속증여세가 줄어든 것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고소득자와 대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은 이유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부유한 사람들에 대한 감세 정책이 세수에 좋은 영향을 주진 않았을 것이다.

부족한 세금은 어디서 메우는가. 정부 관계자는 지금도 감당이 불가능한 상태지만 국채를 발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말했다. 그 결과 교육부 지방재정교부금 11조 원이 감액되었다. 당장 시도교육청은 분주해졌고, 예정했던 사업들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제공하려던 여러 교육적 시도를 무기한 연기하거나 아예 취소하고 있다. 가장 약하고 힘없는 자들의 몫부터 없어지는 잔인한 시대가 또 시작되었다.


2년 전 런던에서 이란어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한 특파원이 내가 일하고 있는 '인디고 서원'에 취재를 온 적이 있다. 한국 문화가 가진 힘을 소개하는 방송을 기획하고 있는데, 교육 부문에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간단한 인사 후 인터뷰를 이어가던 중, 세계를 매료시킨 K-문화의 저력이 교육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는데 맞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당황스러웠다.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오히려 반대로 생각한 경우는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교육의 과도한 경쟁과 기계적 주입 시험 위주의 시스템에서 벗어난 사람만이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문화 창조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한국에서 교육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온몸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특파원은 한국이 이토록 발전한 이유를 엄청난 교육열에서 왔다고 본 것이다.

정말 한국 교육이 우리나라를 잘 사는 나라로 만든 것일까? 아니, 우리나라는 잘 사는 나라가 맞는 것일까? 단언컨대 그렇지 않다. 한국은 경제지표로는 무척 부유한 나라임이 분명하지만 지나치게 불평등하고 불균형적이다. 얼마나 가졌느냐에 따라,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어떤 직업을 가졌느냐에 따라 너무 많은 것이 결정되는 이 사회는 불안하고 불행하다.

아무리 출산 장려 정책에 예산을 쏟아부어도 출산율이 세계 최하위권으로 떨어지는 것은 이 모든 것의 결과다. 당장 아이를 잘 키울 여건이 되지 못하는 것도 이유겠지만, 아이가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 본능적으로 안다. 만약 낳기로 결심한다면 그때부터 내 아이를 위해 살벌하게 싸워야 한다. 언제 어떻게 사회가 변할지 모르는 불안함 속에 우리는 각자도생의 삶을 선택한다.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교사에 대한 악성 민원도 그런 풍토가 만들어 낸 괴물이 아닐까. 몇몇 학부모만 문제라면 이렇게나 많은 교사가 같은 어려움을 동시에 겪을 리 없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사회적 문제다.

이 부유한 사회가 불안하다
 

정정훈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지난 9월 1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세수 재추계 결과 및 재정대응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김동일 예산실장. ⓒ 연합뉴스

 
다시 세금 문제로 돌아와 생각해 보자. 세금이 덜 걷혀 국가의 재정이 어려움에 처했다면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아 극복해야 한다. 그런데 그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 근본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와 대책 마련은 뒷전이다. 손쉽게 줄일 수 있는 것부터 줄이면 된다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약자에 대한 비용부터 절감한다. 그마저도 모순이다. 교육부에 대한 지원금을 줄이면서 저출산 대책 예산은 늘린다고 한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인가? 이번 상황뿐만 아니라 불안 요소가 생길 때마다 땜질하듯 문제를 막기에 급급하다. 큰 문제가 생겼으니 대의를 위해서 작은 희생들은 감수하라는 식이다. 그 문제가 애초에 예측과 대비가 가능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고, '작은 희생'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큰 타격인지 괘념치 않는다. 그리고 주먹구구식의 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한 치 앞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잘 삶'이란 그렇게 만들어졌다.

나는 이 부유한 사회가 불안하다. 눈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고 빛나는 이 모습이 언제 꺼질지 모르는 촛불 같아 위태롭다. 세수 부족으로 교육비 예산을 깎고,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끊는 무자비한 사회가 지속 가능할 리 없다.

1930년대 대공황 시절,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정책을 통해 경제 재건을 도모했다. 뉴딜정책의 핵심은 공공사업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각자도생이 아니라 '함께' 이 어려움을 이겨내자는 정부의 제안은 예술과 교육에까지 미쳤다. 예술가들은 정부 지원을 받아 예술 활동을 이어갔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은 공동체의 자산이 되었다. 예술가들은 또한 학교로 가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때 형성한 미국의 문화예술은 지금까지도 미국을 강성한 국가로 만들어 주는 중요한 축이 되었다. 무엇이 위기를 이기는 힘인가?

한국이 이렇게 잘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요인은 복합적일 것이다. 무엇이 한국을 위태롭게 할 것인가? 그 요인 역시 매우 복합적일 것이다. 하지만 결론을 예측할 수 있는 징후들은 분명히 있다. 그 징후를 애써 외면하고 무시할 때,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문제가 우리를 압도할 것이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어려울수록 공동의 가치를 선택해 내는, 한 치 앞을 보는 선택을 하는 상식적인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나라가 진짜 잘 산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윤영 / <인디고잉> 편집장 ⓒ 이윤영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이윤영은 부산에 위치한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 인디고 서원에서 발행하는 인문교양지 <인디고잉>의 편집장입니다. 청소년기부터 인디고 서원에서 활동하며 인문·문화·교육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들이 세계와 소통하는 세계를 꿈꾸는 시민이고자 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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