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지는데 필요한 시간이 '3초'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내가 직접 겪어보았으니까.
 
나는 축구공이 처음 발에 닿을 때부터 이 운동을 사랑하게 될 줄 알았다. 공을 접한 지 3년차. 여전히 볼 컨트롤과 슛팅 능력 등 부족한 게 너무 많지만 축구와 풋살을 아끼는 마음만큼은 줄어들지 않는다. 공을 찰 때마다 늘 생각한다.
 
'못하는데도 이렇게 재미있는데, 잘하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축구와 풋살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프로 선수들에 대한 호기심도 생겼다. 자고로 선수들이라면 잘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더 잘하는 사람들의 집합 아닌가. 그들끼리 축구하면 얼마나 재미있을까(물론 취미생활자의 낭만임을 안다. 취미와 일은 전혀 다를 것이다). 경기를 많이 볼수록 축구에 대한 이해능력이 깊어지니 자꾸자꾸 보라던 팀 코치님의 말씀도 떠올렸다. 그의 말에 따라 시간 날 때마다 축구와 풋살 경기들을 챙겨보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실제 눈으로 그 경기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 채널 <안정환 19>의 '반지원정대' 한 장면.

유튜브 채널 <안정환 19>의 '반지원정대' 한 장면. ⓒ 유튜브 '안정환 19'

 
같이 공을 차는 친구들도 한마음이었다. 한번은 동네 축구 친구들과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WK리그 경기를 보러 갔다. 그 큰 경기장에서 나와 성별이 같은 선수들이 각자 다른 색 유니폼을 나누어 입고 마음껏 뛰고 있겠지? 그 모습을 모두 눈에 담아가자.
 
막상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경기는 내가 생각했던 그 중앙에 있는 동그란 메인 경기장이 아니었다. 여자 축구는 보조경기장에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어찌저찌 찾아간 보조경기장은 그 어떤 안전요원도, 티켓을 끊는 매표소도, 표나 붉은악마 머리띠를 파는 잡상인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했다. 이 모든 경기는 무료였으니까. 무료임에도 듬성듬성 자리가 비어 있었다. 강아지 산책시키던 한 주민이 그 주변을 지나가다가 은근슬쩍 들어와 경기를 조금 보다가 다시 나갔다.
 
전광판에는 두 팀의 이름과 스코어만 떠 있었고, 추가시간이 주어져도 전광판에 뜨지 않아 경기가 몇 분 남았는지 심판만 알 수 있었다. K리그 경기에서는 볼 수 없는 생경함이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여자라면 축구를 아무리 잘해도 보조경기장에서 뛸 수밖에 없는 것이구나. '프로의 세계는 냉정한 것'이라지만 그 냉정함이 실력이 아닌 성별로 구분된다면 그만큼 억울할 것도 없겠구나 싶었다.

구단주 안정환의 '반지원정대'를 응원하며
 
 유튜브 채널 <안정환 19>의 '반지원정대' 한 장면.

유튜브 채널 <안정환 19>의 '반지원정대' 한 장면. ⓒ 유튜브 '안정환 19'

 
최근에 유튜브 채널 <안정환19>에서 '반지원정대'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축구를 하다가 자의 또는 타의로 그만두게 된 여성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어 하나의 팀을 만드는 내용이다. 언젠가 안정환씨가 출연한 KBS 방송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의 여성 버전이라 할 수 있겠다.
 
이번엔 감독이 아닌 구단주로 등장한 안정환은 한마디한다.

"나도 여자 축구는 잘 모르기 때문에 죄책감(부채감)이 있고..."

우리나라 제일가는 선수 자리에 섰던 이조차 옆 동네 동료들의 상황을 잘 몰랐다니 의외였다. 그들의 소외감에 부채감을 느꼈다는 말이 같이 공을 차는 선수로서의 솔직한 심정 아니었을까.
 
방송에 나오는 여성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공을 처음 찰 때 매일같이 찾아보았던 유튜브 채널 <키킷>의 서녕, 선갱, 엄다도 눈에 보이고, 인스타그램 샌드박스풋살에서 남자 선수들과 함께 뛰는 황혜수님도 인터뷰에 등장했다. 유명 축구 선수 가레스 베일과 축구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이세빈님도 SNS에서 유명하다. 감독으로 등장하는 이들도 티아고킴, 동고(동네축구) 등으로 유튜브에서 '축구'를 치면 나오는 유명 유튜버들이었다. 해당 프로그램이 여자 축구 활성화를 위해 스타성 있는 이들을 섭외하려 고심한 흔적이 눈에 보였다.
 
영국이 축구 강국인 이유는 풀뿌리 축구가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풀뿌리 축구는 풀뿌리처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을 이야기한다. 안정환은 우리나라의 풀뿌리 축구 활성화를 위해 유소년 선수들을 지원하고, '반지원정대'라는 여자 축구 팀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우리나라에도 풀뿌리 축구가 활성화된다면 어떨까. 나처럼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축구가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어?'하고 놀라며 되지도 않는 몸을 이끌고 뒤늦게 공을 찾는 이가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반드시 다섯 살 때부터 공을 차겠다'며 늦게 시작한 축구 생활에 후회하고 또 후회하는 사람이다.
 
 유튜브 채널 <안정환 19>의 '반지원정대' 한 장면.

유튜브 채널 <안정환 19>의 '반지원정대' 한 장면. ⓒ 유튜브 '안정환 19'

 
'반지원정대'에서는 8명의 코치가 선수들의 경기를 본 뒤에 축구 실력을 A부터 D등급으로 나누고, 이후 그 등급에 따라 선수들을 나누어 배분한다. 선수 배치가 끝나고 검은 배경에 다음의 메시지가 떴다.
 
"단 몇 경기만으로 선수를 판단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으며, 등급 결과 공개가 선수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등급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오랫동안 기록으로 남을 영상에 선수 등급을 나누는 게 선수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고,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등급을 나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결정은 안정환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나는 알았다. 그가 죄책감의 일환으로 만든 프로젝트로 인해 또 다른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축구의 세계가 냉정하다지만 축구도 인간이 하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를 존중할 수 없다면 공 아래 하나가 되어 뛸 수 없다. 그는 그걸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가 구단주라면 <안정환19>의 '반지원정대'도 꽤 괜찮은 성적을 거둘 수 있겠다. 앞으로 '반지원정대'가 어디까지 나아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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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노동자. 두 권의 책을 낸 작가. 여성 아마추어 풋살선수. 나이 든 고양이 웅이와 함께 살고 있으며, 풋살 신동이 되고 싶습니다. <편집자의 마음>, <들어 봐, 우릴 위해 만든 노래야> 두 권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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