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감독님을 만나고 싶다는 분이 있는데요."

2023년 5월. 아침 일찍 인디밴드의 라이브영상 촬영 자원봉사로 송파구의 사무실(칼박레코드)로 출근했을 때였다. 그날 따라 일찍 온 대표님께서 조심스레 운을 띄우셨다.

내용인즉슨, 인디밴드 6팀을 모은 단편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싶다는 분이 계시는데 그 인디밴드의 선정과 소개를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밴드 개인정보도 포함될테고 , 선정과정에서 밴드별로 의향을 물어보는 과정도 꽤나 품이 들 것 같은데요. 그리고 만드는 영상이 밴드들에게 도움이 될지 얼떨지도..."

"밴드별로 OOO원씩 지원금이 나온다고 합니다"

"하겠습니다!"


무엇을 망설이랴. 밴드활동에는 악기 구입비 뿐이 아닌, 연습실 대여비나 교통비 등에 돈이 들기 마련이다. 공연을 하는 데에도 대관비가 든다. 그리고 대부분(사실 거의 모든 밴드가) 낮 동안에 이를 위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기에 얼마간의 금전적인 지원이 있다면 이를 놓칠 수는 없는 일이다.

밴드 선정은 장르의 다양성과 지속성 등 몇 가지 기준을 정하고 자체회의를 거쳐 7팀을 추스려서 마무리하고 자료를 정리했다. 시연을 위한 라이브영상 일부와 밴드의 간단한 프로필을 정리하고 제작사를 방문하기 위한 날짜를 기다렸다.

자료제공에서 제작총괄이 되기까지

밴드들은 다행히 제작사의 마음에 든 듯하다. 하지만 6팀의 기준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장르가 겹치는 등의 이유가 있는 한 팀을 아쉽지만 제외하고 최종적으로 6팀의 선정이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전체적인 제작방향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구성은 일반적인 다큐의 형식으로 제출한 자료영상 외에 추가적인 인터뷰 촬영이 있을 예정이라고 하였다. 더불어 라이브영상을 위한 6팀을 모은 자체 공연을 주최한다고 한다.

여기에서 의견이 갈렸다.

공연 기획은 관객이 모이는 것을 전제로 삼아야 하는데 재즈, 헤비메탈, 펑크락 등 밴드의 분위기가 각각이고 인지도마저 높지 않은 상황에선 자칫 공연장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 있다는 걱정이었다. 경험 많은 공연기획자 분들도 어려워하는 영역인데 한 번도 공연을 주최해 보지 않은 인원이 감당하기에는 성공을, 아니 관객과 밴드, 제작사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올 것 같았다.

"꼭 공연을 해야만 할까요?"

공연에 대한 개선안을 몇 가지인가 제안하다가 결국 이 말을 하고야 말았다. 컨설팅으로 온 자리도 아닌데, 기획을 전제 단계에서 부정하는 것은 무척이나 실례되는 일이었지만 이대로는 많은 이들이 만족할 수 없는 일이 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다.

"대신에 제가 밴드들 공연장을 따라다니면서 공연장면을 찍어오겠습니다."

말하는 순간에는 기존에 잡혀있는 공연과 클럽들의 기획력을 빌리는 편이 낫다는 의견이었지만, 곧 계획의 변경으로 또다른 불확실성을 제시하는 것뿐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차...' 하는 후회 아닌 후회를 하는, 길지 않은 정적 뒤에 대답이 나왔다.

"그거 괜찮겠는데요. 저희도 밴드분들과 안면이 있는 분이 맡아주신다면 안심이고요. 더불어 인터뷰 건도 통으로 맡아서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계획의 수정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제안이었다.

기록의 시작, 첫 번째 One Last Bullet 
 

▲ 그들의 꿈을 응원합니다 : 오엘비 ⓒ 독수리미디어

 
OLB라고도 읽는 이 밴드는 뮤직비디오를 만들면서 알게 되었다. 드럼이 군대에 가면서 잠시 휴식기가 있었지만 새로운 드럼을 영입하면서 활동을 재개하였다. 인터뷰를 위해 리더에게 연락을 하니 마침 평택에서 밴드경연대회가 있어 그곳에 모인다고 한다.

인터뷰는 주최지인 평택대학교에서 하였다. 대회에 참여한 밴드는 아는 밴드, 모르는 밴드, 유명한 밴드 등 다양해서, 겸사겸사 공연에 참가한 모습을 담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페스티벌을 즐겼다. 그리고 발표 직전의 긴장한 모습 등을 자료로 담으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결과 찍은 것은...

"최우수보컬상, OLB!" 

너무 기뻐서 시상식 단상까지 달려가는 네 명의 모습이었다. 나까지도 행복해지는 이런 드라마틱한 찰나의 순간을 담는 경험은 언제나 좋다.

품바21, 원오프 그리고 nestNADA(네스트나다)
 

▲ 그들의 꿈을 응원합니다 : 품바21 ⓒ 독수리미디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공연장이라 할 수 있는 nestNADA. 그곳에서 이틀 연속으로 품바21과 원오프가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품바21은 경록절의 오프닝을 맡기도 한 젊은 밴드로, 전통적 요소와 락을 절묘하게 접목한 독보적인 매력을 지녔다.
원오프는 10년 전 < 슈퍼스타K >를 통해 홍대를 제패한 리플렉스의 멤버가 만든 실력파 모던락 밴드이다.
 

▲ 그들의 꿈을 응원합니다 : 원오프 ⓒ 독수리미디어

 
애정하는 밴드, 애정하는 공연장 이었기에 조금 더 진지한 마음으로 순간순간을 기록해 나갔다. 품바21과 원오프 역시 nestNADA를 선택한 것은 이 공연장에 가지는 애정이 컸기 때문이리라.

그렇기에 두 팀이 공연한 6월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는 점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왔다. 따로 이 이야기를 인터뷰와 다큐에 담아보려 했지만, 담담하게 마무리를 하고 싶다는 nestNADA의 의향으로, 언제나처럼 촬영과 취재의 배려만을 받은 채 기록을 마무리했다.

잭스(JAXX), 은하수밴드
 

▲ 그들의 꿈을 응원합니다 : the JAXX ⓒ 독수리미디어

 
이름에서도 강함이 느껴지는 메탈밴드 잭스. 자연을 연상하게 되는 본격 재즈밴드 은하수. 이 둘의 공통점은 2023년의 기록적인 폭우로 공연 촬영이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각각 밴드의 노력으로 공연장과 버스킹을 준비하고,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세팅을 했지만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다. 잭스(JAXX)는 프론트맨인 보컬의 직장이 공무원이어서 비상근무를 피할 수 없었다(공연날 2번이나!). 은하수는 모든 장비를 비닐까지 덮어가며 기다렸지만 행사취소의 통보를 받아야만 했다.

천재지변이라 어쩔 수 없어 제작사 동의하에 인터뷰와 기존의 자료로만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지만, 두 팀 모두 아티스트의 자존심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잭스(JAXX)는 미발매 신곡의 녹음을 당겨서 할테니 그 과정을 기록하자는 제의를, 은하수는 무관중이겠지만 라이브를 위해 카페 한 층을 자신이 섭외하고 세팅하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둘 다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사람은 알 것이다. 분명 이익이 되는 일은 아니지만, 각자 자신의 밴드를-음악을 보여주는 데에 소홀함이 없는 진지함을 다시금 느꼈다.

그 진지함과 열정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 있도록 잘 담겨졌기를 바랄뿐이다.
 

▲ 그들의 꿈을 응원합니다 : 은하수밴드 ⓒ 독수리미디어

 
랫가일

(거의) 매달 신곡을 발매하고, (거의) 매주 공연과 연습을 하며, (거의) 매일 SNS의 업데이트를 하는 부지런한 5인조. 진지함을 모토로 하는 코믹한 밴드이자 락을 베이스로 하지만 트로트까지 섭렵하는 유연함을 가지고 있는 밴드이다. 시각장애가 있는 멤버가 대외협의를 맡을 정도로 분업과 열정이 뛰어나다.

그리고 6팀 중 유일하게 재촬영을 한 팀이다.

사연은 이러하다. 본촬영에서 1시간 반에 걸친 인터뷰가 있었다. 홍대 거리에서 조명도 써 가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며 인터뷰를 마쳤다. 내용도 좋았다. 카메라도 세 대를 동원하였으니 좁은 길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은 다 썼다고 보면 된다.

편집까지 마친 후 연습실 장면을 추가하면 좋을 것 같아 일정이 겹치는 날 밴드에 연락을 해서 연습장면을 짧게 찍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

연습실에서 찍은 장면이 너무 재미있었던 것이다.

본촬영에서 찍은 인터뷰는 내용은 충실했지만 경직된 느낌이 있어 아쉬움이 있었다면, 연습실에서의 5명은 <무한도전>의 재림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완벽한 호흡과 티키타카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본촬영분은 조용히 폐기되고, 30분간의 인터뷰를 빙자한 수다가 본편에 들어가게 되었다.
 

▲ 그들의 꿈을 응원합니다 : 랫가일 ⓒ 독수리미디어

 
마무리

타이틀이 먼저 정해진 '그들의 꿈을 응원합니다'는 인디밴드의 이야기이다. 팀 당 5분여의 배정된 시간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보는 이가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고 응원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인디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가지고 있는 꿈은 무엇인지, 평소에 어떤 모습으로 어떤 활동을 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이것이 이루어 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디 홍대 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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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를 시작으로 변두리의 문화를 느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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