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광주FC가 FC서울을 꺾고 2024시즌을 기분 좋게 출발했다. 이정효 감독이 이끄는 광주는 3월 2일 홈구장인 광주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4 1라운드 홈 경기에서 김기동 감독의 서울을 2-0으로 물리쳤다.
 
양 팀의 올 시즌 개막전인 이 경기는 최근 K리그에서 가장 핫한 두 지장(智將)들의 맞대결로도 주목받았다. 이정효와 김기동, 두 감독은 모두 현대 축구의 트렌디한 전술을 유연하게 구사하는 전술 역량이 두드러지는 지략가로 축구팬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이정효 감독은 지난 시즌 광주를 구단 사상 1부리그 최고 순위인 3위로 이끌었고 사상 최초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진출 티켓까지 따냈다. 김기동 감독은 지난해 포항의 리그 준우승과 FA컵 우승을 이끌며 프로 감독 데뷔 이후 첫 타이틀을 획득했다.
 
지난 겨울, 두 감독의 행보는 엇갈렸다. 이정효 감독은 광주와 재계약을 체결하며 2027년까지 구단과 동행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김기동 감독은 포항을 떠나 서울의 지휘봉을 잡으며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공교롭게도 두 감독은 올시즌 개막전부터 맞대결을 펼치게 됐다. 거침없는 입담의 이정효 감독은 지난 시즌 서울에 패배한 뒤 "저렇게 축구하는 팀에 졌다는 것이 분하다"라는 거친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지난달 26일 K리그 개막 미디어데이에서 새롭게 서울의 지휘봉을 잡은 김기동 감독은 "개막전 흐름은 이정효 감독 당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먼저 선제구를 날렸다.
 
이에 이정효 감독은 "개막전에서 상식 밖의 행동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상식 밖의 생각과 상식 밖의 전술로 보여주겠다"라며 의미심장한 발언으로 받아치며 눈길을 끌었다.

개막전을 앞두고 상대적으로 더 주목받은 것은 서울의 '이름값'이었다. 김기동 감독의 존재감에다가 조영욱-일류첸코-팔로세비치-기성용 등 스타급 선수들이 대거 포진했고, 여기에 잉글랜드 국가대표 출신 제시 린가드까지 전격 합류했다. 개막 미디어데이에서 가장 기대되는 팀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도 서울이었다. 많은 팬들과 전문가들은 원정팀이지만 조심스럽게 서울의 우위를 예상하기도 했다.
 
이에 맞서는 이정효 감독은 미디어데이에서 공언한 대로 '상식밖의 축구'로 허를 찔렀다. 광주는 지난 시즌 팀내 최고의 선수였던 이순민이 대전으로 이적했고, 개막전에서는 놀랍게도 아사니, 베카, 빅톨 등 외국인 공격자원 3명을 모두 출전명단에서 제외하는 파격적인 선택을 내렸다. K리그에서 외국인 선수의 존재가 일년 농사를 결정짓는다고 말할 만큼 비중이 크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 면에서 서울을 압도하며 승리까지 거머쥐었다는 것이다. 광주는 이 감독이 준비한 전술대로 경기 초반부터 서울의 패스 루트를 완벽히 틀어막고, 빠르고 정교한 역습으로 빈틈을 공략하며 분위기를 장악했다.
 
이순민과 외국인 공격수들의 빈 자리를 메운 것은, 이희균, 이건희, 안혁주 등 영건과 구단 유스 출신 선수들이었다. 외국인 선수로 출전한 가브리엘과 포포비치 역시 2000년대생으로 아직 성장중인 선수들이었다.
 
이정효 감독의 용병술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이희균은 전반 20분 통렬한 오른발 중거리 슈팅으로 서울의 골망을 가르며 올시즌 광주의 첫 골이자 결승골을 신고했다. 후반 추가시간에는 가브리엘의 쐐기골까지 터지며 광주는 2-0으로 기분좋은 승리를 챙겼다.
 
지난해 서울에 상대전적 1승 2패로 뒤졌던 광주는 개막전부터 보기좋게 설욕에 성공했다. '이름값으로 축구하지 않는다'라는 이정효 감독의 철학이 절대 말뿐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며, 올시즌도 광주의 돌풍을 기대하게 했다.
 
반면 서울도 후반전에는 교체카드를 연이어 투입하며 반격에 나섰다. 광주 선수들이 체력이 떨어지면서 서울에 여러 차례 위협적인 공격 기회를 내주기도 했다.
 
이에 이정효 감독은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도 선수들의 집중력이 떨어질 조짐을 보이자, 경기 내용에 불만을 품고 입고 있는 코트를 벗어던지거나 불호령을 내지르며 투지를 독려하기도 했다. 경기를 지켜본 팬들은 이러한 이정효 감독 특유의 개성넘치는 카리스마와 쇼맨십에 매료되었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축구팬들에게 초미의 관심을 받았던 린가드는 이날 경기 후반 교체 출장하며 K리그 데뷔전을 치렀만 공격포인트를 달성하는 데는 실패했다. 김기동 감독은 광주전에서 가급적 린가드를 쓰고 싶지 않다는 의중을 내비쳤지만, 경기가 풀리지 않자 결국 후반 31분 린가드를 투입했다. 잉글랜드 노팅엄 포레스트 시절 이후 약 11개월만의 그라운드 복귀전이었다.
 
린가드는 짧은 시간동안에도 의욕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며 몇차례 좋은 플레이를 선보였다. 뒷공간을 노리는 로빙패스나 오른쪽에서 올려운 크로스로 동료의 득점찬스를 만들어줬고, 페널티 아크 부근에서 공간이 열리자 과감한 왼발 슈팅을 시도하기도 했다. 후반 추가시간에는 위협적인 스프린트로 파울을 유도해내어 정호연의 경고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아직은 경기감각이 부족한 듯 무리한 플레이와 상황판단이 아쉬웠다. 수비에 가담한 린가드는 측면을 돌파하던 오후성을 향해 깊은 태클을 시도했다가 옐로 카드를 받았고, 광주 선수들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김기동 감독이 밝힌바에 따르면 현재 린가드의 몸상태는 약 60-70%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서 린가드의 선발출전은 아직 좀더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김기동 감독은 서울 지휘봉을 잡고 첫 공식경기에서 이정효 감독에게 완패하며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이날 서울의 공격은 전반적으로 답답했다. 서울 공격진과 미드필더들은 광주의 강한 압박에 고전했고, 수비에서는 광주의 빠른 공수전환을 활용한 측면 공격에 자주 흔들렸다.
 
그나마 전술가답게 김기동 감독이 후반전에 빠르게 팀을 재정비하여 전반전과 다른 경기를 펼쳤다는 것은 희망적인 대목이었다. 서울이 올시즌 성적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것을 감안하면, 서울 선수들이 얼마나 빨리 김기동 감독의 축구에 적응할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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