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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문화가 있다고?

요즘 서울은 걷기 열풍이다. 좋은 일이다. 자동차 문화보다 걷는 문화는 이제 분명히 선진국형 문화로 이해된다. 자전거 문화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서울이라는 도시가 제대로 걸을 수 있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곳인가. 서울의 인도는 세계적 도시치고는 너무 좁다. 주요간선 도로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마주 보고 오는 이와 어깨를 부딪칠 정도다. 서울의 대부분 도로에 여기저기 자전거 도로 표시는 되어 있지만, 자세히 보면 완전히 탁상행정의 본보기다. 도대체 몇 미터도 안 가서 장애물이 나타나고 도로가 끊어져 있는데 어떻게 자전거를 타라는 것인가.

그뿐이냐. 보도블록은 어디를 가도 깨져 있고, 주저앉아 있다. 간판 정리를 한다고 하면서도 서울의 상가 건물 99%는 아직도 건물 외벽을 온갖 어지러운 간판으로 도배하고 있다. 광화문의 중앙광장은 더 이상 광장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중앙분리대에 불과하다. 아무런 문화적 감각도 찾을 수 없다. 나는 이 서울에서 문화의 냄새를 맡을 수가 없다.

문화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문화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닌데 말이다. 문화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다. 걸어 다니는데 인도가 좁아 걷기 불편한 것, 그것은 문화가 아니다. 걸어가다 보면 인도는 끊어지고 지하도로 들어가라 한다, 이것도 문화가 아니다. 차가 사람보다 더 귀할 순 없기 때문이다.

문화란 시끌벅적한 것이 아니요, 그 자체의 조용한 멋이다. 그런 면에서 문화는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다. 자연은 하늘이 준 것으로 그 본질을 훼손하는 것은 인간이 할 일이 아니다. 자연을 보존하면서 인간이 그 속에서 조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것, 그것이 바른 문화다. 무조건 깨 부시고, 무조건 거대한 것을 세우는 식의 개발주의적 문화는 문화를 빙자한 파괴다.

서울의 건물들을 보라. 하루가 다르게 하늘을 채우고 있지만 거기에서 어떤 문화를 읽을 수 있는가, 거기에서 어떤 건축 철학을 읽을 수 있는가. 우리나라는 건설만 있지 건축은 없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모든 건물이 천편일률적으로 똑같다. 기능만 앞세우지 도대체 미적 요소나 자연과의 친화 같은 문화적 요소는 도통 찾을 수가 없다.

그러니 어떤 건물도, 서울을 대표하는 소위 랜드마크 건물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만든 건설회사는 알지라도 그것을 설계한 건축가는 모른다. 한국에서 가장 크다는 건물인 삼성동 코엑스 빌딩은 누가 설계를 했는지, 도곡동의 거대 거주 공간 타워 팰리스는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가 없다.

말이 나왔으니 한 마디 더 하자. 이 나라는 건축가나 건축 장인들을 너무나 홀대한다. 수년간 복원에 힘써 마침내 조선궁궐의 위용을 갖춘 경복궁을 세상에 선보일 때도 이를 총지휘한 대목장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화려한 복원행사에 경복궁을 복원한 대목수들이 주빈으로 초대되어 그들의 노고를 치하 받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이러니 한국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를 설계하여 전 세계 관광객을 바르셀로나로 모으는 스페인의 안토니오 가우디나,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자연과 건물을 하나로 만든 일본의 안도 타다오가 나올 수 있겠는가.

문화는 정성 기울인 마음 자세

사상누각 위에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기초가 있어야 한다. 로마인들이 만든 로마가도는 천 년을 갔다. 그 이유는 길을 만드는 방법에 있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제10권을 보면 거기에는 로마인들의 길 만드는 법이 나와 있다. 로마인들은 길을 만들 때 1미터 이상을 판 뒤 주먹만한 자갈을 깔고, 그 위에 작은 크기의 잡석을 넣은 다음, 또 그 위에 석회석 등을 잘게 부순 돌가루를 채우고 마지막으로 마름모꼴의 석판을 깔았다. 석판과 석판 사이가 얼마나 정교했는지 머리카락 하나 들어갈 틈도 없었다고 한다. 기회가 되면 로마에 가보시라. 2천 년 전에 만들어진 아피아 가도를 볼 것인데, 내 설명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A: 지반 B: 주먹만한 크기의 돌멩이 C: 작은 크기의 잡석 D: 석회석 등을 잘게 부순 가루  E: 석판 F: 노변 G: 가장자리 돌.
▲ 로마가도 입면도 A: 지반 B: 주먹만한 크기의 돌멩이 C: 작은 크기의 잡석 D: 석회석 등을 잘게 부순 가루 E: 석판 F: 노변 G: 가장자리 돌.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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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가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로마 교외의 아피아 가도.
 고대 로마가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로마 교외의 아피아 가도.
ⓒ Radoslaw Botev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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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가. 나는 가끔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도블록 까는 현장을 지나칠 때면 위의 로마가도가 생각나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공사현장을 살펴본다. 그런데 기술자가 아닌 내 눈에도 우리 보도블록 까는 방법은 그저 놀라움 자체다. 그 방법은 대체로 이렇다. 우선 땅을 그냥 대충 다진다. 그런 다음 그 위에 모래를 뿌린다. 그리고 그것을 펴고 그 위에 블록을 적당히 얹어 놓는다. 그게 끝이다. 초등학생도 의아하게 생각할 만한 그런 방법, 그것이 대한민국 보도블록 까는 현실이다.

그러니 비만 한 번 내리면 내려앉을 수밖에 없지 않는가. 대한민국 수도 서울 이곳저곳의 보도블록이 대체로 이런 방법으로 깔렸다. 일 년에 수백억 원을 보도블록에 투자하면서도 그 공법은 로마인이 보면 기겁을 할 방법이다. 로마인들이 만일 이렇게 공사를 했더라면 그 감독자는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왜 우리는 이다지도 기초가 없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풋내기 아마추어리즘을 넘지 못할 것인가. 조상 탓을 해야 하는가. 누구는 그 모든 것이 20세기의 일제의 식민문화와 한국전쟁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 선배들이 당한 고통이 너무 컸다. 그러니 이 조그만 나라에서 사람들은 생존하기 위해 체면을 버려야 했다. 생존에 필요한 물질과 힘만이 찬양되었다. 그러니 무슨 문화냐, 무슨 기초냐, 다 배부른 소리다, 이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우리가 언제까지 모든 것을 과거의 책임으로 돌리며 살아가야 할까. 이제 해방된 지 곧 70년이요, 한국 전쟁이 멈춘 지 60년이다. 이 정도 시간이면 족하다. 이제는 좀 주변을 돌아보며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진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진짜 우리가 갖추어야 할 기초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 때가 왔다.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에서 읽는 문화적 자존심

책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겉그림
 책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겉그림
ⓒ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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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대한민국의 헐벗은 문화에 한탄을 한 사람이라면 이제 한 권의 책을 읽어보자.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이하 <한국의 미>)이다. 이 책은 우리의 고미술에 관한 책이다. 하지만 단순한 고미술 해설서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에게도 자랑스러운 문화가 있었다는 사실에서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느낀다. 우리 조상의 격조 높은 문화의식과 예술적 경지를 새롭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게는 우리 문화유산 중 항상 자랑하는 것이 있다. 해인사 장경각에 있는 팔만대장경이 그것이요, 조선조 역사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볼 수 있는 우리 기록유산의 보고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가 또 그것이다. 뿐만인가. 한글은 우리가 세계 문화사에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무형문화재로 나는 오래 전부터 한글날을 민족 최고의 국경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한국의 미>는 내게 조상이 그린 한 폭의 그림을 통해서도 이 땅이 문화 국가이었음을 알려준 아주 특별한 책이다. 이 책은 나로 하여금 지난 몇 년 동안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갈 때마다 고미술 전람실로 발걸음을 향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가끔 <한국의 미> 이외에도 같은 저자가 쓴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1, 2)과 <그림 속에 노닐다>를 읽어 보는데, 그럴 때마다 조선조 우리 문인들이 그려낸 이 땅의 풍경과 인물들에게서 문화의 향기를 듬뿍 맡곤 한다. 그럴 때면 조선 땅에서 태어난 것이 행복하다.

<한국의 미>를 더 이야기하기 전에 이 책의 저자 오주석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야겠다. 그는 우리 고미술계가 낳은 걸출한 미술사가였다. 그런데 그는 49세의 나이로 지난 2005년 불치의 병으로 우리의 곁을 떠났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그는 내가 본 어떤 한국 미술사가보다 보편적 지식인으로 세계의 문화사적 틀 속에서 우리의 문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우리의 고미술 작품을 보면서 그 작품의 예술성을 전달하는 능력은 타에 추종을 불허하였다. 언변도 좋을 뿐만 아니라 내용 하나하나가 청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한국의 미>는 그런 그의 능력을 독보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은 원래 글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강의 그 자체를 녹음한 것이었기에, 독자는 사실 그의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의 구수한 말을 듣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주석은 누구인가
고 오주석 선생.
 고 오주석 선생.
ⓒ 도서출판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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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은 1956년 수원에서 출생하였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고고미술사를 전공하였다. 그의 석사학위 논문은 단원 김홍도와 동갑내기 화원이었던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를 연구한 것이었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영자신문 <코리아헤럴드>에서 문화부 기자로 일하였고 이어 호암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학예연구원을 지냈다. 간송미술관의 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그곳의 터줏대감 최완수 선생 등과 깊은 교유를 하였다.

오주석의 지인들은 그가 인문과학 전반에 걸쳐 단단한 기본과 소양을 갖춘 것으로 평가한다. 영자신문에서 기자로 일할 정도의 영어 실력, 뛰어난 한문 해독 능력 그리고 역사 전공에서 온 동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보편사관은 그의 미술 이해를 단순한 미술 감상 차원이 아닌 시대배경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종합적 이해를 가능케 하였다.

오주석은 특히 단원 김홍도를 좋아하였다. 그의 연구를 통해 단원은 화원(화가)을 넘어 문필가로서, 관리로서 삶이 복원되었다. 그러니 누구의 평처럼 '오주석에 의해 김홍도가 호사하게 되었다'는 평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가 한국 고미술에 관해 열정을 쏟은 것은 그가 열정적으로 내놓은 몇 권의 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2003년 출간된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비롯하여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2>, <단원 김홍도> 등과 사후에 출간된 <그림 속에 노닐다>가 바로 그것들이다.

오주석은 애석하게도 갑작스럽게 세상과 하직하였다. 불치의 병마와 싸우다 2005년 향년 49세로 타계한 것이다. 그의 죽음은 뛰어난 미술사학자 한 사람을 잃은 슬픔 이상의 슬픔을 많은 사람들에게 안겨 주었다.

우리에게 문화가 없다고?

나는 <한국의 미>를 고미술사적 관점에서 읽고 이를 평할 능력이 없다. 그저 평범한 교양인 입장에서 그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을 말할 뿐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현재 우리 주변은 그저 대충주의가 만연되어 있다. 그래서 나를 비롯하여 많은 이들은 이것이 우리 문화의 소산인줄로만 알고 자연스럽게 우리 자신을 가학한다. 이것이 발전하면 소위 엽전 의식이다. 이것은 한국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국의 미>는 나의 그런 체념을 현저히 약화시켰다. 우리 문화는 원래 그런 엽전 의식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문화가 얼마나 섬세한지, 그것을 만들어 온 우리 선조의 자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작품을 통해 증명한다. 이 중에서 한 두어 가지만 여기에서 소개해 보자.

섬세함의 종결자 <송하맹호도>

<송하맹호도 松下猛虎圖> 김홍도, 비단에 채색, 90.4*43.8㎝, 호암미술관 소장
 <송하맹호도 松下猛虎圖> 김홍도, 비단에 채색, 90.4*43.8㎝, 호암미술관 소장
ⓒ 김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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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이것은 현재 호암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이다. 소나무 아래 호랑이가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포착한 그림이다. 당당하고 의젓한 몸짓이 역시 맹수의 왕답다. 이것이 바로 2백 년 전 조선 호랑이의 위용이다. 오주석은 이 그림에 대하여 단연 세계 최고의 호랑이 그림이라고 하면서 그것은 절대 과장이 아니라고 목에 힘을 준다.

무엇 때문에? 호랑이를 표현한 붓의 섬세함 때문이다. 현대 화가들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요즘 시쳇말로, 섬세함의 종결자를 이 그림을 통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호랑이 터럭 한 올 한 올을 잔바늘 같은 붓질로 수천 번이나 반복해 그려낸, 그야말로 경이적인 예술품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송하맹호도>의 호랑이 머리 부분 세부
 <송하맹호도>의 호랑이 머리 부분 세부
ⓒ 김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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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 그림 어떻게 그렸을까요. 자세히 보십시오! 정말 대단하지요? 제가 15㎝도 안 되는, 호랑이 머리 부분만을 확대했는데 이렇게 실바늘 같은 선을 수천 번이나 반복해서 그렸습니다. 이건 숫제 집에서 쓰는 반짇고리 속의 제일 가는 바늘보다도 더 가는 획입니다. 이런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화가는 지금 우리 세상에 없습니다. 웬만한 화가는 저 다리 한 짝만 그려보라고 해도 혀를 내두를 것입니다. …  흔히 "한국 사람은 일하는 게 대충대충이야" 하는 얘기, 어려서부터 많이 들으셨죠? …  이른바 조선 사람의 '엽전 의식'은 순전히 일제가 날조한 것입니다. 사실은 전혀 다릅니다! (책 119~120쪽)

이런 설명을 듣고 이 그림을 보자. 좀 달리 보이지 않는가? 말이 나왔으니 한마디 더 하자. 우리 조상들은 일찍이 2천 년 전에 잔줄무늬 청동거울을 만들었다. 직경 21.2㎝의 원 속에 0.3㎜짜리 가는 선을 자그마치 1만3300개나 직선과 동심원으로 그려 넣었다. 이것은 오늘날 일급 제도사가 20일 동안 꼬박 작업해야 완성할 수 있는 초정밀 디자인이다. 그만큼 우리 조상의 정교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던 것이다.

인류 회화의 최정상급 초상화 <전傳 이재초상>과 <이채초상>

다음으로 초상화 두 점을 보자. <전傳 이재초상>과 <이채초상>이다. 모두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전傳 이재초상>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인 이재의 초상화로 알려진 작품이다. 그렇지만 그림 어디에도 이재의 초상화란 말이 없이 그저 전해 오는 작품인데, 고미술 학자들 사이에서는 초상화의 주인공이 진짜 이재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이채초상>은 작품상으로 이채의 초상화임이 분명하니 위와 같은 논란은 없다. 만일 <이재초상>이 전해오는 대로 이재의 초상화라면 이채는 이재의 손자가 되고, 여기에서 보는 두 작품은 할아버지(이재)와 손자(이채)를 따로따로 그린 초상화라 할 수 있다.

오주석은 이들 그림을 이야기하면서 위에서 본 <송하맹호도>에서 한 것과 유사한 말을 한다. 이들 초상화가 인류 회화를 통틀어 최정상급 초상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초상화로 유명한 렘브란트를 빗대 그의 초상이 이 그림들보다 낫다고 볼 근거는 전혀 없다고 한다. 예술 수준으로는 분명 최정상의 예술품으로 렘브란트에 한 치도 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작가미상, 비단에 채색, 97.9*56.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전傳 이재 초상> 작가미상, 비단에 채색, 97.9*56.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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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이 이들 초상화를 보면서 높이 평가하는 것은 이 초상화들이 극사실주의에 입각해 인물의 절대적 존재감을 그대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아까 본 김홍도의 <송하맹호도>가 약간은 상상의 공간과 객체(호랑이를 보았다 해도 어느 특정 호랑이가 소나무 아래에서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직접 보고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를 사실감 나게 보여주었다면 이들 초상화는 그림의 주인공을 앞에 두고 그것을 그대로, 절대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오주석이 <전 이재초상>에 대해 표현한 부분을 읽어 보자.

… 노인 피부의 메마른 질감이 분명히 느껴지죠? 그리고 이 수염의 묘사가 정말 놀랍습니다. 내려오면서 이리저리 꺾여지는가 하면 굵고 가는 낱낱의 수염이 비틀리면서 굵었다 가늘었다 합니다. 이런 표현, 지금 현대 화가들은 도저히 흉내도 못냅니다. … 더구나 이 수염들은 그냥 붙어 있는 게 아니라 피부를 뚫고 나왔지요! … 속눈썹이며 눈시울이며 동공의 홍채까지, 서양화에서도 보기 어려운 극사실 묘사입니다. 언뜻 서양화가 굉장히 사실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세부는 우리 옛 그림이 더욱 사실적입니다. (책 171~172쪽)

내가 이 두 초상화를 보면서 더욱 놀란 것은 오주석이 이 두 초상화가 사실 한 사람을 그린 것이라고 주장을 했다는 점이다. 즉, 오주석은 <전 이재초상>은 이재의 초상화가 아니라 그의 손자인 이채의 노년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그런 주장을 했을까. 그것이 재미있다. 오주석의 집요한 관찰과 그에 기초한 전문가의 감정이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결정적이었다. 그런데 이런 주장 모두가 그림의 사실적 묘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가미상, 비단에 채색, 97.9*56.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이채 초상> 작가미상, 비단에 채색, 97.9*56.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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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은 두 초상화의 주인공의 이목구비가 비슷한 것을 발견하고 얼굴 학자인 당시 서울교대의 조용진 교수에게 감정을 의뢰한다. 그 결과 두 초상화의 주인공은 해부학적 동일인임이 밝혀진다. 이목구비의 비례수치가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아주대 의대 이성낙 교수에게 의뢰하여 두 초상화의 피부과적 소견을 들어본다. 그 결과 귓불 앞의 점이 같을 뿐만 아니라 눈가며 이마의 주름까지 같고 게다가 노인성 피부병인 검버섯도 같은 곳에서 확인되었다. 그러니 이 두 초상화는 한 사람을 그렸다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채초상>은 그 초상화의 주인공이 분명 이채니 두 초상화 모두 <이채초상>이 되는 것이다.

사실화, 특히 초상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실적이다. 극사실화가 많다. 그러나 우리 조선의 극사실화는 세계 어느 나라의 극사실화로서의 초상화와도 다른 경지다. 한마디로 엄정한 회화 정신의 표현이다. 얼굴의 흐릿한 검버섯마저 그대로 그리는 진실성이 우리 초상화에는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중국의 초상화가 사실적이라고 해도 병명을 진단할 정도로 사실적이지는 못했다. 겉보기는 같지만 조선과 중국 사이에는 엄밀성에 있어 그 차이가 엄연히 존재했던 것이다.

<한국의 미>에서 얻는 문화 철학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의 문화는 지금 좌표가 없다. 그저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친다고나 할까. 아무런 기초도, 철학도 없이 건물만 지어댄다. 도통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가 정신도, 장인 정신도 찾아보기 어렵다.

단원 김홍도가 그린 <송하맹호도>에서 본 호랑이 그림의 그 섬세함은 단순한 손재주가 아니다. 절대적인 정신세계를 갖지 않은 이가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경지였다. <이채초상>에서 보았던 검버섯까지 표현하려고 했던 그 절대 묘사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겐 이런 전통이 있다. 그 전통이 우리에게 면면히 이어지기만 한다면 우리의 문화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논의될 것이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주석은 <한국의 미>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 한국 문화는 겉보기에는 화려한 듯싶으나 내실을 살펴보면 주체성의 혼란, 방법론의 혼미로 우리 정서와 유리된 거친 들판의 가시밭길을 헤매고 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야 한다! 문화는 선인들의 과거를 성실하게 배워 발전적 미래를 이어가는 재창조 과정이다. 문화의 꽃은 무엇보다도 우리 시대가 김홍도 못지않은 훌륭한 사회를 이룰 때에만 피어난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삶 그 자체가 아름다워져야 한다. (맺는말에서)

이와 함께 우리 모두가 문화에 대해 나름의 안목을 가져야겠다. 이것은 학력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을 나와야 가질 수 있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가방 끈이 짧다 해도 그런 안목은 가질 수 있다. 이것은 품격의 문제다. 그것이 없이는 우리의 문화가 발전할 수 없다. 오주석은 이를 <한국의 미> 서문에서 이렇게 역설했다.

문화인, 예술가들이 아무리 피나는 노력을 해도, 한 나라의 문화수준이란 결국 그것의 터전을 낳고 함께 즐기는 전체 국민의 안목만큼, 정확히 그 눈높이만큼만 올라설 수 있다. ('책을 펴내며' 중에서)

문화에 대한 안목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긍심과 깊이 관련이 있다. 자긍심이 없는 민족은 어떤 문화도 발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문화인은 자신의 일을 존중하고 거기에서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아주 소박해도 좋다.

칼국수집 주인이 자신이 만든 칼국수 한 가닥에 자신의 삶을 던질 수 있다고 한다면 그는 자신의 일에 자긍심을 갖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돈 벌면 당장 때려치우겠다, 나는 이런 일을 자식에게 넘기지 않겠다"는 말은 결코 말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내가 만드는 칼국수는 대한민국 최고의 칼국수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내가 칼국수 만드는 것에서는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고수다"라고 말한다. 우리에겐 이런 자존심이 필요하다.

그러면 그 칼국수는 혼이 담긴 칼국수가 된다. 대통령이라도, 어느 재벌 회장이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나는 칼국수의 제왕이다,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사는 사람, 나는 그를 칼국수의 철학을 가진 사람이라 부르겠다. 그런 사람의 삶에서 우리는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문화를 한 단계 높이는 진정한 문화적 자존심이고 정치인들의 무분별한 전시행정을 막을 수 있는 우리 국민의 진정한 힘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찬운은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인권법 교수이자 변호사이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오주석 지음, 푸른역사(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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