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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감시 사회를 만드는 법률'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공모죄' 법안이 강행 처리됐다.
 지난 15일, '감시 사회를 만드는 법률'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공모죄' 법안이 강행 처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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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가 감시 사회로 변화하고 있는 중이라는 걸 처음으로 체감했던 건 2015년 안보법안의 제정을 둘러싸고 일본 사회가 연일 떠들썩했던 어느 날의 택시 안에서였다. 연로하신 택시 기사님과 세상 돌아가는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기사님께서 나에 대한 경계를 놓아도 된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손님! 요즘엔 손님들과 사실 정치 얘기 하는 걸 삼가게 됩니다. 문득, 2차대전 때의 일본 사회로 돌아간 느낌이 듭니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다. 2017년 6월 15일 아침, '감시 사회를 만드는 법률'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공모죄' 법안이 강행 처리됐다. 당일 아침의 <아사히 신문>의 '독자의 소리'에서 2년 전의 택시 기사님의 말씀을 떠오르게 하는 글이 실려 있었다.

"(군국주의 일본이) 전쟁을 하는 동안 치안유지를 구실로 민간을 압박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 '공모죄'(치안유지법)였다. 이 법이 없다면 도쿄 올림픽을 열 수 없다? 정말 그렇다면 올림픽을 중지하면 되지 않는가. 겨우 한 달 동안 열리는 '운동회' 때문에 일본사회의 운명이 위험에 처해지는 건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다. 올림픽이 끝나도 이 법률은 남는다."

'표현의 자유' 옥죄던 법안이 70여년만에 부활하다

지난 19일 일본 총리 관저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발언하고 있다. 그는 이날 통상(정기)국회 폐회에 즈음해 연합뉴스 등 내외신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총리관저에서 한 회견에서 사학재단 가케(加計)학원 문제에 관한 재조사 등 정부 대응에 "시간이 오래 걸려 불신을 초래했음을 솔직히 인정한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일본 총리 관저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발언하고 있다. 그는 이날 통상(정기)국회 폐회에 즈음해 연합뉴스 등 내외신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총리관저에서 한 회견에서 사학재단 가케(加計)학원 문제에 관한 재조사 등 정부 대응에 "시간이 오래 걸려 불신을 초래했음을 솔직히 인정한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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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유지법? 이 법은 1925년에 만들어졌던 법안으로, 일본 패망 두 달 뒤인 1945년 10월 4일 연합군총사령부에 의해 표현의 자유 등의 보장을 목적으로 폐지됐던 법안이다. 폐지 70여 년 만에 아베 정권에 의해 공모죄가 '조직적범죄처벌법 개정'이라는 법안으로 부활된 것이다.

태평양 전쟁 동안 치안유지법과 관련된 일본 사회의 모습을 테마로 한 소설을 썼던 작가 야나기 히로시(柳広司)는 '공모죄' 법안의 위험성을 "역사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치안유지법이 성립했을 당시, 정부도 각 신문사도 '이 법률은 일반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법률 제정 후의 운영은 사실상 현장의 경찰에게 완전히 맡겨졌고, 수사기관은 검거율을 올리기 위해 일반 주민들까지 검거하였습니다. (중략) 취조 과정에서 몸과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 주민들이 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물론 이러한 결과에 관해서 치안유지법을 추진했던 정치가나 관료들이 책임을 진 적은 한 번도 없었지요."

'공모죄' 법안이 처리된 지 4일 후인 6월 19일 오후 6시 55분, 아베 총리는 지지율이 급락하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리고 국민에게 사죄의 마음을 표현하는 가운데 '공모죄'에 관해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일반인은 (공모죄 법안에 의한) 처벌의 대상이 아닙니다. 일반인은 피의자로서 수사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일반인' 여부는 결국 경찰에 의해 일방적으로 판단된다"

일본 참의원이 지난 15일 본회의에서 조직범죄를 준비만 해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테러대책법안을 강행처리하고 있다.
 일본 참의원이 지난 15일 본회의에서 조직범죄를 준비만 해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테러대책법안을 강행처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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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게 아베 총리의 기자회견으로부터 느껴진 첫인상은 '참! 궁색하다'는 것이었다. 여느 때와 같은 자신감과 당당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안전 사회'을 만들기 위한 법안이라고 강조했던 그 법안이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법안이 된 까닭을 진정으로 알고 싶어하는 것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쉘 위 댄스>라는 영화의 감독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는 수오 마사유키(周防正行)는 그 누구보다도 일찍부터 '공모죄'의 위험성을 주장해왔던 오피니언 리더다. 그는 일본의 형사재판과 사법제도의 부조리를 고발한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다>는 작품을 찍었던 감독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의 주장에는 묵직한 진실의 울림이 있다. 그는 '공모죄' 법안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정부의 주장에 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안전보장 관련 법안을 성립시키기 위해 헌법이라는 최고 법규조차도 그 해석을 아베 정부가 (자신의 권세에 기대어 마음대로) 바꾸는 것을 목격한 나의 입장에서 그런 주장은 신용할 수 없습니다."

그는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권력기관의 위험성을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수상은 '일반인은 대상이 아니다'라고 되풀이해서 강조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수사기관이 누군가를 '공모죄'로 입건하고자 하는 경우, 누가 일반 주민인가 아닌가의 여부는 결국 수사를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일반 주민이고 아닌가가 경찰에 의해 일방적으로 판단되는 겁니다."

일본 생활이 24년째인 나조차도 겁이 나는 순간이 있다. 1년 전 개인적인 문제로 변호사와 상담하는 자리에서 들었던 조언이다.

"나 선생, 지금의 일본 사회는 전체주의적인 사회분위기가 강해지고 있어요. 정의감만 가지고 싸우려고 하는 건 나이브합니다. 위험합니다."

앞서 소개한 수오 감독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공모죄' 법안의 통과는 권력기관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입건하기 위한 '무기'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을 의미한다. 정치 권력과 결탁된 수사기관의 일방적인 해석에 의해서 그 누구에게도 얼마든지 혐의를 씌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시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시민에 의한 권력자들에 대한 비판이 힘들어진 것을 뜻한다. 정부에 대해 비판하는 운동에 참여하고 싶어도 자기검열을 하는 시민들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내가 정말 무서운 건 그런 감시 사회의 분위기가 정치 권력뿐만 아니라 경제 권력과 사회 권력의 기관으로까지 확대되는 것이다.

'전방위 감시 사회'가 도래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의 각종 장면에서까지 '이걸 말하면 위험해지는 건 아닐까' '이걸 하면 혐의를 받는 건 아닌지' 하는 두려움이 침투한 사회가 건강할 리 없다. 시민들끼리 상호간에 밀고를 하는 사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 자백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 그런 사회가 건강할 리 없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아직 살아있는 '희망'의 씨앗

지난 14일 밤 일본 국회 앞에서 '감시사회' 논란을 부른 조직범죄처벌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집회가 열렸다.
 지난 14일 밤 일본 국회 앞에서 '감시사회' 논란을 부른 조직범죄처벌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집회가 열렸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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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직 희망의 씨앗은 있다. '공모죄'를 처리한 후의 아베 총리의 다음 계획은 개헌 드라이브에 나서기 위한 정치적 환경 만들기였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아베 총리의 정치적 행보는 정말 감탄스러울 정도로 치밀했다. 일의 경중과 순서를 계산하면서 일을 진행시켜 나가는 정치적 센스도 뛰어났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계획은, 다름 아닌 자신이 원인이 된 결과, 현재로서는 완전히 어긋나버렸다. 총리 자신의 사학재단 가케(加計)학원 스캔들 혐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공모죄' 법안을 무리하게 통과시킨 결과, 아베 총리 개인의 신뢰성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증폭됐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에 대한 불신이 '공모죄'에 관한 정치적 불안과 아베 정부에 대한 불신의 기폭제가 된 셈이다.

앞으로 '공모죄' 법안으로 인한 불안감에 적응한 국민들이 늘어날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아베 총리에 대한 '개인적'인 불신은 국민뿐만 아니라 정부 부문과 경제 사회에서도 더 확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아베 정부 내부에서 밀고자들이 나오고, 아베 총리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공식 문서가 계속해서 공개되는 걸 보면 아베 정부의 위기 극복 능력도 한계에 다다른 것처럼 보인다.

더 나아가 일본의 자유주의 진영의 매스컴도 야성적 기질과 패기를 다시 회복하기 시작한 것 같다. 이는 물론 나의 희망적 관측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에 실현하고 싶었던 아베 총리의 개헌의 꿈은 멀어진 것처럼 보인다. 일본은 지금 역사의 분기점에 서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나일경님은 일본 추쿄대학교 전 교수입니다.



태그:#공모죄, #일본, #아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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