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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굳이 점수를 매기자면, 나는 낙제도 이런 낙제가 없다. 시간이 없다는 건 다 핑계일 뿐인데, 마음만 먹으면 단 십분이라도 짬짬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데, 그런데 어쩌랴. 시간이 나면 그곳이 어디든 책을 펼치고 마는데.

건강을 위한 운동의 필요성 앞에서 늘 주눅이 드는데, 이제는 노후를 위해서도 운동이 필수란다. 다소 격한 운동을 즐기던 친구들이 운동 종목을 바꿨다며 말한다. 기나긴 노후를 위해서도 반드시 운동 하나쯤은 배워둬야 한다고. 볼링이나 테니스, 수영도 좋단다.

할 줄 아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나는 침묵을 지키는데, 친구가 옆구리를 찌른다. 그 중 제일 급한 것은 나일 것이 너무도 분명하므로. 기죽은 마음에 대답했다.

"정말 노년의 무료함이 문제라면, 그냥 책을 읽는 게 낫지 않아?"

이제 나 대신 친구들의 일동 침묵. 이게 웬일. 운동이란 주제를 두고, 내가 승기(?)를 거머쥐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매일 읽겠습니다> 책표지
 <매일 읽겠습니다> 책표지
ⓒ 어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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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겠습니다>의 저자는 책날개를 통해 "100퍼센트의 독서가"라고 소개되고 있다. 이어지는 문장 역시, "독서가라는 말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사람". 본문에 의하면 머리를 말리면서도 톨스토이를 읽는다고 하니, 정말 못 말리는 독서가가 분명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독서에 관한 이야기이고, 결국 독서 예찬이 될 것이라고 읽기도 전에 예상을 했다. 책이 빤할 거라는 짐작이냐 묻는다면, 글쎄.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해야겠다.

내가 아는 독서란, 불가피하게도, 하면 할수록 예찬할 수밖에 없는 것일 뿐. 그리고 나는 그 예찬을 환영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덧붙여야겠다.

짐작대로 책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담겼다. 책을 멀리해 온 사람은 문득 책을 읽고 싶어질지도 모르고, 생각은 있지만 좀처럼 잘 되지 않는 사람은 독서를 습관화 하는 팁을 얻을 수도 있겠다. 1년 53주의 위클리플래너 기능까지 탑재하고 있으니, 이왕이면 새해의 '독서 다이어리'로 활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종종 베스트셀러를 경계하라는 조언을 접하게 되는데, 저자는 책 추천을 요청받으면 베스트셀러를 권하기도 한다고 한다. 아직 자신의 책 취향이 확실하지 않아 추천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저자의 말대로 다수의 취향에 기대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테다. 물론 이것은 마중물일 뿐.

"그렇게 계속 읽다 보면 자신만의 취향이 생겨, 이제 더는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이유로 읽거나, 읽지 않는 일은 없을 것이다. 취향에 따라 서점 구석구석으로 손을 뻗게 될 테니."

지적 욕구를 자극하지만 읽어내기 부담스러운 책이라면, 일정한 시간을 정해두고 읽는 것도 저자가 제시하는 독서 팁이다.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을 때는 잠시 음독(音讀)으로 집중도를 높이는 것은, 나 역시 이용하는 방법이기도 해 괜히 반갑다.

53개의 각 꼭지 앞에는 명사들의 문장이 적혀 있는데, 이 또한 책 읽는 재미를 더한다. 책에 실린 몽테스키외의 말을 재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한 시간의 독서로 누그러들지 않는 어떤 슬픔도 알지 못한다."

독서가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책장을 덮은 뒤엔 여전히 남아 있는 슬픔과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 한 시간만이라도, 슬픔을 조금이나마, 그러나 확실하게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을 난 독서 외엔 알지 못한다. 나의 고통에 침잠하지 않도록, 나를 내 작은 우물 밖으로 끌어올려주는 것은 언제나 책이었다.

저자 역시 그랬을까.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으면 좋겠다고 무심결에 생각할 정도로 심신이 피폐해져있을 때 독서에 더욱 몰입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 역시 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진 못했지만, 책 덕분에 혼란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그녀의 다음 말을 들어보자. 실은, 독서는 문제를 조금씩 해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제와 같은 하루를 살지라도 눈과 귀가 바뀐 사람의 삶은 다른 삶이 된다. 대안이 갖춰졌기에 불안이 덜하다. 발을 동동 구르는 대신, 삶을 향해 적극적으로 한 발짝 나아간다."

선악을 가볍게 단정짓고, 만사를 단순하게 판단하는 사람들이 한때 부러웠음을 고백해야겠다. 그러나 인간의 일에 단 하나의 정답이란 없음을, 이런 삶도 저런 삶도 가능하다는 것을 배우게 하는 것이 소설이고, 책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나아가 이토록 복잡한 세상만사를, 여전히 다 이해할 순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물을 뿐이다. 바틀비의 삶은 왜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는지, 왜 우리네 삶도 이토록 불투명하기만 한지, 왜 삶에서 중요한 모든 것에는 정답이 없는지, 이렇게 늘 확신 없이 살아도 괜찮은지, 이런 게 삶인지. 그저 계속 물을 수밖에 없음을 나는 소설을 통해 배운다. 소설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는 책을 소재로 한 글을 읽으며 생각하고, 느끼고, 배운다고. 그렇게 글쓴이와 간접대화를 하는 셈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나 역시 그렇다. 저자와 신명나게 책에 관한 수다를 떤 기분, 그리고 내 독서를 되짚어 보는 기회를 가졌다.

지인들과 함께 책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 저자는 친구들에게 책을 선물하기도 하고 독서를 독려하며, 열심히 그 환경 조성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이건 정말 꼭 따라해 볼 요량이다. 운동 이야기에 열 올린 친구들 앞에서 기죽어 있을 게 뭔가. 나도 말해야겠다. 새해에는 우리 함께 책을 읽어 보자고.


매일 읽겠습니다 (민트) - 책을 읽는 1년 53주의 방법들 + 위클리플래너

황보름 지음, 어떤책(2017)


태그:#매일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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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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