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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김성회 대통령비서실 종교다문화비서관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발언과 동성애 혐오 발언으로 연일 비판을 사면서, 그의 과거 행보 또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노동운동가 시절과 레인보우합창단 논란 등 김 비서관의 이력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해당 기사(2018년 3월 4일 보도)를 다시 공유합니다.[편집자말]
MBC 뉴스데스크가 연일 보도를 통해 '레인보우 합창단'의 이중성을 폭로한 가운데 한국다문화센터 대표를 맡고 있는 김성회씨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MBC 뉴스데스크가 연일 보도를 통해 "레인보우 합창단"의 이중성을 폭로한 가운데 한국다문화센터 대표를 맡고 있는 김성회씨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 충북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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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뉴스데스크가 연일 보도를 통해 '레인보우 합창단'의 이중성을 폭로한 가운데 한국다문화센터 대표를 맡고 있는 김성회씨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사진 MBC뉴스데스크 화면 캡처)
  MBC 뉴스데스크가 연일 보도를 통해 "레인보우 합창단"의 이중성을 폭로한 가운데 한국다문화센터 대표를 맡고 있는 김성회씨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사진 MBC뉴스데스크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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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줬다 가져간 평창 패딩' 논란 레인보우합창단, 김성회 대표는 누구?

MBC <뉴스데스크>가 연일 보도를 통해 '레인보우 합창단'의 이중성을 폭로한 가운데 한국다문화센터 대표를 맡고 있는 김성회씨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김씨는 충북 청주 출신으로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삼민투 위원장을 맡는 등 운동권 출신으로 알려졌다. 이후 뉴라이트로 전향해 이인제 대선캠프와 새누리당을 거쳐 지난 대선 때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팬클럽 회장을 맡으며 급부상했다.

지난 2일 MBC는 한국다문화센터 김성회 대표가 평창올림픽 행사에 참여한 레인보우합창단 아이들의 부모에게 30만 원의 참가비를 걷고 조직위에서 무료로 나눠준 패딩을 회수한 사실을 보도했다(관련기사: 올림픽 개막식 장식한 레인보우 합창단의 '두 얼굴').

3일에도 MBC 뉴스데스크는 '레인보우 합창단' 김성회 대표가 아이들을 정치인 행사에 동원한 사실을 보도했다(관련기사: 레인보우 합창단, 정치인 행사에도 동원…또 드러난 민낯).

이같은 보도에 레인보우 합창단 측은 "참가비 30만 원은 겨울캠프를 위한 자체 훈련비 명목"이고 패딩을 회수한 데 대해서는 "다시 회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방한복 용도로 겨울에 다시 입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했다.

MBC 보도 이후 네티즌들은 "레인보우 합창단의 이중성이 드러났다"거나 "아이들에게 참가비 30만 원씩 걷고 아이들에게 공짜로 지급된 올림픽 패딩도 뺐었다. 소름 끼친다" 등 비판적인 댓글을 달며 그를 성토했다.

반기문 팬클럽 '반딧불이' 회장으로 유명세

운동권 출신의 뉴라이트로 정도로 알려진 김성회 대표가 유명세를 탄 것은 지난 2016년 가을. 당시 뜨겁게 인 반기문 열풍과 함께 김 대표도 화려하게 등장했다.

김 대표는 2016년 11월 10일 창립한 반기문 전 총장 팬클럽 1호 '반딧불이'의 중앙회장을 맡으며 얼굴을 알렸다. 반딧불이 창립 이전에도 한국다문화센터가 운영하는 레인보우합창단을 이끌고 UN본부에서 공연을 하고 반 전 총장을 만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다문화센터 김성회 대표는 과거 화려한 운동권 경력의 소유자다.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82학번인 김 대표는 대학생 시절 미 문화원 점거사건을 주도했던 삼민투( 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투쟁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연대 민족자주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1985년 4월 집시법 위반으로 처음 구속됐다.

1986년 5월 출감한 김 대표는 인천과 수원 등지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이 과정에서 1987년 5월 위장취업이 들통 나 구속됐지만 두 달 만에 석방됐다. 석방도 잠시 그는 노동자들의 파업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또 다시 구속돼 1년여의 옥살이를 했다.

1990년 잠시 학교에 복학해 고시공부를 하던 그는 다시 운동단체의 상근 활동가의 길을 선택한다. 그는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전국연합이란 단체에서 교육선전국장을 맡았다.

김 대표는 1997년 대통령 선거 때는 권영길 국민승리21 대통령후보의 캠프에서 선거운동을 했다.

그렇게 운동단체의 활동가로 살던 그에게 변화가 온 것은 DJ 정부 때였다. 1999년 6월 김 회장은 제2건국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청와대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김 회장은 2002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선거 경선 당시 예상을 깨고 이인제 캠프에 합류한다.

2002년 이인제 캠프에서 경선 탈락이라는 쓴맛을 본 김 회장은 이후 정치적으로 급격하게 '우향우'했다.

반기문 하차하자 안철수 지지로 선회

김 회장은 2007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정희, 이승만 전 대통령을 칭송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능동적인 산업화를 위해 국민적 힘을 모았다. 굉장한 것이다. 박정희의 국가동원 능력은 대단했다"고 말했다.

이승만에 대해서도 "이승만에 의해 토지개혁이 강도높게 이뤄졌다. 또 국민 너나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인제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던 김 회장은 이미 2005년 뉴라이트 창립에 직접 관여했다. 당시 <충청리뷰>의 보도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장일 전 자민련 국장과 함께 뉴라이트전국연합의 모체가 되는 '뉴라이트 충청포럼'을 결성했다.

이후 김 회장은 이인제 전 국회의원과 정치 인생을 같이한다. 그는 2002년에 이어 2007년 이인제 의원의 선거캠프에서도 중책을 맡았다. 이인제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한 뒤 자유선진당, 선진통일당, 새누리당을 당을 갈아타는 동안 김 회장도 함께 했다.

김 회장 본인도 적극적인 정치행보를 걸었다. 비록 탈락했지만 2014년에는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청원군 당원협의회장 공모에 응시하기도 했다.

김성회 회장이 반기문 UN사무총과의 인연이 본격 알려진 것은 지난 해 9월 레인보우합창단의 UN공연이 계기가 됐다.

2016년 9월 13일 김 회장이 대표로 있는 한국다문화센터가 운영하는 레인보우합창단은 UN의 초청으로 UN본부가 있는 뉴욕으로 출국했다. 당시 김 대표는 합창단을 인솔했고 미국에서 별도로 반기문 전 총장과 회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동에는 반 전 총장의 핵심 참모로 알려진 오장섭 전 장관도 같이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의 인연도 오래가지 못했다. 반기문 전 총장이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대선레이스에서 중도 포기했던 것. 반기문이라는 선장을 잃은 김 대표는 얼마 뒤 '반딧불이' 명의로 당시 대선후보였던 안철수 지지를 선언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레인보우합창단, #김성회, #반기문, #반딧불이, #충북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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