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17 11:59최종 업데이트 23.10.17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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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지난 13일 국가보훈부 국정감사에서 강성희 진보당 의원으로부터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투사 5인의 육사 흉상 이전 문제에 관한 질의를 받았다.

"왜 육사에 흉상이 설립됐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강 의원이 질문했지만, 답변이 즉각 나오지 않았다. 박 장관은 "제가 그때, 정확한, 언제, 2018년도 아닙니까?"라며 뜸을 들인 뒤 "정확한 맥락은, 제가 언론을 통해서 봤기 때문에, 그 부분은 소관 부서인 국방부에서 발표한 게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직접적인 대답이 나오지 않자, 강 의원은 "왜 이곳에 만들어지느냐 이런 게 중요할 거라 보거든요"라며 "아무 맥락 없이 아무 데나 이것을 만드는 건 아니잖아요"라고 한 뒤 "그런데 만약에 독립기념관으로 옮겨지면 누가 봐도 육군사관학교에서 쫓겨난 흉상으로 딱지가 붙여지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홍범도 흉상 이전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강조하는 이 발언에 대해 박 장관은 이렇게 답했다.

"그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어서 안중근 의사는 우리 독립운동사의 절대 영웅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안중근 의사 동상을 예를 들어서 일본대사관 바로 앞에 설치를 하면 그것이 맞는 것이냐 그러니까 적재적소에 배치한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여러분들의 많은 다양한 의견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2018년 3·1절에 홍범도를 비롯한 다섯 애국지사의 흉상을 육사에 설치한 이유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답이 없었다. 하지만, 우회적인 답변은 나왔다. 박 장관은 안중근 동상을 일본대사관 바로 앞에 세우면 되겠느냐며 '적재적소 배치'를 강조했다. 육사는 홍범도 흉상을 세울 적재적소가 아니라는 인식을 내비친 것이다.

육사 대신 독립기념관... 윤석열 정권의 억지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뿐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서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지난 8월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 연합뉴스


홍범도 흉상 논란이 불거진 이래로, 윤석열 정권은 타깃을 홍범도의 사상에 맞췄다. 확실한 근거도 없이 그에게 레드 콤플렉스를 씌우려 했다. 홍범도는 소련이나 공산주의와 연루됐기 때문에 그 흉상을 육사에 둘 수 없다는 논리를 개진했다. 이에 대한 국민적 반발이 만만치 않자, 윤석열 정권에서 나온 것이 '홍범도 흉상을 더 나은 공간으로 옮기겠다'는 입장 표명이다.

지난 8월 31일 육사는 '홍범도 흉상은 육사 밖으로, 나머지 넷은 교내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나머지 네 흉상을 육사 내에 존치시키는 타협적 방법으로 국민적 반발을 누그러트리려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고 나서 바로 다음 날인 9월 1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한 박민식 장관은 '홍범도 흉상을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할 의향이 있느냐?'라는 물음에 대해 육사나 국방부가 그런 요청을 하면 신중히 검토하겠다며 이렇게 답변했다.

"기본적으로 홍범도 장군은 1962년도에 건국훈장을 받은 분입니다. 독립유공자이지요. 그건 명명백백한 팩트이기 때문에, 국가보훈부장관으로서는 그분을 최대한 더 잘 예우할 수 있는 방향이 되어야 제가 오케이를 할 수가 있고요.

독립기념관에 제가 한번 가보니까, 육사는 예를 들어서 폐쇄된 공간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육사 생도를 위한 폐쇄된 공간인데, 독립기념관은 모든 국민들이 다 가보실 수 있는 공간이지 않습니까? 예컨대 독립기념관에 모시면, 우리 홍범도 장군의 독립지사로서의 업적을 더 많은 국민들이 보실 수 있지 않을까, 거기 가면 김좌진 장군, 안중근 지사 이런 동상이 있습니다, 그런 생각도 듭니다."
 

그의 말처럼 홍범도 장군을 예우할 생각이 있다면 육사 흉상을 그냥 놔두고 독립기념관에 하나 더 설치하면 될 텐데도, 흉상을 독립기념관으로 옮겨야 더 많은 국민들이 홍범도를 알 수 있게 되리라는 억지 논리를 펼친 것이다.

그런 뒤, 지난 13일 국정감사에서는 "안중근 동상을 일본대사관 바로 앞에 세우면 되겠느냐"며 육사는 홍범도 흉상을 세울 적재적소가 아니라고 강조한 것이다.

홍범도의 수난... 심상치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제75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정부가 육사를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있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윤 대통령의 최근 발언에서도 엿보인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달 26일, 그는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광복 후 제대로 된 무기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태동한 우리 군은, 이제는 적에게는 두려움을 안겨주고 국민에게는 신뢰받는 세계 속의 강군으로 성장했습니다"라고 발언했다.

그는 국군의 발전 과정을 칭송하는 이 발언 속에서 '광복 이후에 태동한 우리군'이라는 표현을 언급했다. 한국군의 뿌리를 백범 김구와 약산 김원봉이 한국광복군을 함께 지휘한 독립전쟁 시기에서 찾지 않고, 1945년 9월 이후의 미군정하에서 그것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의 법통이 3·1운동과 임시정부에 있다고 선언했다. 그렇기 때문에 국군의 법통 역시 3·1운동 및 임시정부와의 관련성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의 국군의 날 발언은 이 같은 헌법 전문에 배치된다.

강성희 의원은 박민식 장관에게 "왜 이곳에 만들어지느냐 이런 게 중요할 거라 보거든요"라며 "아무 맥락 없이 아무 데나 이것을 만드는 건 아니잖아요"라고 질의했다. 국군의 정통성을 임시정부에서 찾고자 독립운동가 흉상을 육사에 설치한 2018년 3·1절 당시의 취지를 강조한 발언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박민식 장관은 억지스러운 안중근 동상 비유를 하면서 육사가 적재적소가 아님을 강조했다.

독립군과 국군의 연계성을 단절시킨 윤 대통령의 국군의 날 발언을 감안하면 홍범도가 윤석열 정권하에서 수난을 당하는 것은 그와 소련의 인연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군이 독립군의 계승자임을 부정하고자 하는 윤석열 정권의 역사 인식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국군의 법통을 광복 이후에서 찾는 것은 3·1운동 및 임시정부와 대한민국의 연관성까지 끊을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위헌적인 시도의 희생양으로 홍범도가 간택됐다고 볼 수 있다. 윤석열 정권은 홍범도를 공산주의자로 몰아세우고 있지만, 이 정권이 정말로 싫어하는 것은 국군이 홍범도 같은 독립투사들의 후예로 인식되는 것이 아닐까?

이는 홍범도를 지키는 것이 단순히 홍범도라는 독립투사 한 개인을 지키는 것에 머물지 않고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이 건국됐다는 헌법 전문의 정신을 지키는 일임을 보여준다. 미군정 하에서 친일파가 정부수립을 주도한 1945년 이후가 아니라, 한국 민중이 자주독립과 민주공화국을 위해 싸운 1919년 이후가 대한민국의 뿌리라는 헌법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홍범도 흉상을 육사에 존치시켜야 할 필요성은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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