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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8일 김대중 대통령은 2009년까지 미국 보잉사의 F-15K 전투기 40대를 42억2천8백만 달러에 구입하는 차기 전투기 사업집행 승인안을 재가했다.

하지만 지난 3월 F-X 시험평가단장이었던 조주형 대령이 'F-X사업 외압설'을 제기하며 불거진 'F-X사업 불공정 논란'은 여전히 시원스런 해답을 찾지 못한 가운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내부고발자랄 수 있는 조 대령은 군사기밀 누설과 공무상 비밀누설 특정범죄 가중처벌법(뇌물수수)위반 등의 혐의가 적용돼 1차 재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감옥으로 그를 찾아가 만나 보았다... <편집자 주>


▲ F-X시험평가단장 시절 조주형 대령(오른쪽 두번째 양복차림)은 F15K를 비롯 라팔, 유로파이터, 수호이 등을 손수 조종해 본 국내 최고의 전투기 전문가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지난 7월 16일 오후 1시 <오마이뉴스> 기자는 조주형 대령의 부인 문옥면 여사와 함께 조 대령이 수감되어있는 계룡대 공군헌병대 영창인 '새사람이 되는 집'을 찾았다. 80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공군헌병대 영창은 조 대령이 독채로 사용하고 있었다.

하루에 한번 30분 정도 면회가 가능하다는 공군헌병대 영창은 기존에 보아오던 경찰서 유치장과 매우 흡사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도심이 아닌 공기 맑고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다는 것과 면회 시 헌병이 수감자와 면회자가 나누는 대화를 모두 기록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곳의 헌병들은 조 대령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며 특히 기자들의 방문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심지어는 조 대령과 평소에 친분이 있던 몇몇 국회의원들의 위로방문조차 국방부 차원에서 진상조사를 벌였으며, 이후 방문객들에 대한 신원 파악은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2중 3중으로 쳐있는 철책을 지나 3평 정도 되는 면회실에 도착하니 철창과 유리벽이 조 대령과 기자를 가로막고 있었다. 조 대령은 영창에 갇힌 신세지만 재판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의 신분이기 때문에 대령 계급이 달린 군복을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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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대령과의 첫 만남

▲ F-X평가단장 시절의 조주형 대령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철창과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본 그의 첫인상은 한동안 전국을 'F-X사업 외압 논란'으로 들끓게 했던 투사의 모습이 아니었다.

맘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라고 할까. 기자를 맞이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자신의 집을 찾아 온 손님을 기분 좋게 맞이하는 구멍가게 아저씨였다. 쇠창살 사이로 보이는 그의 해맑은 얼굴을 대하자니 쉰 하나라는 나이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의 얼굴 어디에도 불명예 제대를 목전에 둔 공군 대령의 암울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속으로 우는 겁니다"

그는 '최근 마음고생이 심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금보다 행복한 적이 없었다"면서 말문을 열였다.

"내가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고 광고할 일 있나요. 저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고 지금도 제가 한 행동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습니다. 단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취임한지 얼마 안돼 생고생을 해야했던 공군참모총장님과 저로 인해 새로운 삶을 살게된 제 식구들이죠. 하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렇게 속으로 우는 수밖에 없지요."

조 대령은 재판결과에 대해서도 이미 예상하고 있었고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그가 1차 공판 모두 진술에서도 밝혔듯이 후손에게 강한 공군을 물려주고 싶었던 소망이 차기 전투기로 F-15K가 최종 결정되면서 물거품이 됐다는 것이다.

"앞으로 F-15K의 레이더 성능 개량과 운영 유지비로 막대한 경비가 소요될 것입니다. 42억불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앞으로 이 모든 것을 국민의 세금을 충당해야 하는데 결국 자주국방, 자주적인 영공방위로 가는 길은 요원해 보입니다."

조 대령의 자주국방에 대한 신념은 지난 6월 29일 있었던 법정 최후진술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최신 항공기술을 이전해 준다는 것에 대해 최동진 획득실장이 '우리의 항공기술이 중학교 수준 밖에 안되기 때문에 고급기술은 벅차다'라고 민족적 비하 발언을 한 것은 기술 이전 분석과 협상을 주도했던 ADD와 국내 항공업계 과학자들을 형편없이 무시한 것입니다.

게다가 그러한 고급기술보다는 부품제작 물량을 더 받는 것이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사대주의적 발상은 기술력을 높여 국가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하는 우리나라의 국민으로서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언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냉철하게 따져보면 식민지라는 것이 따로 없습니다. 일제처럼 나라를 통째로 다스리지 않더라도 경제적, 군사적으로 통제할 수 있고 기술적으로 종속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식민지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 조대령 집 거실 한켠에는 역대 공군참모총장이 수여한 공로패와 상장들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수여한 표창장, 김대중 대통령이 수여한 훈장 등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다.
ⓒ 오마이뉴스 공희정

"최고의 전투기는 유로파이터"

조 대령은 지난 1993년부터 F-X사업에 참여 F15K를 비롯해 라팔, 유로파이터, 수호이 등 F-X사업에 뛰어든 최고의 전투기들을 직접 조종해 본 사람으로 일찍부터 공군 내 중요사업에 관여하면서 국내 방위산업의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공군 최고의 전투기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1975년 공군소위로 임관, 1983년까지 전투기를 몰았지만 조종사보다 연구직을 택해 미국 해군대학원에서 전자공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전투발전단 전쟁연구실장, 체계분석실장, 시험평가실장 등 연구분야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F-X사업은 첨단 전투기에 대한 기술이전을 통해 군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조 대령은 F-X사업초기 유럽의 차세대 전투기로 개발 중이던 유로파이터에 마음을 두고 있었다고 밝혔다. 조 대령은 유로파이터의 경우 개발단계부터 공동 참여하기 때문에 한국의 항공기술력을 크게 향상시킬 것이라는 판단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로파이터는 자체 개발계획이 너무 길고 가격이 비싸 차기 전투기로 선택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 다음 매력적인 전투기는 라팔, 하지만 이 기종도 가격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라팔이 제안 가격을 터무니없이 다운시켜 협상에 나섰을 때 믿어지지 않았단다.

"라팔은 거의 벌거벗고 한국과 협상에 나선 겁니다. 기술이전 또한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던 거죠. 우리가 요구하는 최상의 기술은 모두 제시되어 있었죠. 미국에 종속적이었던 군사기술의 다변화를 꾀할 수 있었습니다. "

그러나 그의 소박한 바람은 물거품이 됐고 '가격도 성능도 뛰어나지 않다'는 F-15K가 차기 전투기로 선정됐다.

▲ 조 대령(앞줄 가운데 양복차림)은 32년간 공군에 복무한 장교이자 지난 1993년부터 FX사업에 참여한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보잉의 가격인하는 '숫자놀음'에 불과

조 대령은 보잉사가 여론에 밀려 발표한 2억불 가격인하는 '숫자놀음'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는 현실적으로 이미 확정된 본체나 엔진, 옵션 등에서 가격을 뺀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어 실질적으로 금액을 깎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42억불이라는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사업이기 때문에 대금 지불 시기나 전력화 시기 조정 등을 통해서도 금액이 더 추가될 수도, 축소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한국은 대금지불에 있어 한번에 42억불이란 목돈을 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연차적으로 돈을 나눠주게 되는데 돈을 사업초기에 주게되면 그 만큼 가격이 다운되는 것이고 나중에 주면 줄수록 가격은 오르는 것입니다."

즉 물건을 살 때 현금으로 목돈을 주고 사면 싸지만 할부로 사면 비싸지는 이치와 똑같다는 것이다. 또 전력화 시기 조정을 통해 가격을 다운시킬 수 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이 이해하면 빠르다.

F-15K의 경우 협상과정에서 항공기 인도 일정을 2004년에 2대, 2005년에 4대, 2006년에 14대, 2007년에 20대로 해 전력화시기에 있어 최고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라팔의 경우 2004년에 3대, 2005년에 5대, 2007년에 6대, 2008년에 26대로 인도 일정을 잡아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전력화 조정시기를 조정한다는 것은 F-15K가 협상과정에서 제시했던 항공기 인도 일정을 라팔처럼 후반부로 미루게 되면 가격은 그 만큼 다운된다는 것이다.

또한 평균 3-4%에 이르는 에이전트 비를 대폭 축소함으로써 가격을 인하할 수도 있다고 한다. 물론 소요군이 요구하는 옵션에서 몇 가지를 제외해 가격을 다운시킬 수도 있다는 것인 조 대령의 생각이다.

이를 증명할 수 있는 한가지 사례는 바로 지난 5월 25일 F-X사업에 대해 대통령이 사업집행 승인안을 재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 국방부나 미 보잉 측에서 최종 계약을 앞두고 모종의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조 대령과의 인터뷰는 30분만에 끝이 났다. 조대령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기꺼이 응해줬다. 기자는 조 대령과 헤어지면서 지난번 '최후진술' 때 했던 그의 말을 상기시켰다.

"세상을 둥글게 사는 것이, 그래서 현실과 타협하며 일신상의 안위를 추구하는 것이 현명한 처세술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의 한 몸을 희생하여 국가와 공군에 도움이 된다면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어리석게 보일지 모르지만 같은 상황에서는 저는 똑같이 행동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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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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