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15 11:57최종 업데이트 23.11.15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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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평화를 위한 유대인의 목소리’ 소속 활동가들이 11월 6일(현지시간)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기단을 점거한 채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펼침막을 걸고 시위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이스라엘-하마스 분쟁과 관련한 뉴스가 전 세계 주요 언론과 지면은 물론, 필자가 만나는 모든 이들과의 대화를 채우고 있다. 평소 모국과 디아스포라(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 간의 관계성을 탐구하는 필자는 미국 내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에 주목하게 된다. 이들은 각자 선조의 땅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충돌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을지, 미국 여론과 정책에 어떤 압력을 넣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특히 국제 관계에서 미국의 영향력과 상징성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미국 내 디아스포라들의 역할은 무시할 수 없다. 만약 미국 내 디아스포라의 존재로 인해 모국에 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면 이것은 분명 한반도와 재미 한인들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불균형한 미국 내 두 집단의 힘

미국 내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 집단 간에는 힘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퓨리서치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유대계 미국인은 750만 명에 육박하는 반면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은 20~25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더불어 유대계 미국인들이 갖는 위상과 권력은 최고 수준이다. 정·재계를 비롯해, 할리우드와 사회 다양한 영역에서 유대인들은 괄목할 만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더불어 홀로코스트로 상징되는 반유대주의의와 유대인 혐오 역사로 인해 그들은 역사적 피해자라는 정체성과 도덕적 명분을 구축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은 가장 혐오와 차별에 노출되었던 집단인 동시에 가장 성공한 집단인 것이다.


저 힘의 차이는 미국 정부 정책 기조에 반영된다. 바이든 정부는 하마스 테러 이후 이스라엘에 대해 확고한 지지를 천명했다. 더불어 유대계 미국인들은 강력한 로비 조직과 네트워크를 통해 힘을 발휘한다. 미국 내 연방 의회에 유대인은 26명의 하원과 9명의 상원 의원이 있다. 이에 비해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중에는 단 한 명의 연방 하원 의원만 존재할 뿐이다.

스타벅스와 맥도날드 같은 미국 대기업과 헤지펀드, 그리고 대형 로펌들 역시 최근 자사의 직원이나 학생들 중 팔레스타인 지지 의사를 표시한 이들에게 징계를 내리거나 입사 거절 통보를 하며 우회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 이유가 사내에 유대계 임원과 파트너 비율이 높기에 그런 것인지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현재 미국 내 상당수의 조직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는 뜨거운 감자이다.

압도적인 유대인, 그러나 여론의 반전

하지만 유대계 미국인들의 압도적인 양적, 질적 우세와는 달리 미국 내 여론은 이스라엘에 우호적으로 흘러가지 않는 추세이다. 팔레스타인계 미국인들은 다른 아랍계 미국인들뿐만 아니라 젊은이들과 진보적 시민단체 등의 힘을 업고 단결하고 있다. 이들이 하마스의 테러를 노골적으로 정당화하지는 않지만 이번 분쟁이 이스라엘의 오랜 가자지구 점령의 결과라는 반응을 보일 때면 논란이 일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단합된 목소리를 내는 팔레스타인계 미국인들과는 달리 유대계 미국인들의 심리는 조금 더 복잡하다. 언뜻 유대인들은 대부분 이스라엘의 입장을 지지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한 단계 더 깊게 살펴보면 유대계 미국인들 사이에도 정치적 입장, 세대, 그리고 종교에 따라 여러 시각이 존재한다.

2020년 퓨리서치에 의하면 유대인 중 32%는 세속적 유대인, 37%는 개혁파 유대교인, 17%는 보수파 유대교인, 그리고 9%는 정통파 유대교인으로 분류된다. 정통파는 정치적으로 상당히 보수적 성향을, 개혁파 혹은 세속적 유대인들은 진보적 성향을 지녔다. 지지 정당을 보자면 미국 내 유대인 중 71%는 민주당을, 26%는 공화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정당 지지도에 따라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정도에 큰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에 이 지표는 의미가 있다.

올해 4월 유대인을 포함한 미국 전체 국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갤럽 설문조사에 의하면 공화당 지지자일 경우 79%가 이스라엘에 더 큰 연민을 느끼고, 11%만 팔레스타인에 연민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반면 민주당 지지자일 경우 반대로 49%가 팔레스타인에, 38%가 이스라엘에 연민을 느낀다고 답했다. 물론 유대인의 경우 민주당 지지자들 내에서 비유대인들보다 이스라엘에 더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기는 하나 그 추세도 조금씩 변하고 있는 중이다.

흑인 민권운동에 가담했던 기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 11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유대인 공동체 지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교전을 언급하며 "이스라엘의 안보와 유대인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내 약속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 EPA/연합뉴스

 
미 인터넷 매체 < VOX > 기사에 의하면 더 젊고 세속적인 유대인들 사이에서 선조의 땅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에 더 우호적인 시각을 갖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지난 수년간 확장된 미국 내 사회 정의 진보 운동과 연결되어 있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촉발된 블랙 라이브즈 매터(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와 같은 인종차별 철폐 운동과 더불어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로 증가한 반유대주의를 계기로 젊은 유대인들은 타 소수민족들과 함께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연대의식을 더 공고히 구축했다.

사실 이 연대의 뿌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흑인들보다 정도는 덜하지만 역시 2등 시민 취급을 받았던 유대인들은 적극적으로 흑인 민권운동에 가담했다. 홀로코스트를 통해서도 반인류적 인종학살의 트라우마를 경험했던 그들이다.

현재 젊은 유대계 미국인들은 미국의 인종 문제와 계급적 제도라는 프레임을 통해 이-팔 분쟁을 바라보기에 가자지구를 점령하여 팔레스타인인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이스라엘보다 억압된 제도 아래 신음하는 팔레스타인의 해방운동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이다.

하지만 유대계 미국인들의 입장 변화의 배경에는 또다른 중요한 요소가 존재한다. 그것은 이스라엘 국내 정치의 노골적인 우경화다. 특히 지난 1년간 네타냐후 정권은 민주주의의 기본인 삼권분립과 정교분리 원칙을 무너뜨리는 사법개혁의 강행으로 이스라엘 내 절대다수의 대중뿐만 아니라 모국을 지지하던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의 신뢰까지 무너뜨렸다.

즉, 젊은 유대계 미국인들에게는 공통된 역사의식과 혈통, 종교, 문화, 민족적 동질감의 유대보다 현재 이스라엘 정권의 반민주주의 행보와 보편적 가치에 대한 훼손이 모국에 대한 입장을 결정하는 데 더 큰 요소로 작용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은 한인 디아스포라에게도 의미심장하다.

민주주의 촉구하는 한인 되길

과연 재미 한인들의 미래 모습은 어떨 것인가? 재미 한인들은 실질적인 힘을 키우기 위해 한인 정치인들을 배출하고 재계에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이 영향력을 바탕으로 남북관계가 긴장될 때 미국 여론을 한반도 평화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유도하기를 기대한다. 더 나아가 재미 한인들이 미국 내 사회 정의 운동에 적극 동참하여 민족주의가 아닌 보편적 가치를 위해 다른 소수자들과 연대하기를 바란다. 또한 모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가 아니라 비판적 성찰을 통해 더 발전된 민주주의를 촉구하는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유대교 탈무드에 나오는 '티쿤 올람(Tikkun Olam)', 즉 '세계를 치유하다'라는 개념이 세계의 모든 디아스포라 구성원들에게 더 절실히 기억되기를 바라보는 시기이다.
 

전후석 / 영화감독 ⓒ 전후석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전후석은 뉴욕에 거주하는 재미 한인 영화감독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헤로니모>와 <초선>을 연출했고 <당신의 수식어>라는 저서가 있습니다. 세 창작물 모두 재외동포들의 이야기와 디아스포라적 사유라는 주제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스토리텔러가 되기 전에는 뉴욕 변호사로도 활동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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