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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일 대구MBC 강당에서 열린 이용수 할머니의 위안부 증언에는 80여 명의 청중들이 좌석을 가득 채웠다.
 지난 12일 대구MBC 강당에서 열린 이용수 할머니의 위안부 증언에는 80여 명의 청중들이 좌석을 가득 채웠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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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우리들이 돈 벌러 갔다고 하는데 그럼 우리를 공장에 데려갔어야지 왜 끌고 가서 성노예로 만들었습니까? 우리 보고 위안부라고 하는데 내 이름은 이용수이지 위안부가 아닙니다. 두 번 다시 우리의 후손들이 이런 치욕스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이용수 할머니가 눈물을 흘렸다. 1928년 대구에서 태어나 16살의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이용수 할머니는 23년 동안이나 일본 대사관 앞에서 사과를 요구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세세하게 밝힌 적이 없었다.

인문학 모임인 '두:목회'가 주최한 '이용수 할머니의 역사의 증언'이 지난 12일 오후 7시 대구MBC 강당에서 열렸다. 하고 싶은 말을 시간제한 없이 하고 싶다는 이 할머니의 말에 80여 명의 참가자들은 2시간 동안 숙연해졌다.

"여자가 5명인데 일본 해군 300명이 탔다... 개같은 놈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이용수 할머니는 "여러분들에게 (위안부 이야기를) 알리지 못하고 죽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마음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며 "왜 우리가 싸우고 있는지 여러분도 알아야 한다, 평화를 위해 내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입을 뗐다.

대구 고성동에서 태어난 이용수 할머니는 16살 때 다른 4명의 동네 언니들과 함께 일본군에 끌려갔다. 1943년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이할머니는 "코와 입밖에 보이지 않는 모자를 쓴 군인이 우리를 데려갔다, 당시 장난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어디로 가는지 왜 데려가는지도 몰랐다는 것이다.

이할머니는 "창문이 없는 기차에 우리를 태웠다"며 "가지 않겠다고 하니 '조센징'이라고 하면서 구둣발로 밟고 때렸다, 집에 가겠다고 하니 또 때리더라, 너무 많이 맞아 걷지도 못할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일본 군인에게 끌려가 기차를 타고 경주로 갔다. 경주에서 다시 대구를 지나 평양으로 이동했고 타이완 신죽에 있는 일본 가미카제 부대의 위안부로 보내졌다. 이 할머니는 "기차를 타고 평양으로 가다가 우리 집이 보이길래 엄마를 불렀는데 주먹으로 머리를 때려 정신을 잃고 말았다"고 말했다.

타이완으로 가는 배에는 300여 명의 일본 군인들이 타고 있었다. 빨간 원피스가 입혀진 5명의 소녀들은 일본군인과 함께 배에 태워졌다. 이 할머니는 "여자아이 5명인데 일본 해군 300명이 탔다, 생각만 해도... 개같은 놈들, 나쁜 놈들이다"며 울음을 터트렸다.

거센 풍랑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며 도착한 타이완. 트럭을 타고 도착한 집에는 담요로 쳐놓은 5개의 작은 방이 있었다. 그 집에는 10명의 '언니'들이 기모노를 입고 꿇어앉아 있었다.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12일 오후 대구MBC 강당에서 위안부로 끌려갔던 자신의 이야기를 증언하고 있다.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12일 오후 대구MBC 강당에서 위안부로 끌려갔던 자신의 이야기를 증언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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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언니가 나를 보더니 '너는 너무 어리다. 내가 숨겨줄게'라고 말하며 좁은 벽장에 숨겨주었어요. 조금 있으니 일본 군인이 몽둥이를 들고 들어와 숨겨준 조센징을 내놓으라며 옷을 찢어 입을 막고 마구 때렸어요."

같은 처지로 끌려온 그 언니는 그렇게 맞고 피투성이가 됐다. 이용수 할머니는 "일본 군인이 '조센징년 죽었을 것이다'며 사라진 뒤 언니를 보니 눈에서 피가 나오고 눈알이 튀어나온 것 같았다"고 말했다.

'도시꼬'라는 이름을 지어진 일본 군인 '하야까와 기꾸쇼니'

당시 열일곱살의 이용수 할머니는 일본 가미카제 부대 안에 있는 위안소에 끌려가 어린 일본 군인을 만났다. 그 군인은 위안소에서 맞고 고문을 당해 만신창이가 된 이용수 할머니에게 도움을 주었다. 그 군인은 할머니에게 '도시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벤또(도시락)와 단무지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1998년 일본에서 당시 자신을 도와준 일본 군인의 이름이 '하야까와 기꾸쇼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야까와는 어느 날 저녁 이용수 할머니에게 "내일 죽으러 가야 된다"고 하면서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하야까와는 "도시꼬, 너의 부모별도 있고 나의 부모별도 있어. 내가 내일 죽으면 별이 하나 떨어질 거야"라고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하야까와는 다음날 보이지 않았고 그 이후로도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1945년 5월 오키나와 전투에서 죽었다고 한다.

 이용수 할머니가 위안부로 끌려갔던 이야기를 증언하면서 눈물을 닦고 있다.
 이용수 할머니가 위안부로 끌려갔던 이야기를 증언하면서 눈물을 닦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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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네 돌아오네 고국산천 찾아서 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꽃을
얼마나 외쳤던가 태극 깃발을 갈매기야 웃어라 파도야 춤춰라
귀국선 뱃머리에 희망도 크다"('귀국선' 노래 중에서)

이용수 할머니는 '귀국선' 노래를 불렀다. 해방된 후 배를 타고 부산에 왔지만 해방된 줄도 몰랐다. 기차를 타고 대구역에서 내려 집 앞에 다다랐지만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엄마 하고 부르니 '죽어서 귀신이 왔구나' 하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더라"며 "집에 들어가 엄마를 안으니까 엄마가 기절했다"고 말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온 후 자신 때문에 어머니와 6살 어린 남동생이 죽었다는 불행했던 가정이야기도 쏟아냈다. 이 할머니는 "내가 역사의 산 증인으로 나와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나는 자다가 끌려갔다, 내 이름은 이용수이지 위안부가 아니다"라고 울먹였다.

"처녀들을 끌고 가 위안부를 만든 것은 일본"

이용수 할머니는 "일본 아베 총리는 전쟁이 있는 곳에 위안부가 있다고 했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처녀들을 끌고 가서 위안부를 만든 것은 일본이다"라며 "너희들(일본)이 지은 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대사관 앞에 있으면 어린 아이들이 찾아와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프다"며 "왜 너희들이 눈물을 흘려야 하나? 후손들이 다시는 이런 치욕을 당하지 않도록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또 다시 울먹였다.

마지막으로 "오늘 눈물로 이야기하는 것은 죄는 밉지만 사람은 미워하면 안 된다"며 "한도 많고 원망도 많은 세월이었지만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젊은 여러분들이 이런 치욕을 잊지 말고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힘써 달라"고 끝맺었다.

 최봉태 변호사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하고 국민들의 관심을 당부하고 있다.
 최봉태 변호사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하고 국민들의 관심을 당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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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는 최봉태 변호사는 "일본 법원은 고노 담화가 발표된 후 3년 안에 법을 만들어 해결해야 한다고 했지만 일본 의회가 입법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일본의 무성의보다는 한국이 더 문제다"라며 "23년간 시위했는데 국가는 관심이 없다, 우리나라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의지가 없어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최 변호사는 이어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피해자들이 납득할 만한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라고 하는데 이는 무책임한 처사다"라며 "추상적인 협상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구체적인 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을 지켜본 대학생들이 많았다. 경북대학교 4학년 박희도씨는 "이런 자리에 처음 왔는데 관심을 갖지 못해 부끄러웠다"며 "할머니가 이런 일을 알리기 쉽지 않았을 텐데 그런 결심과 용기를 배우고 가는 뜻깊은 자리였다"고 말했다.

하승백(경북대 3학년) 학생은 "일본이 가해자인데도 일본 사람들을 미워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며 "양심 있는 일본 사람들과 함께 앞으로는 이런 상처를 만들지 말고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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