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15 12:06최종 업데이트 24.03.1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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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을 아시나요? 다이렉트 메시지(Direct Message)의 약자인 디엠은 인스타그램 등에서 유저들이 1대 1로 보내는 메시지를 의미합니다. 4월 10일 22대 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대변하기 위해 국회로 가겠다는 후보들에게, 유권자들이 DM 보내듯 원하는 바를 '다이렉트로' 전달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오마이뉴스>는 시민들이 22대 국회에 바라는 점을 진솔하게 담은 DM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편집자말]

성인지 감수성을 담은 성범죄 예방·피해자 보호책을 원하는 유권자의 DM ⓒ 오마이뉴스

 
안녕하세요, 미국에 사는 교포입니다. 한국의 성범죄 관련 판결을 뉴스로 접할 때마다 '에계? 겨우? 고작? 미국이라면 어림도 없지' 이런 반응을 하게 됩니다. 죄질이 불량하다, 피해자의 고통을 생각한다, 중벌에 처함이 타당하다면서도 형량은 가볍고 감형 이유는 다양하더군요. 판사는 법과 양형기준에 따라 결정한다는데요. 국민에게 와닿는 엄중한 법으로 언제쯤 바뀌게 될까요? 

범죄 예방에 민감하게 협력하는 문화

한국에서도 '한국형 제시카법' 추진이 작년에 큰 이슈가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미국에서는 성범죄, 특히 아동성범죄와 관련해 중요한 두 법이 있지요. 하나는 범죄인 신상정보 공개와 관련된 메간법(Megan's Law)이고 다른 하나는 제시카법(Jessica Law)입니다.


제시카법은 "12세 미만 아동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 대해 최소 25년의 형량을 적용하고 출소 이후에도 평생 위치추적장치를 채워 집중 감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시사상식사전 인용).

관련 사건이 발생하고, 제시카법이 처음 만들어진 플로리다주의 경우, 초범이라도 징역 25년 이상, 재범의 경우 관용 없는 무기징역이 원칙입니다. 초범이라고, 음주를 했다고, 가해자의 학위취득과 미래를 위해, 심신미약 상태라고, 반성 중이라고 감형해 주지 않습니다. 성범죄자의 거주지를 특정해 주려는 한국과 달리, 미국의 제시카법은 성범죄자의 거주지를 학교와 같은 특정 시설로부터 거리를 두게 하는 규정입니다. 

작년에 제가 사는 동네가 이 문제로 좀 시끄러웠습니다. 우리 학군은 학교에서 0.75마일, 그러니까 대략 1.2Km 내에 사는 학생들은 걸어서 등교를 해야 합니다. 가까운 거리라 스쿨버스가 제공되지 않거든요. 그런데 출소한 성범죄자가 중학교 가까이 집을 얻게 되었습니다. 뉴욕주는 학교 시설 300m(1000 피트)내에는 성범죄자가 거주할 수 없습니다. 규정대로 했으나 하필 학생들의 주 통학로이자 유일한 학교 앞 건널목에 성범죄자가 이사를 온 것이 문제였죠.

미국에선 중학생이라 해도 신입생은 9~10살 정도 어린 아이들입니다. 매일 신호등 앞에 서있는 학생들이 성범죄자에게 관찰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학부모들의 항의와 탄원서 제출에도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조치는 성범죄자의 통학 시간 외출 금지 정도였고 방과 후 클럽 활동을 하는 학생들의 안전 때문에 한동안 교육구와 중학교가 대책 논의로 떠들썩했습니다. 

성범죄자가 이주해 오면 학교에서 각 가정으로 빠르게 알림 메일이 옵니다. 주정부가 제공하는 기록에는 얼굴 사진과 함께 인종과 신체 특징, 필수 개인 정보는 물론 간략한 사건 정보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학부모회에서는 주기적으로 성범죄자의 거주지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 방문을 권고합니다. 우리 동네 어디에 그들이 살고 있는지 지도 위에 표시가 되는 사이트죠.

핼러윈을 시작하기 전에 부모들은 거주지 정보 사이트로부터 사탕 받기를 걸러야 하는 집을 확인하고, 성범죄자는 집 안팎의 불을 끄고 있거나 표지판을 걸어 아이들과의 접촉을 일절 금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Stranger Danger'(낯선 사람 주의)을 되뇌도록 교육받습니다. 얼마 전에도, 스쿨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중학생에게 흰색 차량을 탄 낯선 여성이 학교까지 바래다주겠다고 접근하자 학생이 바로 거부하고 학교에 알려왔다는 공지를 받았습니다. 이런 일들 때문에 스쿨버스 정차장이 될 거리와 주택도 신중하게 결정이 됩니다. 법도 법이지만, 공존하면서도 예방에 주의를 기울이는 분위기가 주민들 사이에 확고하게 정착된 것이죠. 
 

학교로부터 받는 주의 공지 우리 학군이 아니라 인근 학군에 성범죄자가 이사를 오더라도 관련 정보를 상세히 알려온다. 성범죄자 뿐 아니라 낯선 이의 접근 사실도 정보로 공유 받는다. ⓒ 장소영

 
미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아동 성범죄 소멸시효 폐지

미국은 성범죄에 대해 보다 엄격하게 처벌하고 범위도 넓혀가고 있습니다. 2022년, 미성년자 성범죄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제가 폐지되었습니다. 2019년 버몬트주로부터 시작된 공소시효 폐지는 각 주로 확산되었고, 연방의회를 통과하여 대통령의 서명까지 받아낸 것이죠. 

어린 나이에 성범죄 피해자가 된 이들은 평균 나이 52세가 되어야 신고를 한다는 통계 결과도 있었는데요. 뉴욕주 역시 이미 2019년에 공소시효 기간을 기존 피해자 나이 23세에서 만 55세까지 대폭 늘리는 '아동 피해자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개인뿐 아니라 단체와 기관도 소송 대상에 포함시키고요. 

뉴욕주는 공소시효가 만료된 성범죄에 대한 민사소송 제기를 한시적으로 허락하기로 하고 1년간 신청 접수를 받았습니다(2022년). 강력한 법도 제정하고, 유연한 법 적용을 위해 한시적으로라도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사는 피해자에게 소송의 기회를 준 것입니다. 뉴욕의 이 '성범죄 피해자 특별법' 때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도, 에릭 애덤스 뉴욕 시장도 소송을 당하게 되었고요. 
 

법원 기소인부절차 참석하는 트럼프 전 미 대통령 성추문 입막음 의혹으로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열린 기소인부절차에 참석하고 있다.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형사기소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범죄를 숨기려고 기업문서를 조작한 것과 관련된 34건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2023.04.05 ⓒ 뉴욕 EPA=연합뉴스

 
뉴욕시는 SNS의 주요 플랫폼이 되는 대기업과 소송전에 들어갔습니다. 명목은 '청소년 정신 건강에 위해'를 준다는 거지만 사실상 알고리즘 기술을 사용해 아동 성 착취물을 확산시키는 범죄 혐의도 함께 노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지난달에는 뉴욕주 차원에서 딥페이크 관련 법안을 강화하고 불법촬영 영상(연인 간의 보복성 영상 배포)을 포함한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한 법안 개정도 준비 중이라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성범죄에 대응하며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정책이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상처의 깊이와 보복에 대한 두려움, 그들의 존재의 가치를 법에 고스란히 녹여내면서 말이죠.

정책과 법이 고른 단어에서도 피해자들과의 연대가 보여집니다. 성범죄 피해자 대신 '생존자(Survivor)'라고 불러주는 것이죠. 뉴욕의 '성범죄 피해자 특별법'도 정확하게는 '성인 생존자법'(Adult SurvivorsAct)'이라고 합니다.  

아무쪼록 22대 국회는 어느 때보다 성인지 감수성이 높다고 평가받길 바랍니다. 선택하시는 단어에서부터 태도와 정책에 이르기까지 유권자들이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성범죄 피해자들이 보호받고 법이 내 편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더이상 보복이나 추가 피해를 두려워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또, 가해자들에게는 국민들이 납득하고 공감할 만한 강력한 처벌을, 아동청소년들을 절대로 성범죄에 이용할 수 없게 하는 무관용 법과 정책이 22대 국회에서 나오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IT 강국이라는 한국이 세계가 보고 따를 수 있는 획기적인 디지털 성범죄 예방과 처벌 정책을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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