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10월 24일 데이오프 투쟁
아이슬란드 여성 인권 발전 역사

1975년 아이슬란드 뒤흔든 '월차 투쟁', 그 광장에 서다

임금평등을 촉구하는 아이슬란드 여성들의 ‘데이 오프(Women's Day Off, 모든 여성의 월차 투쟁)’는 1975년 한 번으로 멈추지 않았다. 2005년, 2010년, 2016년, 2018년에도 각각 10월 24일에 대규모 ‘데이 오프’가 진행됐다. 사진은 2018년 10월 24일 ‘데이 오프’ 모습이다.

1975년 10월 24일, 금요일의 단체 월차. 그것은 모닝콜이었다. '얼음의 나라'를 깨웠고, 그 후 아이슬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성평등한 나라로 발전했다.

그 날,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성별 임금격차에 항의하기 위해 단체로 '데이 오프(Women's Day Off, 모든 여성의 월차 투쟁)'를 벌였다. 가사 노동을 포함하여 모든 일을 손에서 놓았다. 여성단체 '빨간 스타킹'의 아이디어였다. 파업은 당시 불법이었기에 더 많은 여성들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는 방법으로 '데이 오프'를 선택했다.

아이슬란드 여성 90%가 참여했다. 수도 레이캬비크에만 2만 5000명에서 3만 명의 여성이 모였다. 당시 아이슬란드 인구가 22만 명이었음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다. 여성들이 일을 하지 않자 사회가 마비됐다. 유치원은 문을 닫았고 초·중·고교는 휴교했다. 큰 가게, 작은 가게 할 것 없이 문을 걸어 잠갔다. 조판공 대부분이 여성이었기에, 신문도 찍어낼 수 없었다.

유독 소시지가 많이 팔린 날이기도 했다. 요리 경험이 적은 남성들이 너나없이 소시지를 사다가 아이 식사를 챙겨줬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는 남성 직원들을 위해 고용주는 사탕, 종이, 연필을 사기도 했다고 한다. 하루종일 아이를 도맡아 돌보게 된 남성들은 이 날을 '긴 금요일'이라 불렀다.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참지 않는다"

2021년 10월 24일, '데이 오프'를 기념하는 '페미니스트 워크' 행사가 여성권리협회 주최로 열렸다. 여성권리협회 사무실이 있는 건물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당시 언론이 "신들도 여성의 편인 것 같았다"고 1975년 그 날을 전했던 것처럼, 이 날도 날씨는 맑았고 햇볕은 부드러웠다. 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 산책하듯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온 엄마, 그리고 선 굵은 외모의 할머니들까지 참가자들 면면은 다양했다.

2021년 10월 24일, ‘데이 오프’를 기념하는 ‘페미니스트 워크’ 행사가 아이슬란드 여성권리협회 주최로 열렸다. 에를라 훌다 할도스도띠르(Erla Hulda Halldorsdottir) 교수가 참석자들에게 여성 인권 투쟁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 앞에 에를라 훌다 할도스도띠르(Erla Hulda Halldorsdottir, 이하 에를라) 교수가 나타났다. 아이슬란드 대학교수인 그는 마이크를 잡고 1975년 '데이 오프'의 의미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불평등을 참아내지 않았다"고 강조하며 그가 소개한 인물은 '데이 오프' 이전부터 세상과 맞서 싸운 한 여성이었다.

"발보르그 시구르다르도띠르(Valborg Sigurðardottir)는 1941년 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했습니다. 당시 수석 졸업생 유학 장학금 제도가 있었는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장학금을 주지 않았죠. 큰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발보르그는 장학금을 받아 미국 유학을 다녀왔고 귀국해서 유치원을 설립합니다. 이렇게 역사를 되짚어보면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고 변화가 생기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1975년 데이 오프 이후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1975년 '데이 오프' 당시 많은 여성들은 '유치원을 늘려라'는 손팻말을 들었다. 당시 선언문에는 '왜 여성들을 위한 '데이 오프'가 필요할까요?'란 질문에 "유치원이 현대 사회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란 것을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하지 않으려는 권위적인 남성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란 답이 나와 있다. 현장에서 마이크를 건네 받은 락그헤이두르 크리스탸운스도띠르(Ragnheiður Kristjansdottir) 아이슬란드 대학 교수는 "유치원, 육아휴직 등은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든 복지체계다, 성평등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성평등 복지체계를 만드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페미니스트 워크' 참가 일행은 아이슬란드 의회(Alpingi, 알씽기)로 향하기 시작했다.

초대 국회의원 중 여성 의원은 1명이었다. 21대 국회에서는  총 57명 으로 증가했다.

아이슬란드는 파업과 금융위기 등을 거치며  50% 이상 의 국회의원을 배출하지만, 한국은 아직  25%에도 미치지 못한다.

아이슬란드는 2012년  장차관 전원이 여성 이었으며, 한국은  문재인 정부 시기   크게 증가했다.

"숫자가 변화를 만든다"

의회 정문 앞 오른편, 한 여성의 전신 동상이 있었다. 1922년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돼 이듬해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한 잉기뵤르그 H. 뱌르나손(Ingibjorg H. Bjarnarson) 동상이다. 다시 마이크를 쥐고 에를라 교수는 "1956년에야 여성 화장실이 의회에 처음 만들어졌다"면서 당시 의회가 얼마나 성차별적인 구조였는지 설명했다. 그리고 잉기뵤르그의 말을 전했다.

"숫자가 변화를 만든다. 의원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는 이런 대접을 받지 않을 것이다."

1975년 '데이 오프'는 여성 정치인을 크게 증가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특히 1980년에는 여성 대통령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Vigdis Finnbogadottir)가 선출됐다. 세계 최초의 민주적으로 선출된 여성 대통령으로서 그는 "10월 24일 '데이 오프'가 없었다면 나는 당선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1983년 여성으로만 구성된 여성당(Women's Alliance Kvennalistin) 후보자들이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됐고, 그 해 전체 의원의 5%였던 여성 의원은 15%로 급증했다.

이런 과정에 대해 마그네아 마리노스도티르(Magnea Marinosdottir) 아이슬란드 복지부 수석고문은 2017년 11월 세계경제포럼(WEF)에 기고한 글에서 "다른 북유럽 국가에서 여성 대표가 꾸준히 증가한 것과 달리 아이슬란드는 남성의 정치적 지배가 여성의 집단행동과 연대에 의해 깨졌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그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어 온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투쟁의 목표다, 여성이 권력을 행사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 9월 있었던 아이슬란드 총선에서 전체 63석 중 여성이 차지한 의석은 30석(47.6%)에 이른다. 행사에 참석한 브린힐두르 헤이다르(Brynhildur Heiðar) 여성권리협회 사무총장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성이 멈추자 사회가 멈춘다는 걸 학습했습니다. 터닝포인트였죠. 더 중요했던 건 여성이 정치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다는 겁니다. 시위를 준비하고 운영하는 일이 결국 정치를 준비하는 일이었던 거죠. 이후 여성들은 선거에 뛰어들었습니다. 여성이 정치에 들어갔고 공직에 취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근본적인 변화였죠. 사회를 지배하는 방식을 바꾸는 일이니까요."

그렇게, 여성이 바뀌는 대신 세상이 바뀌었다.

'데이 오프' 이후 여성들이 아이들을 맡기고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유치원법'이 의회를 통과했다. 2003년에는 여성 뿐 아니라 남성도 육아휴직을 각각 3개월씩 쓸 수 있도록 했으며, 2013년에는 50인 이상 기업 이사회에 최소 40% 이상의 여성이 포함되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그리고, 아이슬란드는 2018년 세계 최초로 임금차별금지법(동일임금인증제)을 도입했다. 그 해에도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1975년 '데이 오프' 참가 여성들이 모였던 렉자르토르그(Lækjartorg) 광장에서 "여성을 바꾸지 말고, 세상을 바꿔라"고 외쳤다.

2016년 10월 24일 ‘데이 오프’

"아직 11%는 평등하지 않으니까"

1975년 10월 24일은 아이슬란드 역사의 터닝 포인트(전환점)가 된 날이다. 그 날,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성별 임금격차에 항의하기 위해 '데이 오프(Women's day off, 모든 여성들의 월차 투쟁)'를 벌였다. 아이슬란드 여성의 90%가 참여했고, 그러자 "사회가 멈췄다". 곧이어 여성 연합당이 탄생했고 여성들의 의회 진출이 급속도로 증가했다. 그 날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이슬란드 현지에서 물어봤다.

그 곳에서 우리는 '페미니스트 워크'에서 만난 두 명의 젊은 여성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친구 사이였다.

오마이뉴스 X 시사인 X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공동취재팀은 2021년 10월 24일 ‘페미니스트 워크’ 행사에서 만난 아이슬란드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왼쪽은 루트 에이나스도띠르(Rut Einarsdottir). 그 옆에 있는 벤니 헌누도티르(Venny Honnudottir). 두 사람은 친구 사이다.

루트 에이나스도띠르(Rut Einarsdottir, 29세)는 "아직 만족할 때는 아닌 것 같다, 중간급 여성 관리자는 많지만 여성 CEO는 극히 드물고 그 유리천장을 뚫는 게 정말 어렵다"면서 "아이슬란드가 가장 성평등을 이룬 국가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슬프다"고 했다. 이어 그는 "이게 최선이라면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떨까 싶어서다"라면서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은 아이슬란드 내에서도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벤니 헌누도티르(Venny Honnudottir, 30세)도 "내 딸이 자라서 저녁에 집에 들어갈 때를 생각하면 불안하다"면서 "언제까지 이런 걱정을 해야할까 생각한다"고 친구의 말에 공감을 표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래도 나쁘지만은 않다. 우리는 더 열심히 노력할 것이고 퇴보하지 않을 것이니까"라고 강조했다. 그 말을 루트가 이어받았다. 그는 "1975년 10월 24일을 기억하려는 오늘처럼, 지금까지 싸워 온 여성들이 이룬 것을 기억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며 "그래야 우리가 어디까지 왔고 어디까지 가야 할지 볼 수 있다, 계속 기억하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브린힐두르 여성권리협회 사무총장이 우리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각종 세계적 지수에서 아이슬란드가 성평등으로 1위를 한 지 10년이 넘었어요. 그들의 계산으로 우리는 89% 성평등을 이뤘다고 합니다. 하지만 100%가 아니라면 아직 평등한 게 아닙니다."

1975년 10월 24일 ‘데이 오프(Women's Day Off, 모든 여성의 월차 투쟁)' 현장 모습. 아이슬란드 여성 90%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 여성들을 위한 '데이 오프'가 필요할까요?

[전문] 지금도 유효한 1975년 10월 24일 선언문

1975년 6월 20일과 21일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여성 회의(Women's Congress)는 여성이 해온 일의 중요함을 보여주기 위해, 다가오는 유엔의 날인 10월 24일 하루 '데이 오프'를 실시할 것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왜 이러한 제안이 모든 연령의 여성들과 정당들이 모인 의회에서 발의되고 가결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많지만 여기에 먼저 몇 가지를 말하겠습니다.

  • 누군가가 형편없을 정도로 보수가 적은 직업을 필요로 할 때, 그 구직 광고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통상과 무역에서 여성의 평균 임금은 같은 직종의 일을 하는 남성의 평균 임금의 75%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아이슬란드 무역연합회 회의(Icelandic Trades Union Congress) 주요 조합 단체에는 여성 대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의 월평균 소득 차이가 아이슬란드 크로나로 30,000 (한화 약 270,000원)정도이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농부의 아내들은 농부 노조의 정식 회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주부인 여성들에게 흔히 "가사노동은 일이 아니라 그저 하우스키핑에 (가사유지) 불과"하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보육원이 현대 사회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하지 않으려는 권위 있는 남성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농장에서 농부 부인의 노동 기여도는 아이슬란드 크로나로 1년에 175,000 (한화 약 1,600,000원) 이상으로는 인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취업지원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가 개인의 교육 수준이나 역량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주부의 가사노동 경력은 노동 시장에서 그 어떤한 가치로도 고려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지역사회에 대한 여성의 기여도가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가오는 10월 24일에 '데이 오프' 함으로써 여성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사회에서 우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국제 여성의 해에 이 '데이 오프'의 날을 기념할 만한 날로 만들기 위해 함께 연대합시다.

평등, 발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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