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퀴즈쇼> 화면 갈무리

<나락퀴즈쇼> 화면 갈무리 ⓒ PsickUniv


더는 '머리 굴려야 이해되는' 콘텐츠가 통하지 않는 세상. 대중음악에서 강렬한 퍼포먼스로 사랑받던 3세대 아이돌이 저물고 '이지리스닝'을 겨냥한 4세대가 등장했다. 극장가에선 주제의식이 명확한 영화보다 킬링타임용이 잘 팔린다. 유튜브는 영상 길이가 1분 미만의 '숏츠'가 장악했다. 편안한 콘텐츠가 뜨는 요즘, 사회적 함의가 가득한 퀴즈쇼가 나타났다.

바로,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나락퀴즈쇼>. 곤란한 질문을 던져 일부러 게스트를 '나락'으로 보낸다고? 초대 해놓고 무슨 심보인가 싶지만, 알고 보면 사회에 대한 풍자와 섬뜩한 웃음을 곁들인 '블랙 유머'다. 분명 웃으라고 만든 건데 댓글에는 '현실적이라서 사회를 돌아보게 만든다'는 평이 대다수. 도대체 어떤 퀴즈쇼길래 시청자를 반성하게 만든 것일까.

'사상최초' 나락 가는 퀴즈쇼, 시작합니다

'당신도 나락에 갈 수 있다'는 슬로건을 내건 <나락퀴즈쇼>. 호스트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 지상파 예능을 즐기는 이라면 낯설지 몰라도 그들은 이미 구독자 수 248만 명을 보유한 유튜브계의 명장이다.

손흥민, 방탄소년단 RM, 강동원 등이 게스트로 나온 <피식쇼>, 05학번 헌내기들의 그 시절 이야기를 담은 <05학번이즈백> 등 전작도 남다르다. 언제나 날 것 그대로, '때깔'은 포기한 그들이 새롭게 <나락퀴즈쇼>를 선보였다.
 
 <나락퀴즈쇼>의 질문

<나락퀴즈쇼>의 질문 ⓒ PsickUniv

 
대놓고 게스트 '나락행'을 예고하는 콘텐츠인 만큼 시청자 반응이 뜨겁다. 최다 조회수 300만 돌파가 눈앞에 있는 데다 콘텐츠를 패러디한 영상까지 속출하고 있다. 특히 댓글 수는 4천 개에 가까울 정도로 시청자 간 논쟁이 분분하고 '나락 퀴즈쇼'에 등장한 질문을 직접 풀어보면서 아찔함을 느끼는 밸런스 게임이 유행하고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평범한 퀴즈쇼처럼 MC가 내는 질문에 답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섬뜩한 슬로건만큼 퀴즈 수위가 아찔하다.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아이돌 팬덤 문화부터 정치 성향, 역사까지 말 한 번 잘못하면 나락 갈 법한 질문만 모았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누구 뽑았냐'는 주관식 퀴즈부터 방청객으로 게스트의 아내를 섭외하고선 '결혼하기 전 몇 명 만났냐'고 묻는다.

난이도 극상은 단연 '친일파 고르기'. 화면에 일제 강점기 시대의 인물 사진을 띄어놓고 이 인물이 독립운동가인지, 친일파인지 맞히는 퀴즈다. 대답 하나에 나라를 구한 위인이 역적이 되거나, 혹은 반대인 상황. 입시 전문 유튜버이자 수험생을 향한 촌철살인으로 유명한 유튜버 '미미미누'조차 평정심을 잃고 당황하였고 삽시간에 변하는 그의 표정 변화는 SNS상에서 크게 화제였다.

<나락퀴즈쇼>의 묘미는 난감한 질문에 점점 '찐'으로 당황하는 게스트의 표정. 전직 농구선수이자 유쾌한 캐릭터로 사랑받은 '전태풍'도, 힙합 정신 가득한 래퍼 '언에듀케이티드 키드'도 게스트로 출연해 예외없이 나락에 빠졌다. 이에 시청자들은 '게스트가 이렇게 당황하는 거 처음 본다', '보는 나까지 떨게 된다', '기획력과 센스가 대단하다' 등 긍정적인 반응이 보였다.

웃다가도 씁쓸해지는 <나락퀴즈쇼>, 그 이유는

한편, 긍정적인 반응과 달리 '보면서 반성하게 된다', '개그보다 풍자에 가까운 콘텐츠다', '요즘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어 봤다'는 의외의 평도 많다. 도대체 게스트를 '나락'가게 만드는 콘텐츠에 시청자들은 왜 도파민이 아닌 씁쓸함, 더 나아가 스스로 반성하게 되었을까. 이는 <나락퀴즈쇼>가 사회에 대한 섬뜩한 통찰을 담은 '블랙 유머'이기 때문.

<나락퀴즈쇼>는 양극화가 심해져 무엇이든 진영 논리가 되는 시대성을 꼬집었다. 사실, <나락퀴즈쇼>의 질문들은 주로 절대적인 답이 있기보단 개인의 성향, 가치관에 따라 상대적인 답변이 가능한 유형이다. 예를 들어 어떤 정치인을 존경하는지, 어느 정당에 가고 싶은지 묻는 질문은 사람마다 답변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정치관과 다른 선택을 하는 순간, 상대의 선택을 인정하지 않고 마치 '적'을 만난 것처럼 적대적으로 변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겨냥한 질문인 것이다.

또한 <나락퀴즈쇼>는 유명인에게 지나친 잣대를 가하며 비판의 탈을 쓴 여론을 저격하기도 하였다. 이 퀴즈쇼에선 '해명할' 기회가 없다. 게스트가 오답을 고른 이유를 밝히거나 실수를 사과하려고 하면 호스트는 단호하게 차단하기 때문이다. 마치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의 사소한 실수에 과도한 비난이 이어지고 설령 그들이 사과문을 게시하거나 변화한 모습을 보여도 여전히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현실을 반영한 셈이다.

이에 시청자들은 '과도한 잣대를 유명인에게 들이밀어 인격 살인하는 요즘 분위기를 반영했다', '서로의 실수에 관대하자는 메시지가 있는 거 같다', '말 한마디가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회차가 진행될수록 <나락퀴즈쇼>에 숨겨진 속뜻을 발견하는 시청자는 늘고 있다.
 
 <나락퀴즈쇼> 오프닝 화면

<나락퀴즈쇼> 오프닝 화면 ⓒ PsickUniv

 
유머와 풍자를 오가는 <나락퀴즈쇼>의 본질은 마무리 멘트에서 드러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하지만 그 실수가 사람을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실수하면서 자란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누구나 천국과 나락을 오가게 된다는 것. <나락퀴즈쇼>는 발언 하나, 행동 하나에 누구나 나락행인 현실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가벼운 콘텐츠가 유행하는 시대에서 '양극화'와 '여론몰이'라는 무거운 키워드를 유튜브 콘텐츠로 탈바꿈한 '피식대학'의 내공이란. 유명해져도 '색깔 있는' 코미디를 놓지 않겠다던 그들의 다짐이 이번에도 통했다.
피식대학 나락토크쇼 양극화 SNS 나락쇼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악플, 계정 해킹, 신상 조회에 대한 법적 조치 중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