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08 10:56최종 업데이트 24.05.0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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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에서 열린 임금체불 신고센터 출범식에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등이 현판을 제막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직장인이 가장 기다리는 날은 월급날이다. 매달 고정적으로 들어가야 할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면 월급은 더 중요하다. 일을 했는데도 월급을 받지 못한다면 그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임금체불은 중요한 문제다. 기업이나 정부는 임금체불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임금체불이 역대 최대로 늘어났다. 시급하게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임금체불이 급증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2011년 1조 874억 원이었던 체불액은 계속 증가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다소 낮아졌는데 2023년 1조 7845억 원으로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회적 우려가 커지자 임금체불을 예방해야 할 고용노동부가 올해부터 체불 사업주를 엄중 단속한다고 밝혔지만 이미 2024년 1분기 체불액이 5718억 원으로 임금체불이 가장 많았던 작년 1분기보다 40.3%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언론이 임금체불 정도가 심상치 않다고 반복해서 지적했으나 정부가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결과이고, 엄밀하게 말하면 기업의 불법 경영에 대한 정부와 담당 부처의 직무유기이다.
 

연도별 임금체불 액수 (단위 : 억원) ⓒ 고용노동부

 
1인당 평균 체불액 608만 원

지난해 임금체불을 신고한 노동자는 27만 5432명이었다. 적지 않은 인원이다. 그런데 임금체불 규모보다 더 큰 문제는 1인당 체불금액이다. 윤석열 정부 2년 동안 1인당 평균 체불액은 608만 원이었다. 이는 2011년부터 2021년까지의 1인당 체불액인 460만 원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다.


임금체불액이 커졌다는 것은 임금체불이 소규모 기업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갈수록 대범해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해 온 법치주의가 유독 사용자의 불법 앞에서는 멈춰져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

정부는 다음을 주장할 수 있다. 사업주가 임금을 떼먹더라도 정부가 임금채권 보상기금을 이용해 임금을 떼인 노동자에게 보상하므로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이 경우 노동자의 피해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임금채권 보상기금으로 보상하는 대지급금은 3개월치의 임금과 3년치의 퇴직금만 지급하는 상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이상의 체불이 발생한 개별 노동자는 임금과 퇴직금을 늦게 받는 것만이 아니라 일부만 보상받게 된다.

정부는 이런 주장도 할 수 있다. 근로감독관들이 최선을 다해 사용자가 체불임금을 지급하도록 지도해결을 한다고. 지도해결이란 근로감독관이 사법처리 전 사용자를 설득하여 밀린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것인데, 경우에 따라 사용자와 노동자가 적당한 금액으로 합의하기도 한다. 2023년 전체 임금체불액 중 63.8%를 지도해결로 처리했다. 이는 사전 예방만 잘했어도 임금체불이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히려 문제는 지도해결하지 못해 사법처리한 경우이다(2023년 6869억 원). 이 중 사용자들로부터 회수한 금액은 30%도 채 되지 않는다. 급기야 작년에는 임금채권 보상기금의 수입보다 지출이 더 많아 기금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관대한 처벌이 문제
 

1월 22일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는 위니아전자지회·위니아딤채지회와 함께 광주광역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유위니아 임금체불 사태와 관련해 박영우 회장 구속 수사를 촉구했다. ⓒ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임금체불의 원인은 사용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 때문이다. 임금체불은 직원의 노동력을 무상으로 사용한 것이다. 노동력을 도둑질한 것과 다름없는 행위이다. 금액도 1인당 608만 원으로 적지 않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 2년 동안 임금체불로 구속된 사용자는 13명(2022년 3명, 2023년 10명)에 불과하다. 2년 동안 사법처리 대상이 된 임금체불이 최소 1만 923건이니 임금체불로 구속될 확률은 0.12%로서 1000명 중 1명에 불과한 셈이다.

사업주는 폐업 후 버티기만 해도 체불임금을 갚지 않아도 되니, 셈이 빠른 사용자는 폐업 신고를 해버리고 다른 사람 명의로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업주의 임금체불에 대해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까지 관대한 것일까? 이는 검찰이 유독 경제인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사법정의를 공정하게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찰과 사법부는 사업을 하다 보면 어려울 수 있고, 의도하지 않게 임금을 체불할 수 있으니 이에 대해 너무 무겁게 처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 결과 고용노동부가 임금체불로 송치하더라도 검찰이 구속 수사할 확률은 낮고, 재판에서 실형을 받는 경우가 극소수에 그치고 있다.

입법부도 안이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1월 임금채권보장법 일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그 내용을 보면 사업주가 임금체불을 해결할 수 있도록 융자 조건을 완화하는 것이었다. 임금체불을 예방할 수 있는 대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윤석열 정부는 임금체불을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근로감독정책단을 지난해 2월 해체했다. 또한 두 차례에 걸쳐 사용자 불법행위 관련 조항 141건에 대해 처벌·규제를 완화하는 등 사용자 감싸기 정책을 보여주었다. 국가를 책임지는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의 태도를 보았을 때 임금체불은 노동자의 걱정이지, 사업주가 걱정할 일은 없는 상황이다.

의외로 쉬운 임금체불 근절 방법

임금체불을 근절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어렵지 않다. 사용자에 관대한 불공정한 법 적용을 중단하면 된다. 근로기준법 제109조를 개정하여 임금체불로 기소된 사용자 가운데 정부가 노동자에게 대신 지급한 대지급금을 갚지 않은 경우 벌금형을 없애 징역형만 가능하게 하면 된다.

죄를 지었으면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고 기업인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래야 임금체불을 원천적으로 줄일 수 있고 임금채권 보장기금의 건전성도 확보할 수 있다. 늘어난 기금은 임금이 체불된 노동자에게 일부가 아닌 임금 전액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는 데 사용하면 된다.

이처럼 어렵지 않은 해결 방안이 있었으나 그동안 미뤄온 것은 임금체불을 범죄로 바라보지 않고 잘못을 저지른 기업주를 옹호해온 왜곡된 시각 때문이었다. 다가올 22대 국회는 임금체불로 고통 받는 국민들을 생각해 임금체불을 예방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 개정을 진지하게 검토해 주길 바란다. 
 

정흥준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소셜 코리아 편집위원) ⓒ 정흥준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정흥준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노사관계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주로 강의하며 간접고용 비정규직과 노동조합 등에 관해 연구합니다. 주요 저서로 <오줌인형 잡기> 등 6편의 편저가 있으며 국내외에서 50여 편의 논문을 출판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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