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자유이용권’, 근로기준법 59조

#임환학(52, 버스해고노동자)
“하루에 일곱 바퀴를 돌았거든요. 보통 한두 시간에서 세 시간 정도 걸리는 노선이에요. 하루에 20시간 정도 운행합니다. 제일 힘든 건 졸음입니다. 몽롱한 상태로 다니는 거죠. 식사시간이 15분, 우리가 뭐 해병대도 아니고... 매일 씹다 만 채로 나가죠.”

#서현아(39, 사회복지사)
“네 명의 직원이 열 명의 중증장애인을 돌보다보니 하루 평균 11.5시간, 주 평균 60시간 정도 일을 해요. 장애인 분들이 생활하는 공간에 항상 같이 있기 때문에 사실상 쉬는 시간은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 지난 10년 동안 직원 수는 전혀 변하지 않고, 연장근무를 하지 않으면 정부나 사회가 요구하는 부분과 장애인들의 욕구를 반영하기 힘듭니다.”

#김대원(29, 웹콘텐츠PD)
“예전에 방송국에서 일할 땐 일주일 동안 편집실에서 안 나왔어요. 그래도 퇴근하자는 전화는 안 오더라고요. 그렇게 고생해서 방송 하나가 나가면, ‘수고했다. 이제 너도 이 고비를 넘었으니 한 단계 성장한 거야’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속으로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텐데 왜 이렇게 하지?’란 생각만 들었어요.”

근로기준법 59조가 규정하고 있는 ‘근로시간 특례업종’ 종사자들의 이야기다.

근로기준법 59조는 한국산업표준분류 기준 26개 업종을 근로시간 특례업종으로 지정하고 있다. 이 조항 탓에 해당 업종의 근로자대표와 사용자가 서면합의만 하면, 주 52시간의 최대 근로시간을 초과해 제한 없는 연장근로가 가능하다. 주 40시간의 법정근로시간(근로기준법 50조)과 주 12시간 이내의 연장근로시간(근로기준법 53조)도 모자라 26개 업종 종사자들에게 합법적으로 ‘무제한 노동’을 허용한 꼴이다. 현재 400만 명 안팎의 노동자들이 이 조항으로 인해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59조에서 규정한 특례업종에 대해 “공익의 필요성이라든지 일의 성격상 연장근로를 초과할 수밖에 없는 예외적 업종”이라고 설명했다. ‘공중 불편 방지’와 ‘안전 도모’를 위해 사실상 무제한 초과노동을 허용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근로기준법 59조는 오히려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버스 사고(육상운송업)의 경우 과노동과 그에 따른 졸음운전 등이 그 원인이다. CJ E&M 이한빛 PD의 사망(방송업)과 집배원들의 잇따른 자살(우편업)도 마찬가지다. 김형렬 가톨릭대학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특례제도는 도입 취지와 전혀 맞지 않는 업종에게 적용되고 있다”면서 “오히려 노동시간을 더 제한해야 되는 업종을 장시간 더 일하도록 법적으로 허용해주고 있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장시간 노동의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가운데 지난 7월 3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소위에서 여야가 근로시간 특례업종 26개를 10개 이하로 축소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특례업종으로 유지되는 업종은 ▲육상운송업(노선버스업 제외) ▲수상운송업 ▲항공운수업 ▲기타운송 관련 서비스업 ▲보건업 ▲사회복지서비스업 ▲영상·오디오기록물 제작 및 배급업 ▲방송업 ▲전기통신업 ▲하·폐수 및 분뇨처리업 등이다. 10개 업종은 공공적인 성격이 강하고 정확한 노동 시간을 규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특례업종으로 유지되었다.

이번 합의에 대해 노동계 및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국회 환노위 소속)는 “그러면 사고가 날 때마다 이게 위험하니까 이번에는 이 업종을 뺍시다, 다음에는 이 업종을 뺍시다, 이렇게 할 것인가”라면서 “근로기준법 59조가 정말 어떤 타당성을 갖는지, 나머지 10개 업종이 그대로 존속돼야 하는지 전면적으로 다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획: 조민웅 기자 / 제작 : 안민식·안정호·조민웅 기자 /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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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웅 | 2017.08.10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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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구실하려고 애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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