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영조는 사도세자를 죽여야만 했을까

250년 전, 곡식을 담아 두던 뒤주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도세자. 아버지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나무 상자에 가둬 굶어 죽게 한 일은 조선왕조 5백년 역사를 통틀어 가장 극적인 사건으로 꼽힙니다.

이런 이유로 사도세자의 죽음은 TV 드라마 소재로 자주 다뤄지며 잘 알려졌지만, 가장 큰 궁금증은 명확히 풀리지 않았습니다. 왜 아버지는 아들을 죽여야만 했을까.

최근 <권력과 인간>을 펴낸 정병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지난 22일 생중계된 <오마이뉴스> 저자와의 대화에서 그동안 널리 알려진 사도세자의 당쟁희생설과 사도세자가 미쳐서 죽임을 당했다는 광증설을 반박하며, 사도세자가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먼저 정 교수는 '영조실록' 등 사료에 사도제사가 갇힌 뒤주를 '어떤 물건'이라는 뜻의 '일물'로, 영조가 ‘임금을 그만두겠다’고 하는 말을 '차마 듣지 못할 하교'라는 뜻의 '불인문지교'라고 표현한 것을 근거로 들며 남아 있는 사료의 숨겨진 뜻까지도 정확히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병설 서울대 교수] "실록에는 '임금이 전위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안 적습니다. '임금께서 불인문지교, 차마 듣지 못할 하교를 하셨다' 그런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 것을 맥락을 고려해서 읽어 나가야 하는데 그런 것을 세심하게 읽지 않아서 엉뚱한 해석들이 마구 나온 겁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사도세자가 노론의 모함을 받아 희생됐다는 학설은 사료를 잘못 해석해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정병설 서울대 교수] "노소론 대립을 계속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영조 초에 권력은 소론이 쥐었습니다. 정조 초기의 권력은 노론이 쥐었죠. 정조가 그렇게 노론을 미워하면 왜 정조 조정에 노론이 득실득실해요?

이어 정 교수는 '한중록'과 '영조실록' 등 사료를 해석해 보면 사도세자의 정신적인 문제가 죽음과 직결되는 문제인 것은 맞지만, 조선시대에는 미친사람을 죽이지 못하게 돼 있었다며 직접적인 사인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정병설 서울대 교수] "발병하면 상성이라고 했습니다. 병이 생기면, 발작을 일으키면 이성을 잃는다고 했어요. 조선시대에서도 미친 사람은 죽이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어떻게 미쳤다고 해서 아버지가 아들을 죽일 수 있겠어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죠. 한중록에도 그렇게 쓰지 않았어요."

당쟁희생설과 광증설을 거부한 정 교수가 내세운 주장은 바로 사도세자의 반역. 아들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폐위할 때 발표했던 '폐세자반교'를 보면 영조가 사도세자의 생모인 선희궁으로부터 사도세자의 역모 가능성을 전해듣고 사도세자를 폐위시키고 뒤주에 가뒀다는 것입니다.

[정병설 서울대 교수] "선희궁의 말은 '내가 죽는 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성군까지도 위기에 처해 있기에 고민을 했고 고민의 결과 이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나옵니다. '폐세자반교'의 결론을 말하면 영조가 처분을 내린 것은 아들이 미쳤기 때문에 처분을 내린 게 아니라 아들이 자기를 위기에 빠뜨리려고 했기 때문에 죽인 겁니다."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을 통해서도 ‘사도세자가 칼을 들고 영조가 있던 궁궐로 향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정병설 서울대 교수] "계속 아버지 욕하는 맥락에서 칼을 들고 가서 '아무리나 하고 오련다'를 다르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저는 이 맥락은 다르게 읽을 수 없다고 봅니다. '칼을 들고 가서 아버지를 죽여 버리고 싶다' (사도세자가) 수구를 통해 윗대궐로 갔다는 것은 '칼을 들고 (영조를) 죽이러 갔다는 거죠'."

강연 내내 사료 분석과 고증의 중요성을 강조한 정 교수는 실제 역사적 배경을 알면 알 수록 사극을 더 못 본다면서 인기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잘못된 고증을 예로 들기도 했습니다.

[정병설 서울대 교수] "사도세자가 영조한테 통정대부들이 다는 관자를 붙이고 갔다가 박살이 나죠. '왜 너 계급장 엉뚱한 거 붙이고 와? 세자가' 관자라는 것은 작고 무늬가 없을 수록 고위층이 됩니다. 작고 무늬없는 민옥 관자가 임금이나 세자가 붙이는 관자입니다. 김수현이 큰 관자를 달고 나오니 내가 영조 마음이 돼서 '저놈이 임금이라면서 금관자를 붙이고 와? 죽일 놈' 그래서 제가 사극을 못 봐요."

정 교수의 저서 <권력과 인간>에는 사도세자의 죽음 뿐만 아니라 이를 둘러싼 영조, 정조 등 절대 권력자의 인간적 고뇌와 내적 갈등. 그리고 영정조 시대 궁궐 속 사람들의 삶과 욕망이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권력과 인간> 정병설 저자와의 대화 강연 동영상은 <오마이뉴스> 홈페이지 TV면과 아이튠즈 팟캐스트 '저자와의 대화'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박정호입니다.

ⓒ박정호 | 2012.03.23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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