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18 07:06최종 업데이트 24.03.18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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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난 수업에서 배운 걸 복습부터 하고 시작하겠습니다.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회사 ASML이 2023년에 가장 많은 장비를 판매한 곳은 대만이고, 2위가 중국이라고 했습니다. 미·중 반도체 갈등과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더 많은 장비를 원했고, 미국·일본·네덜란드의 반도체장비 업체들은 가능한 한 많은 장비를 중국에 판매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은 전년 대비 23.9%가 줄어서 중국 내 시장점유율이 3.2%포인트나 줄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전 이게 대통령님의 탈중국 기조의 결과라고 봤습니다.

이런 저의 수업 내용을 이해했다면 뭘 해야겠습니까? 우리나라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중국과 관계 개선을 시도해서 줄어든 반도체 장비의 중국 내 시장점유율을 되찾아 올 생각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들려오는 건 잃어버린 걸 되찾아 오기는커녕 더 많이 빼앗길 만한 그런 소식뿐입니다.

중국 향한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에 참여하라는 미국
 

<연합뉴스>는 우리 정부가 미국 주도의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에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를 내놓았습니다. ⓒ 연합뉴스 보도화면

 
지난 13일, <연합뉴스>는 "韓, 美주도 對中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참여 검토…韓美 관계 고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놓았습니다. 미국 정부가 우리 정부에 중국에 수출하는 우리 반도체 장비에 대한 수출통제를 실시하라는 압박을 하고 있고, 우리 정부는 한미관계를 고려해서 미국의 대중국 수출통제에 동참할 것을 고려 중이라는 내용입니다.

다음날 <동아일보> 역시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는 그동안 한미 간 협의가 진행돼 온 상황"이라는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의 발언을 보도했습니다. 정 본부장은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공개하기 이르다"고 했는데, 이 말은 곧 어떤 형태로든 우리 반도체 장비의 대중국 수출통제가 이뤄질 거라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반도체 쪽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전 이 뉴스를 보고 눈 앞이 깜깜해졌습니다. 우리가 반도체 장비의 대중국 수출통제에 동참하는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지 찬찬히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 규모는 얼마나 될까요?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 대략 1000억 달러 정도입니다. 이 중에서 한국은 반도체 장비 시장의 24.4%를 차지해서 28.8%의 중국 다음으로 큰 시장입니다. 중국의 28.8%에는 중국에서 팹을 운영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구입하는 장비도 포함되기 때문에 사실상 한국이 가장 큰 반도체 장비 수입 시장입니다.

그럼 반대로 우리 반도체장비 업체들은 얼마나 많은 장비를 판매하고 있을까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의 반도체 장비 전체 수출액은 약 77억 달러입니다. 그중 절반 이상이 중국으로 수출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으로의 수출을 통제하라고 하면 우리나라 반도체장비 업체들은 앉아서 망하라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한국의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 중국에 대한 장비 수출이 통제되면 이 회사들이 타격을 입게 됩니다. ⓒ 인베스트코리아


일각에서는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일정 수준 이상의 선단공정용 장비와 기술에 대한 통제라서 우리 반도체장비 업체들의 피해가 그렇게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하지만 수출 통제가 시작되면 우리 기업들은 선단공정용 첨단장비를 개발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겁니다. 개발해 봐야 살 고객이 없는 장비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게 되면 앞으로 우리 반도체 장비 기술은 영영 미국의 거대 반도체 장비 업체들을 따라가 보지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이 노리는 게 바로 그 점입니다. 한국 반도체 장비가 미국을 따라잡지 못하게 처음부터 길을 막는 거죠. 우리 기업들이 반도체를 생산할 때 미국의 반도체 장비 회사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그런 환경을 만들려고 하는 노림수입니다.

늘어만 가는 미·일 반도체 장비 업체의 대중국 수출액

다른 측면에서 바라 볼까요? 우리의 반도체장비 수출액은 미·중 반도체 다툼에 영향을 줄 정도로 큰 액수일까요? 지난해 ASML이 중국에 판매한 전체 장비 금액이 약 76억 달러입니다. 미국 반도체장비 업체인 AMAT는 지난해 중국에 72억 달러어치 장비를 팔았습니다. 우리나라 모든 반도체장비 업체들이 전 세계 반도체 팹에 판매한 수출액(77억 달러)이 ASML이나 AMAT 같은 대형 반도체 업체 하나가 중국에 판매한 액수와 비슷합니다.

미국이 굳이 우리나라 반도체장비 업체들의 중국 수출을 통제하려 한다면 미국 반도체 회사의 대중국 수출부터 줄이라고 요구해도 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자국 반도체장비 업체의 중국 수출을 제대로 통제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에도 미국과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회사들의 대중국 수출이 크게 늘었다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보도 ⓒ SCMP 보도화면

 
외신 보도에 따르면 AMAT의 직전 분기 매출은 67억 1천만 달러인데, 그중 중국 매출이 30억 달러로 전체 매출의 45%를 차지했습니다. 2023년 27%에서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겁니다. 세계 3위의 미국 반도체 장비 회사인 LAM 역시, 직전 분기 매출이 37억 6천만 달러인데 그 중 중국 비중이 40%입니다. 2023년의 26%에서 크게 늘어난 겁니다. 미국 회사들만 그럴까요? 세계 4위이자 일본 최대 반도체 회사인 TEL의 직전 분기 매출은 4636억 엔이고, 그 안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46.9%로 사상 최대치입니다. 우리 반도체 장비 업체들을 제외하고 모두 중국에 더 많은 반도체 장비를 팔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AMAT의 연 매출의 3분의 1도 안 되는 우리나라 전체 반도체장비 업체의 수출을 통제하려고 한다면 너무한 것 아닌가요? 심지어 우리는 인위적인 수출 규제가 아니더라도 이미 중국으로의 반도체 장비 수출과 점유율이 줄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입장에서는 수출 통제를 요구하는 바이든에게 '우리는 대중국 수출이 줄고 있어서 기존에 있는 규제도 없애야 할 판'이라고 말해도 되는 상황입니다.

중국에 대해 우리가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를 하면 안 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ASML이 중국에 장비를 판매하지 않으면 중국은 대체할 장비가 없습니다. AMAT나 LAM 역시 특정 공정용 장비의 경우는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어서 대체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년부터 중국이 미국의 추가 수출 통제 이전에 더 많은 반도체 장비를 확보하기 위해 수입을 크게 늘렸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반도체 장비는 시간과 비용이 채워진다면 대체가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 업체의 반도체 장비는 대부분 선진 반도체 장비를 참조해서 만든 후 보다 저렴하게 내놓은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경쟁 제품이 있다는 이야깁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수출 통제가 중국 입장에서는 그렇게 치명적이지는 않습니다. 대신 중국이 우리의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조치에 대한 보복으로 반도체 소재나 부품에 대한 수출 통제를 한다면 우리 반도체 산업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지난 2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내놓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수출입 구조 및 글로벌 위상 분석"이라는 보고서에 보면 "재료 및 부분품의 경우 타 반도체 산업 분야에 비해 품목이 다양하고, 특정 국가나 기업에 의존하는 비중이 확연히 높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며 금액상으로 우리나라가 가장 많이 수입해 오는 국가는 중국이라고 밝혔습니다.
 

반도체 재료 및 부분품 중 대중 수입의존도가 높은 것들입니다. 중국 의존도가 97%에 이르는 것도 있습니다.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그중에서도 슈퍼 캡, 아산화질소 같은 경우는 중국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90%가 넘고, 다이실레인디실란, 나노 패턴용나노패턴용 웨이퍼, 현상제 같은 경우도 80%가 넘었습니다. 중국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91%인 요소수 하나를 중국이 수출 통제했을 때 우리가 겪었던 그 혼란을 기억하나요? 중국이 우리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반도체 소재나 부품 몇 개만 수출 통제를 한다고 해도 우리 반도체 산업은 대혼란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 오면 대통령님이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님, 미국의 요구대로 우리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에 대한 통제를 합의해 주면 안 됩니다. 그건 안 그래도 줄어들고 있는 우리 반도체 장비의 수출을 막을 뿐 아니라, 향후 첨단 반도체 장비의 개발을 가로막는 족쇄가 될 것입니다. 반도체 소재와 부품을 무기로 한 중국의 보복 역시 우리 반도체 산업에 두고 두고 큰 짐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영업사원 1호라고 하셨나요? 영업사원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이런 겁니다. 대한민국의 영업에 방해가 되는 경쟁국가의 무리한 요구를 협상을 통해 저지하는 일 말입니다. 반도체 업계의 기대와는 반대로 행여 대통령님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그날, 대통령님은 우리 반도체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될 것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신중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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